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귀족의 딸인 플로린다와 헬레나는 아버지와 오빠에 의해
원치 않는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큰딸 플로린다는 영국 청년 벨빌을 연모하지만, 아버지는 그를 돈 많은
이탈리아 늙은이 빈센티오에게 시집보내려하고
오빠는 누이동생을 안타까워하는 척하며 자신의 친구이자 도시의 실력자인
총독 아들 안토니오와 결혼할 것을 강권하고 있다.
둘째 헬레나는 지참금을 아끼려는 아버지의 욕심때문에
평생 수녀원에서 수녀로 살아갈 것을 강요받는다.
두 자매는 사랑이 없는 강요된 결혼을 여성을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사악한 관습이라 비판하며 자신이 원하는 사랑과 삶을 찾아
축제가 열리는 거리로 나선다.
아버지의 지배에서는 벗어났지만, 새로운 위험에 직면하게 되는 그들.
과연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떠돌이'는 아프라벤의 희극 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왕정복고기의 수많은 희극에서처럼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과
그것을 방해하는 구세대와의 대립을 보여준다.
하지만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가는
매력적인 여성인물의 창조는 바로 '떠돌이'의 가장 뛰어난 성취 중 하나이자,
다른 작품들과 가장 다른 점이다.
대중 앞에 나선다는 점에서 여성작가를 창녀와 동일시하며 비방하던 17세기,
여성작가 아프라 벤은 유일하게 여성의 성적욕망을 솔직하고 대담하게 다루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만의 방>에서 아프라 벤을 여성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할 수 있도록 도와준 최초의 여성 직업극작가로 칭송하며
"여성들 모두 아프라 벤의 무덤에 꽃을 바쳐야 한다"고 썼다.
아프라 벤(1640-1689)은 펜으로 생업을 삼은 첫 영국여인으로 1670년대와 1680년대에 걸쳐 극, 시, 산문, 번역물을 생산했고 그 시대에 가장 활발하고 성공적인 작가에 속했다.
“여자가 남자만큼 글을 쓸 수 없다는 이유를 나는 찾지 못한다.”고 영어권의 첫 여성극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벤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함을 알았지만 그 이후 대부분의 문학 비평가들과 역사가들은 여성에 대하여 덜 동정적이다. 이들은 벤의 작품이 남자의 작품보다 열등하다고 믿었고 따라서 그녀 삶의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려고 애쓰지 않았으며 그녀가 동시대인들 가운데 차지했어야 할 위치를 보존하지 않았다. 비록 그녀에 대하여 지금까지 알려진 대부분이 이성적 추측에 근거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영문학사의 매우 흥미로운 문인으로 남아있다.
크롬웰 시대가 열릴 무렵인 1640년에 태어난 아프라 벤은 1660년 찰스 2세의 왕정복고 (1660년 과 1700년경 사이로 찰스 2세의 왕위 복고 이후) 후 얼마동안 1663년과 1664년 1년간 남미의 동북해안에 있는 수리남(Surinam)으로 갔다. 여기서 벤은 영어로 쓰인 첫 번째 소설이라는 주장과 최초의 반노예 소설로 널리 간주되고 있는 Oroonoko의 재료를 모았다. 이 이야기는 정직한 성품의 흑인남자가 백인과 원주민 사회에서 속임수와 술수로 시험받는 내용이다. 인간을 소유재산으로 취급하는 데에 대한 반대와 백인 사회에서 흑인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칭찬을 널리 촉구하는 것은 놀랍다. 이 이야기는 벤 자신이 수리남에서의 경험을 근거로 썼기 때문에 벤은 아마존의 삼림을 여행한 첫 백인 여성 중 한 명임에는 틀림없다. 벤은 영국으로 돌아왔다가 왕의 스파이 임무를 맡고 바로 폴란드로 갔다. 왕에 대한 그녀의 충성은 궁정 지도층에 알려지게 되었다. 벤은 최소한 15편의 극과 이야기, 시 모음집을 내었고 그녀의 편지 가운데는 극 평론과 문학이론에 관한 글도 담겨 있는데, 이것은 그 당시 여성이 쓴 것으로는 처음 듣는 글이다. 벤은 죽은 뒤, 어떤 문인에게도 드물게 보는 영광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초기 왕정복고 시대의 극들은 성적 음모와 빈정대는 어투로 차있으며 아프라 벤의 극도 예외 는 아니다. The Amorous Prince(1611), The Dutch Lover(1673)처럼 제목만 보아도 사랑과 성적결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암시를 받는다. 벤의 극들은 곧잘 사랑의 힘과 미를 언급하고 극의 갈등은 사랑을 가로막는 사회의 제약 주변을 중심으로 삼는다. 벤의 극은 동시대의 극처럼 솔직하다. 당시의 남성작가들과는 달리 벤은 그 사회의 성적 관심에 대해서만 쓰지는 않았다. 그녀는 강요된 결혼에 반대했고 당시의 정치에 대한 의견을 토로하여 한 번은 왕의 신하에게 체포된 적도 있었다.
벤이 죽은 후 그녀의 명성은 줄어들었다. 18세기는 왕정복고시대 드라마가 지닌 개방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벤에 대한 직접적인 인신공격도 혼히 발생하였다. 197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비평이 다른 시대의 성적 정치를 말끔히 씻어내기 시작하였고 벤의 작품도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벤의 극작 중간기에 속하는 '떠돌이'는 그 속편 '떠돌이 2편'(The Second Part of The Rover)과 마찬가지로 영국의 토마스 킬리그류(Thomas Killigrew, 1612-1683)의 서재극(closet drama)인 '토마쏘(Thomaso) 또는 『방랑자』(The Wamderer)에 근거한 극이다. '떠돌이'는 계략희극(intrigue comedy)으로 직업적인 이탈리아 배우 단체들이 16세기 중엽에 발전시킨 희극의 한 형태였던 코메디아 델 아르테(commedia Deirarte)에서 따온 할리퀸 (Harlequin)과 스카라무슈{Scaramouch)가 사용된다. 떠돌이 윌모어는 돈 한푼 없는 열렬한 기사로서 명예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며 매력적인 여인은 모두 쫓아다니는, 여성에게 친절한 전형적인 한량이다. 그는 자유를 사랑하며 그의 여인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행동하여 주기를 바란다. 안젤리카를 손에 넣자마자 의식적으로 그녀를 무시한 그는 “즐거운 새들처럼 아무 숲에서나 노래 부르고 아무 가지에나 않는다.”면서 헬레나에게로 날아간다. 그러나 헬레나야말로 자기의 상대임을 그는 발견하게 된다. 헬레나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재치가 있다. 자유스럽고 유쾌한, 서로 통하는 두 사람의 만남과 이들의 재치 있는 대화는 셰익스피어의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의 비어트리스와 베네디크나 월리엄 콩그리브(William Congreve)의 『세상 돌아가는 법』(The Way of The World)에 나오는 미라벨과 밀라망을 연상시킨다.
헬레나와 윌모어는 어리석은 세상에서 실행 가능한 행로를 찾는데 성공한다. 콩그리브의 연인들처럼 우아한 맛은 결여되어 있지만 그 대신 이들은 삶의 개방과 기쁨으로 차 있다. 만약 윌모어와 헬레나의 관계가 작가 벤이 진정으로 생각하는 연애관을 대표한다면, 또 다른 선택으로는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워도 관습적인 한쪽의 블런트와 또 한쪽의 페드로와 안토니오가 있다. 블런트는 그 시대의 희극 어디에나 편재하는 존재이며, 윌모어처럼 그 역시 여인을 찾아다니지만 그러나 그의 관심은 윌모어와는 달리 육욕적이다. 그는 여자는 돈 주고 얼마든지 사고파는 대상으로 보고 있으며 사랑은 관능적인 욕구에 불과하다고 본다. 강요된 결혼을 공격하고 경제력이나 명성 있는 위신을 영구히 존속시키려는 계산된 짝짓기에 대한 공격은 벤 작품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주제이다. 극중의 벨빌과 플로린다는 모어와 헬레나와 대비되는 쌍이다. 벤은 일관되게 연인들을 복식으로 등장시키어 흑백의 선명한 대조를 강조하기 위함보다는 같은 빛깔의 서로 다른 색조를 대비하여 보여준다. 윌모어와 헬레나는 재치나 활력에서 뛰어나고 또 전형적인 결혼 질서를 스스로에 맞게 변화시키는 반면, 벨빌과 플로린다는 그 전형 속에서 기능하는 연인들을 대표한다. 윌모어와 헬레나는 관습적 결혼제도의 위협을 깨닫고 있지만 이들은 이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떠돌이 자신의 위트와 쾌활 성, 자유분방함은 왕정복고 시대의 희극과 연관이 있다.
(Aphra Behn, 1640∼1689)
버지니아 울프에 의해 최초의 직업 여성 작가로 평가받고 재조명된 작가다. 한때는 각주의 자리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제는 왕정복고 시대 연극의 주요한 작가로서 문학의 정전의 일부로 확고히 포함되게 되었다. 벤의 생애와 관련해서는 많은 부분이 불확실하게 남아 있다. 현재까지 거론되고 있는 바로는, 벤이 캔터베리 혹은 와이(Wye)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은 존슨(Johnson)이라는 이름을 가진 캔터베리의 젠틀맨으로 서인도제도 수리남(Surinam)의 중장으로 임명되었다 한다. 수리남에서의 짧은 체제 후에 부친이 항해 중에 사망하자 벤은 영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수리남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초의 반노예 소설로 평가받는 ≪오루노코(Oroonoko)≫ (1688)라를 썼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 작품을 근거로 벤의 생애가 추정되기도 한다. 한편 벤이 와이에 살았던 이발사의 딸이었으며 ≪오루노코≫ 역시 본인의 직접 경험이 아니라 책과 런던 지인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을 기반으로 벤이 창작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1688년 고질병에 걸렸고, 빚과 병으로 인해 말년은 행복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89년 4월 16일 사망했고, 4일 뒤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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