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탕크레트 도르스트 '나, 포이어바흐'

clint 2024. 4. 7. 09:25

 

 

 

'나, 포이어바흐'는 유명한 연출가에게 발탁되어 배역을 얻으려는 어느 배우에

대한 이야기이다. 연출가를 기다리면서 조연출과 계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배우의 장광설이 작품의 주를 이루고 있다. 연습공연 후의 극장.

지난 공연으로 무대장치들의 일부가 남아있는 텅 빈 무대와

비어있는 객석, 이것이 작품의 무대이다.
깜깜한 무대에 포이어바흐라는 배우가 나타난다.

그는 오디션을 받도록 약속되어 있으며,

성공적인 오디션으로 다음 공연에서 배역을 받고자 한다.

그가 약속된 시간에, 무대에 도착했지만 연출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그가 오디션을 받기 위해 스스로 정한 '탓소'의 '네 번째 막에 나오는 독백'을

들어 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조연출이 와서 연출가이며 극장장인 레타우 씨는

해야 할 일이 남아있어 아직 오지 못했다면서 포이어바흐에게 기다려 달라 한다.

예전에는 여러 배역을 받아 성공적으로 연기하여 명성을 얻었던 포이어바흐는

지난 7 년 동안을 정신병원에서 보내고 얼마 전에 퇴원하였음에도

연극무대로 돌아오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는 보쿰, 뒤셀도르프, 뮌스터 등 여러 시의 극장에서 배역을 얻기 위해

오디션을 받아보았지만 모욕적인 말을 들으며 거부당했던 사실이 드러난다.

그래서 그는 과거 많은 연극 공연을 함께 하여 성공한 연출가 레타우 씨에게

그의 모든 희망을 건다. 그는 이번 배역을 맡아 7년의 공백을 메우고

무대에 다시 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삼는다.

 

 


포어이바흐는 연출가를 기다리면서 조연출과 연기와 연극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러나 조연출은 고속도로 상에서 우연히 레타우 씨의 차를 얻어 타고 간 인연으로

조연출이 되었지 만 레타우 씨의 몸짓이나 자세, 태도를 그대로 흉내 내고 있을 뿐

연극이나 연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는 7년 전의 유명한 포이어바흐를

알아보기는커녕 셰익스피어조차도 모르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조연출은 실제로 포이어바흐를 테스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마지막에 연출가가 객석에 나타나고 포이어바흐는 조연출의 지시에 따라

그가 이미 두 번 연기한 경험이 있는 괴테의 '탓소' 중에서 탓소의 독백 부분을

평정을 잃지 않고 연기해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가 연기해 보이는

탓소의 독백은 마치 정신착란자의 불안한 독백처럼 된다.

연출가가 그의 연기에 대해 한마디 평도 없이 떠나버렸다는 것을 안 포이어바흐는

씁쓸히 웃으며 무대를 떠남으로써 작품은 끝을 맺는다.

 

 

 


'나, 포이이바흐'는 1986년 10월 18일 헤세(Volker Hesse)의 연출로 뮌헨에 있는 수도 극장에서 초연됐고 1987년 6월 코부르크에서 열린 '바이에른 연극의 날' 행사에 초청 공연됐다. 작가가 직접 연출하고 슈프랭어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이 1987년 3월 함부르크 탈리아극장 무대에 올려 졌고, 1987년 4월 브레멘에서 열린 '북독일 연극의 만남' 행사에 초청 공연되어 연출과 주연배우 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1987-1988년 공연 시즌만도 아홉 차례나 공연될 정도로 독일에서 인기 있는 작품이었으며 오늘날에도 꾸준히 연극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그러나 동독에선 서독에서의 초연 2년 뒤인 1988년 11월에 융에 연출로 드레스덴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외국에서도 많은 주목올 받은 이 작품은 바르샤바, 카라키^,로마, 파리 둥지에서 번역 공연되었다. 도르스트는 1974년 7~8월 그의 연극 작품인 '빙하기'를 Peter Zadek과 함께 노르웨이에서영화로 찍을 당시에 떠오르는 착상을 메모해둔다. 이것이 훈 날 이 작품의 토대가 된다. 이 처럼 작품 첫구상은 완성되기 이미 12년 전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메모는 연극작품으로 옮겨도 될 만한 정확한 계획 이었다기보다는 작품을 위한 부분적인 메모에 불과했다. 작가는 당시 배우가 와서 자기능력을 보여주는 오디션에 이미 몇 번 참석한 적이 있었으며, 그는 이때 이 오디션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매력적인 것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역겨운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처럼 오디션에 대한 상반된 감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를 작품화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마침내 '나, 포이어바흐'에서 포이어바흐란 배우가 오디션을 받기 위해 연출가를 기다리면서 조연출과 얘기를 나누는 과정을 작품의 주된 형식으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그는 작품 전체를 단지 오디션 그 자체에만 한정시키려 하지는 않았다.
도르스트는 자기 자신의 공허함을 버리고 하나의 일에 자신을 바칠 수 있는 자를 배우로 이해하고, 이 배우는 마술사와 같이 어떤 것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하며, 작품 속에서 실제상황을 전제로 하는 하나의 놀라운 일을 일으켜야만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배우를 작품 속의 주인공으로 설정했던 것이다.

 

 

 

작품의 제목은 작가의 의도된 하나의 기호로서 작품의 내용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도르스트의 많은 작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포이어바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름이지만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작품 내용상 인류학적 유물론의 창시자 포이어바흐 (Ludwig Andreas Feuerbach(1804-1872)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Feuerbach는 Feuer(불)와 Bach(시냇물)의 조어로 되어 있다. 이를 통하여 작가는 주인공을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불과 물의 두 가지 요소가 긴장관계 속에서 서로 대립하고 있는 인물임을 암시하고 있다.
'나, 포이어바흐'는 하나의 직업을 직접적으로 택하여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서 연극배우가 작품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일반적으로 배우에게서는 마치 배우의 실제 인물과 그 배우가 맡 은 배역에 따라 연기하는 인물이 구분되는 것처럼 작가 도르스트는 작품 속에서 인물 포이어바흐와 그가 무대에서 연기하는 인물을 구분한다. 배우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배역에 따라 자신을 수시로 변경함으로써 자아상실 속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도르스트의 우화적인 초기 작품의 경향에 대한비판적인 차원에서 이 인물은 수수께끼 같이 복잡하고 들여다볼 수 없는 인물들의 형상화가 정점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 인간은 많은 이념, 소원, 희망들의 집합체이고, 이것들은 서로 관련이 없으면서 서로 모순되고 서로 맞서 싸운다. 한 인간은 서로 다른 성질들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어느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도르스트는 그의 '정치적인 작품들'에서 언급하고 있다. 작 가의 언급처럼 포이어바흐 안에는 여러 요소들이 서로 혼재해 있으며, 이 요소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할 정도로 이질적이면서 서로 모순적이다. 때문에 배우는 끊임없이 자기자신 안에서 이러한 많은 요소들을 스스로 분리하고 과제에 직면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몰락해서는 안되며, 조형적으로 구체화하려는 시도에 맞서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 분리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은 한편으로는 정신분열 중의 경계에 살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 배우 포이어바흐가 있으며, 그가 작품 제목처럼 '나, 포이어바흐' 라고 말할 때 '나는 나다' 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는 자기가 없음을 의미한다. 배역에 따른 연기를 통하여 인물의 일회성, 재인식 가능성, 존재 문제가 다루어지는 이 작품 속에서 포이어바흐라는 이름의 '나'는 우선적으로 외견상 병적인 것과의 경계가 애매한 현대 자아체험의 분열성과 비연속성을 암시한다. 이것은 바로 현대인의 상징적인모습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오디션은 사회적인 종속성과 겸손, 무기력하게 내맡겨짐, 판단 당함, 자기 변장의 상이한 경험들을 파악하기 위해 계획되는 것이다. 연기자가 연출가 앞에서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보여주어야 하는 오디션은 한편으로는 난 어떤 사람이고, 난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상황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연출가가 연기자를 가학하면서 즐기는 새디즘 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작품 속의 주인공 포이어바흐는 7년 동안의 공백 후 다시금 배역을 얻으려고 연출가를 찾는다. 그는 작품의 무대인 레타우 극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한 번이 아니라 종종”, 즉 보쿰, 뒤셀도르프, 뮌스터 둥지에서 오디션을 받아보았지만, 그때마다 항상 그는 쓸모없다는 판정을 받는다. 이러한 탈락의 경험이 있는 포이어바흐는 이제 어떤 상황 하에서도 약점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이 두려움이 그를 위장해 보이도록 강요한다. 문제없이 기능하도록 고안된 사회에서 선택되고 인정받는 척도는 건장하고 강하며, 책임과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능력이고, 인간 존재의 침울함과 유약함은 허용되지 않는다. 포이어바흐는 선택받고 인정받기 위해 시간을 엄수하고 또 주어지는 일에 유연하게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자신의 행위를 즉시 변화시킬 수도 있다.
이에 반하여 연출가라는 인물은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보이지 않는 조정자”로서 무대 위의 모든 것을 통제한다. 그는 배우들이 도달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배우를 능숙하게 다룰 요령과 술수도 알고 있다. 또 연출가는 "피에 얼룩진 전사”로 묘사되는 것처럼 배우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힘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연출가는 조연출이 흉내 내는 모습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그려지고 있듯이 그는 단지 추측될 뿐이고 파악 불가능한 자로 비춰진다. 그래서 기다리던 연출자는 작품의 마지막 장에서 “레티우 씨가 오셨습니다.”와 “레타우 씨는 벌써 가셨습니다.”라는 조연출의 말 속에서 은유적으로 표현되고 있을 뿐이다. 연극의 끝 부분에서 “레타우 씨는 벌써 가셨습니다.”라는 조연출의 말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주인공에게 배역을 주며 관심을 기울여줄 사람이 확실치 않다는 사실이 표현된다. 포이어바흐는 절실하게 자신이 배역을 맡아야 함을 말하고 연기하면서, 그의 말을 들어주고 그를 이해하며 그에게 호의를 베풀어주는 연출가와의 관계를 애타게 염원하였지만, 결국 이러한 노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의 모든 노력, 즉 기원하고, 인정받으려는 것, 노여워하고, 꾸짖고, 과시하고, 불평 하고 위압적으로 말하고 행동하였던 것은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에게 연출의 예술은 일어나지 않음으로써 구원이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수동적이고 말문이 막혀 출구 없음을 인식하고 체념하면서 씁쓰름한 웃음을 지으며 퇴장한다.
'나, 포이어바흐'는 그의 절정의 시기를 보낸 어느 배우의 고독을 테마로 하고 있다. 연극에서 배우는 개성이나 자율의 공간이 없다. 배우에게는 상황 자체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없이 요구된 형식에 적응해야만 하는 사회 적인 강요와 엄격한 원칙에 따라야 함이 중시된다. 그래서 배우란 끊임없이 유약한 자이며,"초보자”로서 아주 많은 것을 견뎌내야만 한다.

 

 

 

작가 도르스트는 시대에 부적절한 이상만을 추구하는 전시 주의자들, 일상에서 벗어난 자들, 그들의 역할을 전시하려는 배우들은 단지 진실 되지 않은 공허한 인물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포이어바흐를 그들과 구분한다. 그러한 배우들과는 달리 포이어바흐는 그의 예술(또는 배역) 뒤에 자기 자신을 사라지도록 노력하고 또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한 번 얻은 안정을 계속 추구하지도 않고, 틀에 박힌 익숙한 방식을 따르지도 않으며, 이미 검증된 능력, 숙련성, 단어, 확신 등을 모두 잊어 자기 스스로를 낯설게 느끼게 될 때에만 비 로소 가능해진다. 포이어바흐는 "연극배우가 되어” 그의 전 삶을 연극에 바쳤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주인공이 모든 역할들을 유사하게 연기해내는 "흉내 내는 대가”임을 의미한다. 연극의 시작 부분에서 '의자' 를 가지고 즉흥적으로 연기해내는 그의 능력은 연기자로서 마땅히 요구되고 갖춰져야 한다. 작품이 기적에 대해서 다루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 작품 속에서 기적이 일어나야만 한다는 작가의 생각에 따라 포이어바흐가 마술을 부려 한 떼의 새들이 지저귀며 그의 주위에서 날게 한다. 연기자가 더 이상 아무것도 없는 가짜 계단을 실제 계단으로 착각하는 것처럼 마술을 부려 만들어낸 새들을 가지고, 이 작품은 환상의 세계에서 실제 세계의 경계로 넘어간다. 하지만 이런 것은 포이어바흐에게 특별한 위기를 가져온다. 그가 '무' 속에서 끝나는 허구의 사다리를 계속 오르려다 “지나쳐 추락하게 되는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는 “극단에 이르기까지” 미칠 만큼 예술가로서 “평정"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내 삶의 비극적인 착각이었소. 극장에는 평범한 삶의 제한이나 한계가 없으리라고 믿은 것 말이오. 사람들이 모든 것을, 말하자면 존재 전체를 가장 극도로, 가장 밝게 가장 극단에 이를 때까지 추구해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는 것 그것 말이오.” 라는 포이어바흐의 고백처럼, 그가 현실과 연극의 세계를 분리하여 생각한 것이 그의 문제였고 그래서 그가 무대를 떠나야 하는 이유가 된다. 이를 통하여 작가는 우선적으로 예술가의 자기 자신과의 "비극적” 인 불화, 예술의 해결할 수 없는 분리성을 문제시한다.
사다리에서 추락할 당시 포이어바흐는 처음으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어섰고 그 결과 머리를 다쳤다. 환상이 그를 사로잡기도 하였고 깨우쳐 주기도 하였다. 이 머리를 다친 사건 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서 그를 7년 동안 정신병원에서 치료받게 하고, 그에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이 작품은 균형을 잃은 예술가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인간이 정체성을 찾고 인정을 받기 위하여 끊임없이 행하는 투쟁뿐만 아니라, 실재와 가상 사이의 존재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한 마디로 이것은 연극에서의 삶과 삶에서의 연극의 문제이다.
작품 '나, 포이어바흐'는 작가 도르스트가 여러 작품에서 문제시하고 있는 것을 여전히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일관되게 '우리는 어떻게 살수 있단 말인가?' 라는 문제 제기와 함께 그 어떤 것도 안전한 것은 없으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찾으려 노력하는 진실이란 찾아낼 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식케 한다.

 

 

 

 

탕크레트 도르스트 (Tankred Dorst, 1925년 12월 19일 ~) 독일의 극작가다.
독일 튀링겐 주, 오버린트(Oberlind)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했다. 그는 기계 공장을 소유한 부유한 가정에서 어려움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고등학교 시절, 1943년 나치노동봉사에 소집되고, 1944년 군에 징집되어 서부전선에 그리고 포로가 된 후 1947년 말 서독으로 석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쟁에 대한 경험과 포로수용소 시절의 경험은 그의 작가로서의 경험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수용소의 특수성 때문에, 그는 수용소에서 사회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사람들과도 함께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독으로 석방 후 1950년부터 탕크레트 도르스트는 밤베르크 대학에서 독문학과 미술사 공부를 시작했고 1951년 뮌헨 대학으로 옮겨 독문학과 연극학을 전공한다.
그는 1953년부터 대학생 인형극단에서 극작과 연극 경험을 쌓으며 인형극 텍스트를 쓴다. 그가 본격적으로 연극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0년에 발표한<Die Kurve>가 뤼벡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부터이다. 같은 해<Gesellschaft im Herbst>가 만하임에서 성공적인 초연을 이룬 후 토르스트는 주목받는 작가로서 독일 연극계에 자신의 위치를 차지하고 지금까지 독일 현대연극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다른 작가와 달리 그의 작업 방식이 눈에 띄는 점은 공동 작업에 의한 집필방식이다. 도르스트는 1971년 TV영화<Sand>를 작업하는 동안 우르술라 에엘러(Ursula Ehler)를 알게 되었고 이후 에엘러는 도르스트의 삶의 동반자이자 공동 집필자로서 도르스트의 거의 모든 작품에 함께 이름을 올리고 있다. 탕크레트 도르스트의 작품은 강한 정치성과 역사성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인간들이 지닌 문제, 인간의 자기기만과 인간성 상실, 두절된 인간 상호간의 의사소통,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낯설음 등을 독특한 개방형식으로 표현한다. 그의 연극 작업은 다른 이들의 모습을 통해‘나’를 발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도르스트의 희곡은 변화하는 정치와 역사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나’의 위치를 돌아보게 만들며 ‘나’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작품으론 대표적으로 극작가로서 그의 위치를 확고하게 만들어준<Toller>(1968)가 있다.<Toller>는 변혁을 추구하는 유럽의 68혁명이 한창이던 시기에 1919년 뮌헨에서 혁명의 선두에 섰던 인물인 톨러를 주인공으로 혁명의 의미와 개혁을 요구하는 인간 존재의 의미를 다룬다. 도르스트가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은 혁명과 관련한 자신의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당시 사회가 지닌 모순 자체이며 ‘새로운 인간’이라는 표현주의적 꿈과 이상이 안고 있는 한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톨러는 정치 현실에서 거리가 먼 유토피아를 꿈꾸는 몽상가와도 같은 인물로 나타난다. 역사의식을 가지고 사회의 발전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독자와 관객은 톨러를 통해 개인으로서 자신의 역사적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Toller>이후 도르스트의 작품들은 세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Toller>를 포함한 정치 극 경향의 희곡들로<잔트 Sand>(1971),<빙하기 Eiszeit>(1973)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는 가정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로<캄보라초 정상에서 Auf dem Chimborazo>(1975),<빌라 Die Villa>(1980),<하인리히 혹은 환상의 아픔 Heinrich oder die Schmerzen der Phantasie>(1985),<검은 윤곽Die Schattenlinie>(1995) 등을 들 수 있다. 세 번째는 중세 기사에 관한 전설을 각색한 것으로<메를린 혹은 황무지 Merlin oder Das wüste Land>(1981),<파르치팔 Parzival>(1987),<가련한 하인리히의 전설 Die Lengenda vorn armen Heinrich>(1997) 등이 이에 해당한다. 동화나 신화 등이 주로 각색의 소재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가정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 또한 단순하고 개인적인 가족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시대의 사회 문제가 역사와 관련하여 반영된다. 여기에는 인물들의 회상을 통한 과거의 기록이 현재와 연결되어 변화하는 역사의 흐름과 인간의 변화를 드러내는 다양한 표현 방식이 이용되고 있다. 도르스트에게 과거는 현재와 유리된 것이 아니라 현재를 판단하고 변화를 인식할 수 있는 토대와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도르스트가 옛 전설을 소재로 또 다른 작품의 범주를 구축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도르스트의 시각으로 본다면 현재는 어느 한 가지로 규정하거나 어느 하나를 주장할 수 없는 변화의 상황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 변화 자체를 아무 의식 없이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그 변화의 상황에 존재하는 인간을 관찰하고 늘 새로운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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