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성석제 원작 윤조병 각색 '천하제일 남가이'

clint 2024. 4. 21. 08:33

 

 

 

 

제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어미 아래서

아비 얼굴도 모른 채 태어난 남가이가 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비천한 신분의 남가이지만,

점점 성장함에 따라 그만의 매력으로 사람들을 홀리기 시작한다.

체취를 비롯해 남가이의 은밀한 매력을 알아챈 사람들은

인생이 꼬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 성석제 작가의 짧은 단편소설을 연극으로 윤조병작가가 극화한 작품이다.

한 개인이 당연시 믿고 있는 과거 기억의 왜곡을 다양한 스토리의 결합으로

그려냈으며, 디테일한 역사 서술과 현재의 삶을 비춰보게 하는 강한 풍자를 담았다.

 

 

 

 

 

이야기가 기이하다. 냄새가 극의 전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두 가지다. 하나는 똥 냄새.

다른 하나는 동물이 몸 밖으로 방출하여 같은 종의 다른 개체에 야기 시키는

물질인 페로몬 냄새다. '천하제일 남가이'는 그 냄새를 매개로 어렵고

고단했던 지난 시절 우리 사회의 장면들을 펼쳐 보인다.

까맣게 잊힌 과거의 모습들이다.

이 작품의 원작은 이야기꾼 성석제 작가의 동명 단편소설.

비천한 삶을 산 주인공 남가이의 인물전 같은 단편이다.

내용은 다분히 비현실적이고 얼토당토않다.

 

 

 

 

 

연극의 첫 장면부터가 그렇다.

똥을 누는 남자에게서 대변 줄기가 길게 뻗어져 나와 얼이 빠진 듯한

여자의 배로 들어가면서 거기서 아기가 태어난다. 남가이다.

그는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머니는 먹을 음식을 훔쳐오기도 하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여자다. 몸에서 나는 역겨운 냄새 때문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남가이는 성장하면서 뭐라고 딱 집어서 얘기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체취를 풍기며 사람들을 홀린다.

그는 마을 사람들 집에서 똥을 퍼주고 그 인분을 팔아 큰돈을 번다.

남가이가 뿜어내는 페로몬 냄새에 여자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그를 쫓다

군중 속에서 압사하기까지 한다.

내용이 황당한데다 마지막 장면이 남가이가 똥구덩이 앞에서

넋두리하는 것이어서 그간의 얘기가 남가이의 꿈 또는 상상이었는지,

아니면 실제로 그에게 일어났던 일인지가 분명치 않다.

 

 

 

 

이야기의 전후관계에 헷갈림이 있기는 하지만 개개 장면들에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고 여운도 남긴다. 작품 속에서 부각되는 똥이나

그 냄새는 더러운 것이지만 동시에 황금이기도 하다.

남가이는 몸의 악취로 기피와 놀림의 대상이 됐지만

인분을 모아 떼돈을 벌고 땅을 넓혀나간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화장실이 현대화되면서 똥 푸는 일은 자취를 감추게 되고

남가이는 자신이 옛날 인분을 모아두었던 똥구덩이 옆에서 쓸쓸하게 죽어간다.
작품은 남가이라는 가공인물을 통해 1950년대 이후 있었던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들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인분장사로 큰돈을 벌고 여성들의 온갖 사랑을 다 받는 남가이의 '영웅적인' 모습을 풍자적으로 부각시킨다.

 

 

 

성석(成碩濟, 1960년 7월 5일 ~ )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태어났으며, 초등학교 시절을 고향에서 보내고 중학교 2학년 봄 1974년에 서울로 이주했다. 경신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문학 동아리인 "연세문학회"에서 활동하였다. 1986년 6월 문학사상의 시 부문에서 신인상을 받아 등단하였다. 1991년 첫 시집 《낯선 길에 묻다》를 펴냈다. 1994년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펴내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특히 1995년 계간 《문학 동네》에 단편소설<내 인생의 마지막 4.5초>을 발표함으로써 주목을 받았다. 1996년 첫 소설집 《새가 되었네》(강출판사)를 펴냈다. 1997년<유랑〉으로 제 30회 한국일보 문학상, 2000년 《홀림》으로 제 13회 동서 문학상, 단편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로 제 2회 이효석문학상을 받았으며 창작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로 제 33회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2014년 장편소설 《투명인간》으로 제31회 요산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