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태웅 '즐거운 인생'

clint 2024. 4. 22. 19:31

 

 

 

 

<즐거운 인생>에 등장하는 ‘인생’들을 보면 그리 평범하지가 않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대에 고등학교 음악교사 정도면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무난하게 살만도 한데 범진은 그렇지 못하다.

노총각의 외로움은 전신 거울을 마주 보고 밥을 먹을 정도로 사무치고,

장난 전화로도 해소되지 못한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버림받고 횡포를 부리는 대목까지 오면

정말 제대로 ‘찌질한’ 남자가 된다.

고등학생 세기의 신세는 더 답답하다. 바람나서 도망간 엄마와

돈 벌러 떠났다가 죽어서 돌아온 아빠 때문에 졸지에 고아가 된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돈이라는 생각으로 지하철 구걸행각을 한다.

범진을 ‘찌질하게’ 만들었던 선영 역시 남편에게 이혼 당하고

병든 엄마의 병수발에 사채까지 쓰며 아등바등 살아보지만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등장인물들이 이 지경인데 ‘즐거운 인생’이라니?

결과만 놓고 본다면 우리의 인생 종점은 죽음이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잊고 살아가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범진이 원한 것은 ‘결혼’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과정이고,

세기가 원하는 것은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개그맨이 되어

웃음을 주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사랑’을 먹고 ‘웃으면서’

살면 그게 행복 아닐까.

이 작품은 결코 즐겁지 않은 인생을 비관적으로 보기보다는

`부처' 같은 눈으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자는

김태웅의 작가주의 정신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고등학교 음악교사로 세상에 대해 상처가 깊은 `범진'과 앵벌이로 사회의 쓴맛을 이미 알아버린 제자 `세기'가 사랑, 좌절, 무기력, 분노, 슬픔의 과정과 그 과정에서 벌이지는 해프닝을 통해 `큰사랑'과 희망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재밌게 그렸다.
"저는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희열을 막는 사회 구조 속에서도 즐거움을 추구했던 조선시대 광대들처럼 극중인물 `범진'과 `세기'를 통해 그런 생명력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작가는 사랑과 음악을 기본으로 하고 그의 특기인 `웃음'을 곁들여 즐겁지만은 않은 극의 내용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이번 작품에서는 놀이와 음악이 많습니다. 극장에서 관객들은 학생이 되어 음악교사인 범진과 아카펠라와 같은 노래를 함께 부르는 등 놀이정신과 음악적 코드에 충실해 연출했습니다."
연극「즐거운 인생」의 탄생은 특이하다.
"어느날 집에서 주머니를 정리하다 우연히 여성의 이름과 핸드폰번호가 적힌 천 원짜리 지폐를 발견했어요. 누가 이걸 뿌린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서 소통을 위해 지폐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재밌더라고요. 이 작품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작품이 주는 메시지를 "이성적으로 비관되면 의지로 낙관하자"로 표현한 작가는 "작품 속에는 전국노래자랑에서 노래 부르며 정말 즐겁고 행복해하는 `미스 김'이 등장한다."며 "자신이 정말 즐겁고 좋아서 하는 음악이 부처의 음악이고 그 사람이 부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