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나폴리. 부유하고 교활한 도박꾼 볼포네는
하인에게 자신이 치명적인 병에 걸려 다 죽어간다는 소문을 내게 한다.
볼포네가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재산을 상속받겠다는 속셈으로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기 시작한다.
볼포네는 이렇게 해서 그들의 재산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약삭빠른 하인의 활약으로 값진 선물들이 계속 들어온다.
공증인 그레피노, 포목상 베르투치오, 고리대금업자 세코가 아첨을 떨며
매일같이 찾아온다. 볼포네외 하인은 어리석은 친구들의 모습을 비웃지만,
거짓말 위에 거짓말이 쌓이면서 그들의 계획도 틀어지기 시작하는데....
16세기 영국의 극작가 벤 존슨의 풍자극인 '볼포네'(Volpone)는 '여우'라는 뜻이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돈과 탐욕에 이끌린 사람들이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소동을 그렸다. 공감이 가는 캐릭터보다는 반감이 드는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웃음을 통한 희극에서 진지함을 찾는 것이 존슨의 풍자극의 특징이며, 그의 대표작이다.
벤 존슨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볼포네, 또는 여우」(이하「볼포네」) 는 1606년에 씌어졌으며. 킹즈멘 극단에 의해 글러브 극장에서 최초로 상연되었다. 런던을 주 무대로 하는 존슨의 다른 도시 희극들과는 달리 「볼포네」의 배경은 베네치아이다. 당시 이탈리아를 무대로 극을 쓰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탈리아는 각종 악행과 부패가 만연한 곳이라는 통념이 영국인들을 사로잡고 있었고 베네치아는 전형적인 상업도시이자 도시국가로서 부와 세속화, 사치, 정치적 책략의 온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일부 학자들의 주장처럼 볼포네의 베네치아를 런던에 대한 은유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영국에서 온 여행객들인 폴리틱 경 부부와 페레그리네의 존재는 베네치아를 런던과 독립적인 공간으로 존재하게 한다. 이들 영국인들의 존재는 베네치아라는 배경과 런던 관객 간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한다. 존슨은 베네치아를 무대로 볼포네와 그의 유산을 노리는 이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인간 보편적인 것으로 그려내는 한편, 영국 여행객들의 서브-플롯을 통하여 영국 당시 사회상과 청교도주의에 대해 직접 언급하며 풍자하고 있다. 「볼포네」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풍자이자, 탐욕에 눈이 어두워 잘 속아 넘어가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풍자이다. 베네치아의 거물인 볼포네는 3년째 중병에 든 것처럼 꾸미고 병석에 누워 있다. 자식도 아내도 없는 볼포네의 유산을 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선물을 바치는 등 볼포네의 눈에 들고자 애를 쓴다. 볼포네에게 아첨하며 얹혀사는 식객 모스카는 볼토레. 코르바치오, 코르비노 등 방문객들의 유산 상속에 대한 희망을 부풀리며 더 많은 선물을 바치도록 유도한다. 역설적으로, 볼포네와 모스카의 탐욕은 다른 인간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이용하여 채워진다. 볼포네는 이에 대해 "탐욕이라는 큰 죄에 대해 이 보다 더 희귀한 형벌이 어디 있겠는가."라며 자신의 꾀병을 정당화한다. 지나친 탐욕에서 기인한 재물 획득이라는 명분 앞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인 가족의 가치도 쉽게 해체된다. 상속이라는 희망 앞에서 코르비노는 아내 실리어를 손수 매춘의 길로 알선하며, 코르바치오는 친아들 보나리오의 상속권을 박탈한다. 어떤 의미에서 존슨은 탐욕보다 어리석음을 더 비판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볼포네와 모스카의 술수와 책략을 전적으로 비난하기보다는 그들의 편에 서서 같이 즐길 수 있게 된다.
'볼포네'는 연극성이 강한 작품이다. 무대 위의 배우는 등장인물을 연기하고 그 등장인물은 극 중에서 또 다른 역을 모색한다.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게 황금을 찬미하던 볼포네는 방문객이 찾아오자 급히 모자를 쓰고 눈에 연고를 바르며 "가짜 기침에, 가짜 폐병에, 가짜 중풍, 가짜 졸도에, 가짜 마비에. 가짜 감기로 병자 역을 연기할 준비를 마친다. 잠시 후 볼포네는 완벽한 병자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볼토레를 맞이한다. 볼포네의 연기는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모스카에게서 코르비노의 아내 실리어의 미모에 대해 듣고 그녀를 보고자 떠돌이 약장수로 변장하여 만투아의 스코토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한다. 4막 법정에서의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긴 볼포네와 모스카는 그들의 "연극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자축한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 볼포네는 유산 사냥꾼들의 아연실색 한 모습을 보며 "진귀한 웃음의 성찬”으로 삼고자, 자신이 죽고 식객 모스카가 상속인이 된 것으로 책략을 꾸민다. 게다가. 유산 사냥꾼들을 더 괴롭히고 그들의 고통을 즐기려고, 볼포네는 법정하사관으로 변장하고 이들을 찾아 길을 나선다. 한편 모스카는 볼포네의 상속인으로 탈바꿈해 베네치아 거부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볼포네는 타고난 배우이다. 볼포네는 자신의 병자 연기나 떠돌이 약장수 연기에 대해 모스카의 칭찬을 듣고 싶어 한다. 실제로 볼포네는 배우의 경력이 있으며. "젊은 안티누스 역을 했었는데. 참석했던 모든 귀부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그 시절을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는다. 실리어를 유혹하는 데에도, 볼포네는 신들의 이야기를 지치도록 연기해”보자고 제안하고, 그녀를 "프랑스의 활달한 부인처럼 입혀보거나, 멋진 토스카니 귀부인이나, 거만한 스페인 미녀로, 가끔은 페르시아 군주의 아내처럼, 또 '터키 술탄의 정부도 좋고. 변화를 주기 위해, 우리 베네치아의 뛰어난 고급 매춘부처럼도 입혀보고, 활기찬 흑인이나. 냉정한 러시아인처럼도" 옷을 입히고 자신도 "역시 그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역을 맡고자 한다.
「볼포네」의 연극적 요소는 부패하고 타락한 황금만능주의 적 사회에 대한 풍자의 신랄함을 상쇄시키는 역할을 한다. 존슨이 「볼포네」의 서막에서 밝히듯이, "잉크 성분 중에 쓸개즙과 신 녹반은 빼버리고, 약간의 소금 성분만 남겨놓아' 너무 신랄하지 않게 정신적 건강을 개선하도록 하는 것이다. 존슨은 관객을 향한 발언을 통해 볼포네와 모스카의 끊임없는 책략과 연기에 관객을 한편으로 끌어들인다. 존슨이 「볼포네」의 '서간'에서 인정하고 있듯이 볼포네의 결론은 희극답지 않게 엄격하다. 모스카는 채찍 형을 당한 후, 갤리선의 종신 노예로 지내게 되고, 볼포네는 평생 족쇄를 차고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볼토레와 코르바치오, 코르비노는 각각 추방당하거나, 수도원에 감금되고,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도록 거리에 전시되는 형을 받는다. 이러한 결론은 존슨이 강조하는 문학의 교훈적인 기능에 적합한 것이지만, 관객의 "심경을 어지럽히려는 것이 아니라 바로잡고자"하는 의도에는 어긋날 수도 있다 (「연금술사」서막). 그러므로 존슨은 에필로그를 위해 볼포네를 다시 등장시켜 관객의 박수를 유도함으로써, 극중 세계에서의 도덕적 판단을 실제 세계의 연극적 판단으로 완화시키는 것이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탕크레트 도르스트 '나, 포이어바흐' (2) | 2024.04.07 |
---|---|
해롤드 핀터 '빅토리아 역' (1) | 2024.04.06 |
에드워드 벌워 라이튼 '돈(Money)' (1) | 2024.04.03 |
후안 마요르가 '야행성동물' (1) | 2024.04.02 |
아프라 벤 '떠돌이' (1) | 2024.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