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 82

김원태 '기름고래의 실종'

출렁이는 바다위 거대한 짐승의 뱃골 같은 공간의 배 안에서 한 남자가 눈을 뜬다. 이 배는 기름고래를 잡는 배. 망망대해의 뱃속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평화로운 분위기의 배와 집단 안에서 남자는 편안함을 느낀다. 남자는 이 곳에 남는 것을 선택하는데. 그러나 이 세상에 단 한 마리, 붙잡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부귀를 안겨줄 기름고래에 광적인 선원들. 남자와 선원들의 동행은 시작되고···. 에서 기름고래의 존재를 아는 선장과 그를 맹신하는 세 명의 선원들과 기름고래의 미끼로 납치되어 온 한 명의 남자는 어두운 선실 안에서 끝없이 대립한다. 기름고래가 나타나면, 기름고래를 잡으면 끝날 것 같은 막다른 상황은 선장과 선원들, 남자의 대립 안에서 계속 구도를 바꿔가며 그 대립의 양상 또한 계속 그 무게..

한국희곡 2024.04.23

강지영 '러닝 패밀리'

작중 “캐릭터가 죽으면 그 숫자만큼 사람이 사라진다는 기이한 게임의 이름이 러닝 패밀리다. 청소년들은 이 게임에 푹 빠져, 자신의 실수로 캐릭터가 죽으면 세상이 끝난 것처럼 눈물을 쏟는다. 고등학교 교사 ‘다영’은 그런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일주일째 무단 결근중인 선우의 집을 방문하고 곧 게임과 현실이 혼재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갑자기 생겨나는 구멍으로 빨려 들어간 사람들은 구할 새도 없이 들어가버리고, 유행하고 있는 게임인 '러닝 패밀리'의 캐릭터가 죽으면 그 숫자만큼 사람이 사라진다는 도시 괴담과도 같은 그 이야기가 진짜인 것일까?

좋아하는 소설 2024.04.23

아벨 산타크루즈 '천사들의 합창'

한 학교에 젊고 지혜로운 선생님이 부임하면서 아이들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주는 이야기이다. 낭만적인 라우라, 개구장이 파블로, 똑똑한 마리아 정의로운 시릴로, 의젓한 다니엘. 각기 개성이 달라 작은 시비가 엇갈려 서로를 외롭게 하지만 학교 수위 아저씨인 페르민 할아버지의 병으로 인해 서로를 사랑하면서 큰 힘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멕시코의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개성 만발의 아이들과 새로 부임한 자상한 교사 히메나 선생님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린이 대상의 드라마임에도 사회구조적 문제들인 빈부 격차에 인종차별, 가정불화, 종교의 다양성 등 무거운 소재도 설득력 있게 다루고 있으며, 어린이들의 고충도 말하고 있다. 실제 드라마에는 부친이..

외국희곡 2024.04.22

김태웅 '즐거운 인생'

에 등장하는 ‘인생’들을 보면 그리 평범하지가 않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대에 고등학교 음악교사 정도면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무난하게 살만도 한데 범진은 그렇지 못하다. 노총각의 외로움은 전신 거울을 마주 보고 밥을 먹을 정도로 사무치고, 장난 전화로도 해소되지 못한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버림받고 횡포를 부리는 대목까지 오면 정말 제대로 ‘찌질한’ 남자가 된다. 고등학생 세기의 신세는 더 답답하다. 바람나서 도망간 엄마와 돈 벌러 떠났다가 죽어서 돌아온 아빠 때문에 졸지에 고아가 된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돈이라는 생각으로 지하철 구걸행각을 한다. 범진을 ‘찌질하게’ 만들었던 선영 역시 남편에게 이혼 당하고 병든 엄마의 병수발에 사채까지 쓰며 아등바등 살아보지만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

한국희곡 2024.04.22

강지영 '덤덤한 식사'

「덤덤한 식사」의 화자는 이미 생을 마감한 고양이다. 그 고양이는 길에서의 험난한 생활에서 벗어나 동물병원에서 살게 된 자신의 형제 고양이를 지켜본다. 하지만 동물병원에서의 삶 역시 녹록지만은 않다. 하나를 내어주어야 하나를 누릴 수 있는 고양이의 삶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주차장 한편에서 태어난 고양이 형제. 그중 한 마리가 범백이라는 고양이백혈병 감소 바이러스에 의해 죽는데, 그래서 죽은 고양이가 산 고양이를 보고 있다. 핵심 내용은 산 고양이가 다른 병든 고양이에게 피를 나눠준다는 설정. 매혈이라고 하는데, 이걸 이용해서 돈을 버는 병원 원장과 간호사가 나온다. 이 관계는 상리공생? 살았다는 것이 축복인 건지 아리송하다. 여러 단편 중에서 가장 짧지만 애틋한 작품이다. 작가가 기르는 고양이와 같..

좋아하는 소설 2024.04.22

오은희 '뮤지컬 달고나'

추억의 물건을 판매하는 인터넷 홈쇼핑의 PD인 세우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추억이 담긴 '구식 타자기'를 상품으로 내놓는다. 타자기는 곧 '옥상 위의 장독대 소녀'라는 ID를 가진 네티즌에게 판매되고, 세우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한창 철거 중인 옛 동네를 찾아간다. 유일하게 예전 그대로인 옛집 옥상에서 첫사랑 지희가 남겨놓은 타자기와 편지 그리고 호루라기가 발견되고, 세우는 그 언젠가 깡패들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지희의 호루라기를 불며 어느새 잃어버린 젊은 날의 꿈과 첫사랑을 다시 찾아간다.... 이제는 모든 것이 변한 그곳에 어디선가 아련하게 밀려오는 아이들 웃음 소리, 향긋한 냄새, 첫 사랑의 미소 그리고 꿈. 세우는 하나 둘 씩 깨어나는 아름다운 추억 속으로 우리 가요와 함께 달콤 쌉싸름한 추억 여행을..

한국희곡 2024.04.21

성석제 원작 윤조병 각색 '천하제일 남가이'

제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어미 아래서 아비 얼굴도 모른 채 태어난 남가이가 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비천한 신분의 남가이지만, 점점 성장함에 따라 그만의 매력으로 사람들을 홀리기 시작한다. 체취를 비롯해 남가이의 은밀한 매력을 알아챈 사람들은 인생이 꼬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 성석제 작가의 짧은 단편소설을 연극으로 윤조병작가가 극화한 작품이다. 한 개인이 당연시 믿고 있는 과거 기억의 왜곡을 다양한 스토리의 결합으로 그려냈으며, 디테일한 역사 서술과 현재의 삶을 비춰보게 하는 강한 풍자를 담았다. 이야기가 기이하다. 냄새가 극의 전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두 가지다. 하나는 똥 냄새. 다른 하나는 동물이 몸 밖으로 방출하여 같은 종의 다른 개체에 야..

한국희곡 2024.04.21

강지영 '살인자의 쇼핑목록'

마트의 캐셔인 주인공 ‘나’가 손님들의 쇼핑 카트를 관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람을 관찰하고 구매한 물건을 통해 그 사람의 행동 방식과 삶을 유추해내는 것이 취미인 ‘나’에게 어느 날 한 남자가 눈에 띈다. 남자가 마트에 들른 날 밤, 그가 구입한 물건들이 사용된 것 같은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나’의 평범하고도 지루한 일상의 문을 두드리는 매혹적인 스릴러. 오직 진실을 밝혀내고자 하는 순수하고도 위험한 호기심으로 ‘나’는 망설임 없이 사건의 중심에 뛰어든다. 이런 추리소설에 줄거리를 좌악 쓰는게 예의가 아닌지라. 생략. 그러나 후반에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의 상상력을 무시하는 듯한 결말에 도달한다. 《살인자의 쇼핑목록》은 2022년 4월 ~ 5월까지 tvN 수목 드라마로 방송되었다.

좋아하는 소설 2024.04.21

성기웅 '조선형사 홍윤식'

소화 8년 (1933년) 봄, 경성 죽첨정(현재 충정로) 금화장 고갯길에서 갓난아기의 잘린 머리가 발견된 사건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연극이다. 2부 9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봉관이 쓴 《경성기담》에 실린 “죽첨정 단두유아사건” 에서 소재를 취했다. 극은 마리아가 사건 당시를 회상하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금화장 고갯길에서 어린아이의 잘린 머리가 발견되자 장안이 발칵 뒤집힌다. 경찰부장은 과학수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방침을 내리고, '사건 발생 열 시간이내, 피해자는 만1세 내외 남아'라는 법의학적 소견을 바탕으로 수사를 지시한다. 이에 서대문경찰서 사법계의 이노우에 주임 이하 노마, 홍윤식, 임정구 등 형사들이 수사에 착수한다. 일본에서 막 부임해온 조선의 셜록 홈즈(극중 샤록 호움즈) 홍윤식은..

한국희곡 2024.04.20

가토 미찌꼬 '흉내쟁이'

흉내쟁이가 있다. 이 흉내쟁이는 동네 아이들 누구이든 말과 행동을 따라 한다. 말이면 말,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모두 따라 한다, 그리고 흉내 당한 아이가 뭐라 해도 따라하고 하지 말라고 한 대 때리면 더 세게 때린다. 그래서 이 동네 아이들은 급기야 모여서 그 흉내쟁이를 혼내 줄 궁리를 하는데…. 역으로 그 흉내쟁이를 흉내내는 것이다. 결국 흉내쟁이도 아이들의 작전에 말려들어 똑 같은 꼴을 당하고… 울고 만다. 아이들은 “다신 그 따위 짓 하지 마.” 한다. 짧은 단막으로 어린이를 위한 희곡으로 소개된 일본 작가 가토 미찌꼬의 작품이지만 어른들이 생각해 봐야할 작품이기도 하다.

외국희곡 2024.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