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폴도 파로니는 풀리니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자
몹시 분개하며 안타까워한다. 풀리니가 자신의 목숨을
좀 더 가치 있게 만들며 죽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면 파로니 자신의 정적인 귀도 마짜리니를 먼저
죽여준 후 자살을 했어야 한다는 것.
병에 걸려 있었고 결국 자살까지 할 거였으면 마짜리니를 죽여준다고
해서 특별히 희생이라고 할 것도 없지 않겠느냐며
그를 바보라고 비난한다.
어두운 방에서 이 이야기를 우연히 들은 루카는 풀리니처럼
병이 들고 자살을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다.
그는 이미 귀도 마짜리니의 사주를 받고 파로니를 죽인 후 자살하려
그 방에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파로니를 죽이러 왔다가
풀리니를 바보라고 매도하는 그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결심을 바꾼다.
그는 파로니를 총으로 위협하며 자백서를 쓰게 하는데...
'파도니를 죽이지 않았지만 자신은 바보가 아니다.'... 는 내용이다.
풀리니의 자살에서 시작된 이 극은 풀리니의 죽음이 바보 같은 것인지,
그의 죽음을 바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바보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피란델로적인 독특한 유머 - 우모리스모(L'umorismo) - 를 느낄 수 있는 1922년 작품이다.
『바보』는 피란델로의 극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연된 작품이다. 이 극은 1933년 박용철이 번역하여 극예술연구회의 제5회 공연으로 〈조선극장〉에서 공연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949년에 보성전문에서는 전국남녀 대학연극경연대회 참가작으로 이 작품을 선정하여 『천치』란 제목으로 김경옥이 번역, 이화삼의 연출로 〈시공관〉에서 공연하였다.
당시 공연 평을 보면 심훈은 1933년 〈조선중앙일보〉의 「극예술연구회 제5회 공연관극기」를 통해 "박용철 역의 '천치'는 극 해석에 있어도 연출에 있어서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본다.”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김진수는 1949년 〈경향신문〉의 「신극수립의 봉화」라는 글에서 보성전문의 '천치'를 비롯하여 그 외 대학 극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로서. "우리의 개념으로 보아 학생극하면 어딘지 모르게 미숙하고 세련되지 못하고 아마추어의 생경한 연극으로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이런 상식을 초월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문자 그래도 학생극의 승리와 아마추어 연극의 신경지를 개척했다고 볼 수 있다." 며 호평하고 있다. 어떻게 번역이 되고 공연이 이루어져 위와 같은 평이 나오게 되었는지는 대본이 유실되어 알 수가 없지만 당시에도 피란델로 극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 피란델로 극과 비평에 관한 글들이 모두 일역본이나 영역 본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아 당시 공연의 번역 또한 영역본이나 일역 본을 사용한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
1867∼1936. 이탈리아의 극작가 소설가 단편작가.
'작가를 찾는 6명의 등장인물' (1921)이라는 희곡에서 극중극을 창안하여 근대 희곡의 중요한 혁신자가 되었으며, 1934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피란델로의 초기 서술 양식은 19세기말에 활동한 뛰어난 이탈리아 소설가들인 루이지 카푸아나와 조반니 베르가의 베리스모(사실주의)에서 유래한다. 그는 1898년에 희곡 〈에필로그 L'epilogo〉를 통해 처음으로 극문학에 관심을 돌렸지만, 이 희곡은 여러 가지 사건으로 상연이 지연되어 1910년에야 〈족쇄 La morsa〉로 제목이 바뀌어 상연되었다. 이런 사건들 때문에 그는 1917년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네가 옳다 Cos' ie (se vi pare)〉가 성공할 때까지는 어쩌다 한 번씩만 희곡을 시도했다.
첫 희곡이 뒤늦게야 상연된 것은 그의 극작 능력이 발전하는 데 오히려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1920년에 피란델로는 자신의 예술에 대해 "생각 컨데 인생은 매우 슬픈 익살이다. 왜,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 그 욕망이 어디서 오는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우리는 하나의 현실을 (저마다 다른 현실을 각자 하나씩) 창조함으로써 끊임없이 자신을 속이려는 욕망을 우리 속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따금 이 현실이 헛되고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내 예술은 자신을 속이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쓰라린 연민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 연민 뒤에는 반드시 인간을 자기기만으로 몰아넣는 운명의 잔인한 비웃음이 따라오게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이 절망적인 견해는 피란델로의 희곡에서 가장 힘차게 표현되었다. 그의 희곡은 처음에는 지나치게 '지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그 밑에 깔려 있는 감수성과 연민으로 인정을 받았다. 사무원과 교사 및 하숙집 주인처럼 평범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는 그의 희곡이 카푸아나와 베르가의 '진실주의'를 반영하고 있지만, 그러한 주인공들의 변화하는 운명에서는 보편적인 인간의 의미를 결론으로 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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