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 74

문정연 '황천기담'

황천 강가. 온갖 죽은 것들이 모이는 곳. 눈앞엔 다만 황천강이 흐른다. 벽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책장이다. 책은 빼곡하게 꽂혀 있다. 온갖 인간들의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운명이 적힌 인간들의 운명책이다. 남자는 오늘도 황천강의 선녀를 유혹해 운명이야기를 읽어 달라 조른다. 남자는 살아있는 인간이라 저승의 운명책을 읽지 못한다. 죽은 후에나 알게 될 온갖 운명이야기를 듣는, 살아있는 이 남자는 그 이야기를 세상에 팔아 살아가는 3류소설가다. 그러나 남자의 진짜 관심은 언제나 하나, 바로 자신의 운명이다. 선녀는 기어코 본인의 운명을 알고자 하는 살아있는 인간의 욕망을 비웃으면서도 남자와 놀아나는 것이 흥겨워 못 이기는 척 남자의 운명을 읽어주는데... 황천강 수레꾼이 오늘도 죽은 인간을 싣고 황천강가로 ..

한국희곡 2024.03.23

따찌아나 까찐스까야 '두 사람을 위한 만찬'

여인은 한적하고 인적이 드문 곳에 혼자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중년의 남자가 전단지를 들고 적혀있는 주소가 이 집이 맞느냐며 그들의 대화는 시작된다. 전단지 속 광고는 경비를 구한다는 것이다. 이 연극에서 여인은 경계심이 매우 많지만 또 한편으로는 대화를 하면서 자기를 드러내기 바쁘다. 경비를 본인이 구한다고 광고를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글쎄.. 그 광고를 누가 냈나?’ 하며 능청피우고 경계하는 걸 볼 수 있다. 이 남자는 무뚝뚝하기 그지없고, 여인은 그에 대한 경계심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지만 끝내 그를 고용함으로써 그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인의 성격은 매우 여리고 경계심이 많다. 또 한편으로 외로움을 많이 탄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를 경계하면서 식탁에 둘이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며 대화..

외국희곡 2024.03.23

최은영 '항해자들'

이미 태양계를 벗어나 하염없이 우주를 배회하고 있는 우주선. 40년 이상을 수면 비행하던 항해자들이 잠에서 깨어난다. 도박사와 천박사, 그리고 피박사. 이들은 이미 지구에서는 사망처리된 채 비밀 탑승한 우주 항해자들이다. 이들의 탑승을 아는 유일한 사람은 도박사의 동료 과학자이자 우주선 발사 총 책임자였던 박박사다. 이들의 임무는 우주 탐사와 함께, 지구 대체 항성을 찾아 지구로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세 항해자들은 다소 엉뚱한 소리를 하면서 우주 공간에 적응하던 중 디멘티아, 간헐적 인지장애가 오고 있음을 안다. 그러던 중 지구로부터의 마지막 메시지를 보게 되는데,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다름아닌 박박사다. 도박이 출발할 때의 50대 그대로라면, 박박은 지구에서 46년의 나이를 더 먹은 1..

한국희곡 2024.03.22

톰슨 하이웨이 '레즈 시스터즈'

캐나다의 인디언 보호구역 마을... 사회적으로 버려진 인디언 가족들… 그리고 많은 인디언 남성들은 소외감과 불확실한 삶을 버리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등진 체 하나 둘 떠나지만 인디언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삶을 개척하려는 여인들은 후손들에게 책임감마저 느낀다. 빙고게임! 세계빙고대회 상금으로 그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려고 7명의 인디언 여인들이 여행을 시작한다. 그녀들은 이혼한 여인,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인, 자신의 딸을 조카라고 부르는 여인, 동성애자, 첫아이를 입양시킨 여인, 약혼자를 친언니에게 빼앗긴 여인, 정신장애소녀를 양녀로 둔 여인, 이들의 뒤엉킨 삶이 드라마틱하고 애절하고 쉼 없는 갈등과 싸움, 용서, 사랑, 죽음을 가져오지만 자신의 종교를 지키며, 그들의 신이 자신들을 끝까지 지..

외국희곡 2024.03.22

코너 맥퍼슨 '샤이닝 씨티'

존, 다른 심리상담사의 소개로 이안을 처음 찾는다. 소원했던 아내가 얼마 전 사망했고 그녀의 귀신을 두 번 봤다고 얘기한다. 그 뒤로 집 근처 B&B에서 지내고 직장도 그만뒀다고 말한다. 이안의 복잡한 과거가 드러난다. 전엔 신부였으며 파계를 하고 니사와 사이에 딸이 있다. 현재 이안의 남동생 집에 얹혀 지낸다. 이안의 남동생과 제수, 니사에 대해 불편해 한다. 게다가, 이안마저 자신과 아이에 대해 무관심하자 혼란스러운 마음에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음이 드러난다. 이안, 니사와 헤어지려고 한다. 니사, 이안에게 매달린다. 이안이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무책임한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존, 아내에게 커다란 맘의 상처를 주었음을 고백. 비즈니스로 만난 고객의 아내에게 사랑을 느끼고 문자를 주고받다 결국 ..

외국희곡 2024.03.21

신성우 '나무는 서서죽는다'

1971년 대전 형무소. 찌는 듯한 더위에 숨이 턱턱 막혀오는 여름. 살인범과 마주하는 독방에 갇혀 있는 초로의 ‘강복’. 진료도 받지 못한 채 위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그는 자신과 살인범의 독방 사이의 어두운 복도에 샛노란 은행잎이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한다. 납득이 되지 않는 은행잎의 출현으로 살인범에게 연극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강복. 그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던 살인범을 연극이라는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1945년 여름. 해방을 맞이한 좌익 연극인들은 ‘조선연극 건설본부(연건)’를 구성하는 등 새 세상에 대한 기대에 들떠 있다. 그들 중 한 명인 강복은 연극인이라면 어떤 정치 활동이라도 연극을 통해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 연건은 그 밑에 ‘조선 예술 극장’이라는 극..

한국희곡 2024.03.21

최은영 재창작 '땡큐 돈키호테'

코로나로 인한 공연상실과 생활고로 한 젊은 연극배우가 자살을 시도한다. 자신의 삶을 정당하게 끝내고 싶어 하는 한 노인은 병원의 강제 진료와 자주 흐려지는 정신상태로 온전히 스스로의 죽음을 끝내지 못한 채 병원을 탈출한다. 여배우의 자살을 우연히 목격한 노인은 그녀를 만류하지만, 결국 그녀의 자살을 돕겠다는 약속을 하며 연극을 시작하는데... 그 연극이 처음 여배우가 주연급 배역을 맡은 돈키호테다. 한때 곡마단원이었던 노인과 여배우는 혼신으로 돈키호테와 둘시네아 역을 펼친다. 그리고 노인은 쓰러진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도 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연극배우와 살 수밖에 없는 노인의 연극 같은 삶, 삶과 같은 연극! 삶의 마지막 순간을 직면하는 교차적이고 대조적인 두 인물들에게 찾아온 돈키호테의 일갈을 통해..

외국희곡 2024.03.20

앤 젤리코 '새로운 세대'

이 작품은 채찍과 몽둥이로 남성을 쓸어버리고 젊은이에게 동물적 복종만을 강요하는 증오와 폭력의 늙은 여성공화국 독재가 역사를 왜곡하고 셰익스피어나, 뉴턴, 존왕이 여자였다고 하며 하다못해 로빈 후드도 여자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남자는 노예로 경매된다. 그러나 여기에 희망이 보이는 게 소년, 소녀가 등장해 잘못된 것을 아니라고 외친다. 그리고 다시 전쟁으로 그 종래는 핵폭탄의 투하로 자멸하게 되고 사랑으로 화합하는 생명의 새 세대가 과학자를 통해 우주선을 만들어 외계로 비상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무척 상징적이고 함축성 있는 주제를 오히려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연극의 주제설정은 상징성 때문에 결코 개괄적이고 개념적이며 철학적이거나 문학적 분위기에 취한 얼버무림으로는 연극을 만드..

외국희곡 2024.03.20

이오진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

작품의 배경은 개신교 청년부다. 청년부 청년들은 기타도 치고, 피아노도 치며, 찬송가도 부른다. 혜인이는 온 마음을 다해서 교회에 봉사해온 사람이다. 헌데, 여름단기 선교를 앞두고 청년부 혜인이가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 청년부의 형제, 자매들이 혜인이를 걱정하고 있다. 그러던 어는 날, 혜인이가 갑자기 나타나는데... 하지만 그 무렵 혜인이에게 어떤 사건이 터지게 된다. (임신중절이고, 혜인과 사귄 청년은 그 청년부 소속이다) 그 사건 이후, 목사와 일부 사람은 혜인이를 배제하려고 한다. 혜인이는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된다. 사람들이 혜인이의 안부를 걱정할 무렵, 혜인이가 다시 교회 청년부를 찾는다. 그것도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말이다. 혜인이의 모습은 가까운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

한국희곡 2024.03.20

이상화 '콘도에서 생긴 일'

폭력전과 5범인 대철과 강도상해범 경호는 탈옥하여 어느 명승지 콘도미니엄 빈 방에 숨어 있다. 마침 이 방으로 오게 된 작가지망생 지영과 자유기고가 금숙은 사흘 간의 휴가에 대한 기쁨으로 들어섰다가 뜻하지 않게 탈옥수들과 만나 불안에 떨게 된다. 난폭하고 충동적인 대철은 지영과 금숙을 상대로 파티를 강요한다. 탈옥 후 언제 붙잡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부터 벗어나고 싶은 대철은 지영과 금숙을 상대로 술판을 벌이고 노래를 부르라고 하지만 탈옥수들로 인해 불안해진 지영과 금숙은 어울리지 못한다. 이에 격분한 대철은 점점 난폭한 요구를 하게 되고, 같이 탈옥한 경호는 그런 대철을 말리며 지영과 금숙에게 미안해한다. 대철의 추근댐으로 지른 비명을 들은 옆방의 연락을 받고 올라온 관리인은 지영, 금숙과 함께 욕실..

한국희곡 2024.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