2024/04 82

이은용 '가을 손님'

주인공이 제사상을 차리고 있다.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춘 제사상, 창문은 활짝 열렸다. 주인공이 향을 피우는데 유령이 느릿느릿 걸어 들어온다. 누가 봐도 유령이다. 사람은 인사하며 어떻게 오셨냐고 묻는다. 향냄새가 좋아서 왔단다. 유령은 누구 제사냐고 묻고, 사람은 얼마전에 죽은 친구가 그리워서란다. 유령은 2014년에 죽었단다. 어떻게 왜 죽었는지는 묻지 말란다. 선문답이 이어진다. 사람은 우울증에 걸렸고 추석날 홀로 지내고 있는 처지다. 유령은 향이 좋아 멀리 못가고 죽어서도 이승을 떠돌고 있단다. 둘은 담배로 나눠 피운다. 유령은 사람에게 슬픈 냄새가 난다고 한다. 사람은 친구와 무척 친해서 시시콜콜 모든 얘기를 했는데 친구 역시 우울증에 걸려 연락이 잘 안 됐단다. 근데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의 우..

한국희곡 2024.04.09

김경민 '섬'

여자와 남자, 두 명의 여행자가 만난다. 둘은 가이드를 놓치고, 잠시 섬에서 일행을 기다리기로 한다. 홀로 돌아다니기에 꿈의 바다는 너무 험하고 길을 잃기 쉬운 탓이다. 가이드를 기다리며 잠이 든 여자는 섬에서 남자와 단 둘이 사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다정한 연인인 여자와 남자는 섬에 거주하는 동안 타인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과 그 타인의 기척만이 남아 자신들의 곁을 맴도는 것을 깨닫고 두려움에 잠긴다. 남자는 섬이 그들을 집어삼킨 것이라며 떠날 것을 종용하지만 여자는 거부한다. 남자는 홀로 섬을 떠난다. 여자는 꿈에서 깨어난다. 가이드는 아직 되돌아오지 않았다. 연극 은 고시원의 방들을 섬에 비유, 문명화된 현대사회에서 오히려 고립되고, 소외된 밀실에 갇힌 사람들과 바다 위 외로운 섬이 다르지 않다는..

한국희곡 2024.04.09

요한나 스피리 '하이디'

아델하이드(하이디)는 부모를 여의고 스위스 마이엔펠드에서 이모 데테와 이모부 손에 자란 고아 소녀이다. 데테 이모는 5살 된 하이디를 알프스 산 초막에 홀로 사는 할아버지에게 데리고 간다. 할아버지는 남의 혐담을 일삼는 마을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그는 항상 남을 비판하는 이들의 위선을 참을 수 없어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산에서 몇 년 동안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하이디를 내키지 않아 했지만 총명하고 명랑한 어린 손녀가 마음에 들어 애정을 갖게 된다. 마음은 너그러 우나 성격이 퉁명스런 할아버지는 손녀를 모든 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학교에 보내는 것도 거부한다. 하이디는 이웃의 염소치기 소년 피터와 들판을 뛰어다니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피터 어머니와 그리고 장님인 피터 할머니..

외국희곡 2024.04.09

최원종 '무지개 끝에서의 키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예사롭지 않다. 19살 소년은 쌍둥이인 자폐증 형과 같은 14살 생일때 형을 목졸라 죽이고 정신질환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거기서 만난 이상한 흑인을 또 죽이고 탈출한다. 그리고 마약에 의존하다가 소녀A를 만난다. 두달 전 만난 소녀A는 자살시도한 경력이 있다. 그 소녀는 남자(다중인격으로 그 주위에 3명의 다운증후군 소녀, 건달, 거인이 같이 따라다닌다)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소녀A의 자살에서 구해준 일 때문에... 소녀A는 소년을 만나 소녀A를 지켜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둘은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려 한다. 소녀A는 소년에게 약부터 끊으라고 하고, 소년은 약속한다. 그리고 멀리 비행기를 타고 도망갈 계획을 세운다. 소녀B는 소녀A와 동갑이고 역시 남자에 얽매여 ..

한국희곡 2024.04.09

헬리 액튼 '비긴 어게인'

주인공 프랭키는 자신의 생일날 케밥을 사먹다가 넘어져 죽었다. 그러나 다시 눈을 뜬 곳은 ‘스테이션’이라는 신비한 공간. 프랭키는 이곳에서 인생의 가장 중요했던 터닝포인트로 돌아가 선택하지 않았던 인생들을 살아볼 기회를 얻는다. 각각 ‘자유’, ‘편안함’, ‘재산’, ‘명성’, ‘예전과 같은 삶’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5개의 삶을 24시간씩 살아보는 프랭키. 그리고 이 중 가장 행복해질 것 같은 인생으로 갈 마지막 선택을 한다. 과연 프랭키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고 가장 행복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프랭키가 선택한 두 번째 인생은 무엇일까?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꿈을 찾아 해외로 떠났다면,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직했다면 지금보다 더..

좋아하는 소설 2024.04.08

루이지 피란델로 '바보'

레오폴도 파로니는 풀리니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자 몹시 분개하며 안타까워한다. 풀리니가 자신의 목숨을 좀 더 가치 있게 만들며 죽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면 파로니 자신의 정적인 귀도 마짜리니를 먼저 죽여준 후 자살을 했어야 한다는 것. 병에 걸려 있었고 결국 자살까지 할 거였으면 마짜리니를 죽여준다고 해서 특별히 희생이라고 할 것도 없지 않겠느냐며 그를 바보라고 비난한다. 어두운 방에서 이 이야기를 우연히 들은 루카는 풀리니처럼 병이 들고 자살을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다. 그는 이미 귀도 마짜리니의 사주를 받고 파로니를 죽인 후 자살하려 그 방에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파로니를 죽이러 왔다가 풀리니를 바보라고 매도하는 그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결심을 바꾼다. 그는 파로니를 총으로 위협하..

외국희곡 2024.04.08

손기호 '사랑을 묻다'

50세, 시간강사인 명호는 삶에 지쳐있다. 그는 20대 때 행복한 연극 무대를 기억하며 남 몰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준비한다. 극 중 로미오를 연습하는 명호는 점점 로미오와 자신을 동일 시 하며 로미오가 사랑을 갈구하듯 현실에서 줄리엣을 찾아낸다.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 희연을 사랑하게 된 명호는 이 감정이 연극 속 로미오의 감정인지, 실제 자신의 감정인지 혼란스러워 한다. 이제 늙은 로미오 명호는 세상의 금기에 맞서며 점점 위험한 선을 넘어가는데... 사랑을 묻다(작.연출 손기호)'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사랑은 언제나 찾아온다. 50대에 접어든 명호에게도 사랑은 있다. 되는 일 하나 없고, 가장의 책임이 온몸을 짓누르지만 사랑을 향한 열정은 끊임없이 꿈틀거린다..

한국희곡 2024.04.07

탕크레트 도르스트 '나, 포이어바흐'

'나, 포이어바흐'는 유명한 연출가에게 발탁되어 배역을 얻으려는 어느 배우에 대한 이야기이다. 연출가를 기다리면서 조연출과 계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배우의 장광설이 작품의 주를 이루고 있다. 연습공연 후의 극장. 지난 공연으로 무대장치들의 일부가 남아있는 텅 빈 무대와 비어있는 객석, 이것이 작품의 무대이다. 깜깜한 무대에 포이어바흐라는 배우가 나타난다. 그는 오디션을 받도록 약속되어 있으며, 성공적인 오디션으로 다음 공연에서 배역을 받고자 한다. 그가 약속된 시간에, 무대에 도착했지만 연출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그가 오디션을 받기 위해 스스로 정한 '탓소'의 '네 번째 막에 나오는 독백'을 들어 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조연출이 와서 연출가이며 극장장인 레타우 씨는 해야 할 일이 남아있어 아직 오..

외국희곡 2024.04.07

차범석 '껍질이 째지는 아픔 없이는'

1960년 이른 봄. 3·15 정·부통령 선거를 앞둔 정계는 전례 없이 불안과 긴장에 휩싸였다. 야당인 보수당의 오 박사와 여당인 공화당의 김 박사의 선거대전은 전 국민의 관심거리였다. 보수당 중앙위원인 강기수는 60고개에 선 쟁쟁한 정객이다. 그러나 그의 사생활은 그가 야당의원이라는 탓으로 순탄하지가 못했다. 그러므로 강기수의 아내 정아는 남편 몰래 계와 빚돈으로 간신히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강기수는 신념에 사는 정객이었다. 그는 차기 대통령 선거에 오 박사의 당선은 결정적이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1남 2녀의 자녀가 있었다. 그러나 돌연 오박사가 심장마비로 죽게 되자 강의원은 흔들린다.게다가 여당의 집요한 포섭과 특히 자식들의 장래가 얽힌다.아들은 미국유..

한국희곡 2024.04.06

해롤드 핀터 '빅토리아 역'

콜택시 회사의 관리자가 빅토리아 역으로 손님을 맞으러 가게 하기 위해 운전사 274를 호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관리자는 자신의 사무실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오로지 마이크를 통해 보이지 않는 운전사들을 호출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 호출당하는 운전사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하며 길거리에서 배회하는데, 사실 자신이 어느 길에 있는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관리자가 작은 삶의 공간에 갇혀 있다면 운전사 역시 어느 알 수 없는 공간에 갇혀 버려져 있기로는 매일반이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은 고립된 공간에 갇혀서 통하지 않는 말, 그래서 의미 없는 말만 하는 현대인의 공간적, 정신적 고립상태를 보여준다. 초기의 극에서 보인 희극적 터치가 스며있는 이 극은 『벙어리 ..

외국희곡 2024.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