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 75

아이잭 신 '외계인을 만난 사람들'

이야기는 의문의 사건을 추적하는 스릴러에서 출발해 한국 근대사와 현재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점을 가로지르며 마치 한 편의 시사 다큐멘터리를 보듯 쉴 새 없이 펼쳐진다. 비정규직으로 방송국에 글을 팔아 먹고사는 작가, 그 작가의 아이디어를 빨아먹고 사는 방송국 PD, 군수품 판매업자, 그로부터 대량의 물품을 사들이려는 의문의 사람들, 그리고 산 속의 기도원까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운데 반전이 거듭되던 사건은 뜻밖의 결말에 다다른다. 마치 과거사를 단 한 번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진실을 덮어가며 도착한,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된 지금의 우리 사회처럼. 과연 우리의 상식 바깥에 존재하며 세상을 지배하려는 외계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 강남 부유층과 북핵 문제에..

한국희곡 2024.03.31

이지혜 '서대문구 홍제2동'

수십 명의 사람들이 다닥다닥 모여 사는 서대문구 홍제2동의 오래된 빌라골목. 아침마다 시끄럽게 재활용쓰레기를 정리하는 소리에 유튜브 방송을 하다 동틀 녘에 잠이 든 애진은 돌아버릴 지경이다. 참다못해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가지만 쓰레기 정리하던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설상가상으로 현관문은 잠겨버렸다. 열쇠는 집 안에 있고 잠옷 바람으로 동동거리던 애진은 같은 건물에 사는 유덕의 도움으로 열쇠 아저씨를 불러 겨우 집에 들어간다. 새벽이 되어 다시 방송을 시작한 유튜버 애진은 닭 울음소리 때문에 방송을 방해받고 새벽에 닭을 찾아 나선다. 닭을 촬영하는 순간 동물학대범으로 몰리고 이웃 간에 다시 한 번 오해와 불신이 쌓이게 된다. 계속해서 발생하는 이상한 사건들로 주변에 점점 새로운 사람들이 모이면서 단지 평화롭게..

한국희곡 2024.03.31

뮤지컬 '가스펠'(Godspell)

소크라테스,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차례로 등장하여 자신을 소개한다. 소크라테스는 지성의 대표자로, 아퀴나스는 모든 신학의 대부로 각자를 나타내고 나머지 사람들도 여러 가지 말들로 자신을 소리 높여 드러낸다. 모두가 '인생' 이란 이런 것이야!'라고 말해 보지만 그것은 혼돈일 뿐, 완전한 것은 없어 보인다. 이들이 퇴장하면 세례 요한이 등장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면서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 자기 뒤에 오시리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세례 받기를 원하는 한 남자가 나타난다. 이 사람이 자신이 예언하던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임을 아는 요한은 자신이 감히 세례를 베풀 수 없다고 사양했지만 예수는 자신의 몸도 씻어야 한다고 조용히 말씀하신다. 죄 많은 우리를 용서해 달라는 가스펠..

외국희곡 2024.03.30

이오진 '오십팔키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수학여행에 가고 싶지 않았던 고교 2학년 학생 2명의 이야기를 그린다. 수학여행을 앞두고 살을 빼기로 결심한 두 학생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며, 한 달에 체중 9㎏ 이상을 감량하면 돈을 돌려주겠다고 쓴 광고 현수막을 보고 같은 헬스클럽을 다닌다. 하지만 아이들은 수학여행에 가기 전까지 9㎏을 빼는 것에 실패하고, 자신의 몸을 미워하며 수학여행 길에 오른다. 공통점이 많은 두 아이였지만 여전히 친구가 되지 못하고 각자다. 배에서도 혼자였고, 과자를 먹을 때도 음료수를 마실 때도 혼자였다. 수학여행이 끝나고 돌아와 헬스클럽에서 만난 이후에야 둘은 친구가 되는데…. 작가의 글 - 이오진 “9키로를 빼면 친구가 생길까. 오십팔키로" 중고등학교 때 친구가 없었다. 그 때는 소풍이나 수학..

한국희곡 2024.03.30

아멜리 노통 '살인자의 건강법'

주인공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문호 ‘프레텍스타 타슈’라는 작가다. 83세의 노 작가는 언변이 뛰어나고 논리에도 강해 일반 기자들이 전전긍긍하며 그에게 문학에 대해 인터뷰를 하다가 번번이 당하기만 한다. 그런데 4번째 한 여기자의 인터뷰부터는 상황이 급변한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에 빛나는 화려한 언변과 기자들을 당황하게 하는 궤변조차 그녀에겐 통하지 않는다. 그녀는 작가의 전 작품을 다 읽었으며 마지막 미완성 절필이 된 작품에 대해 끈질기게 질문과 공갈, 핍박을 하며 65년 6개월 전에 있었던 살인 사건을 파헤친다. 전반부에서 주인공 타슈가 기자들에게 한 행동이나 말이 다소 의외라서 사이코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사건의 결론을 보고나니 타슈의 생각과 언어, 행동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프랑스 문단에서 '..

외국희곡 2024.03.30

기하라 '친절한 고르스키씨'

1969년 미국. 심리상담소를 개설한 한국인 미스터 킴은 아직 제대로 된 허가증도 수료증도 없다. 그곳에 갑자기 상담을 받고 싶다고 찾아온 암스트롱은 자신이 6.25전쟁때 생사의 갈림길에서 접신한 영혼이 있는데 그 영혼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며 굿을 청한다. 만신인 아버지의 신 대물림을 피하기 위해 여동생에게 신내림을 떠넘기고 미국으로 도피해 온 미스터 킴의 처지와 광화문 광장에 동상이 건립되면서 한국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이순신 장순의 혼 ‘친절한 고르스키씨’가 교차되면서 미스터 킴은 동생에게 물어가며 씻김굿을 준비하는데…. 의 기하라 작가는 비범한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 달 착륙의 성과를 이룰 때, 또 다른 비범한 존재의 도움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상상에서 이 작품의 구상을 시작했다고 ..

한국희곡 2024.03.29

장우재 '지정 Self-Designation'

멀지 않은 미래. AGI*가 사람의 인지신경을 직접 조절할 수 있고, 이를 정신상담 분야에 적용한 ‘AGI 정신과의사’가 등장한 시대다. 몇 년 전 단편으로 세계적인 영화제에 진출하여 능력을 인정받은 영화과 4학년 ‘제니’는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다. 제니는 AGI 정신과의사 ‘콜리’와의 상담에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자 콜리가 제안한 ‘지정’ 에 관심을 둔다. 콜리는 제니의 지정 알고리즘을 분석하는 와중에 그의 심리적 장애요인이 예상과 다른, 스스로에게 있다고 판단하고 제니와 함께 다른 방식의 지정을 시작한다. 이후 제니의 소식에 학교는 술렁이고 제니의 선택이 정신적 자살이라는 논란까지 벌어지는데…. 지정 후 제니는 외부에서 보기에 ‘재능’과 ‘소통능력’, ‘유한 성격’을 가진 이상적인 인간이 된다. ..

한국희곡 2024.03.29

오노레 드 발자크 '사기꾼'

파산한 투자 사업가 메르카데는 점점 더 압박을 받는 채권자들을 안심시키려 애쓴다. 이를 위해 그는 인도에서 큰 사업을 위해 떠난 옛 파트너인 고도를 불러들이려는데, 그 고도가 빨리 돌아와 자신의 빚을 관대하게 갚아줄 거라고 채권자를 설득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채권자들이 참을성이 없어지자, 메르카데는 딸 쥘리를 부유한 청년인 무슈 드라 브리브와 결혼시키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드라 브리브는 메르카데보다 훨씬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게다가, 쥘리는 이미 가난한 청년 마나르와 사랑에 빠졌고.... 메르카데는 젊은 드라 브리브의 가면을 벗기고 그 실체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를 자신의 계획에 끌여들여 고도라고 만들려 계획을 꾸민다. 메르카데의 계획처럼 고도는 파리로 돌아와 친구의 채권자들에게 돈을..

외국희곡 2024.03.29

레싱 '에밀리아 갈로티'

괴테의 에 마지막 베르테르의 주검 옆에 펼쳐져 있던 책으로도 유명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보다 2년 앞서 출간되고 공연되었다. 는 현재까지 널리 읽히고 꾸준히 상연되는, 독일 비극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또 18세기 독일문학 가운데 가장 논란이 많은 작품이다. 이 작품이 단순히 한 가정의 비극을 그린 가정극인가, 아니면 독재자와 절대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정치 극인가 하는 문제가 논쟁의 핵심이다. 의 소재는 기원전 5세기 로마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권력자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평민계급의 순결한 처녀 비르기니아에게 반해서 유혹하려 하나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는 그녀를 수중에 넣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부당하게 권력을 휘두른다. 그러자 그녀의 아버지가 딸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딸을 칼로 찔러 죽인다. 비..

외국희곡 2024.03.28

최원종 '욕조에는 피가 한가득'

제목부터 섬틋한 「욕조에는 피가 한가득」 은 공연이 안된 작품이다. 코미디인가, 로맨스인가 하며 가볍게 책을 열었다가... 놀랍다. 실험적이고 잔인하고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세 명의 등장인물이 등장하는데 부부인 남자와 여자. 그리고 또 다른 침대남자. (아마도 환상의 남자인듯) 3년간 결혼생활을 한 부부는 서로를 죽이려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도 모호하다. 젊어서 일찍 결혼했으나 사랑이 식은 건지, 굶주린 건지 서로의 대화도 이기적으로, 또 살벌하게 이뤄진다. 침대, 욕조, 몇 안되는 무대에 날카롭게 깎은 연필... "난 암흑 속에서 삶의 수수께기 해답을 찾았다네." 하고 읊으며 맛있게 먹는 스프에는 수면제를 비롯한 각종 약들이 들어있다. 한국인들의 삶, 젊은 부부가 처해있는 애정 없는 삶, 그 내면의 ..

한국희곡 2024.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