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이는 바다위 거대한 짐승의 뱃골 같은 공간의 배 안에서
한 남자가 눈을 뜬다. 이 배는 기름고래를 잡는 배.
망망대해의 뱃속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평화로운 분위기의 배와
집단 안에서 남자는 편안함을 느낀다.
남자는 이 곳에 남는 것을 선택하는데.
그러나 이 세상에 단 한 마리, 붙잡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부귀를 안겨줄 기름고래에 광적인 선원들.
남자와 선원들의 동행은 시작되고···.
<기름고래의 실종>에서 기름고래의 존재를 아는 선장과 그를 맹신하는 세 명의 선원들과 기름고래의 미끼로 납치되어 온 한 명의 남자는 어두운 선실 안에서 끝없이 대립한다. 기름고래가 나타나면, 기름고래를 잡으면 끝날 것 같은 막다른 상황은 선장과 선원들, 남자의 대립 안에서 계속 구도를 바꿔가며 그 대립의 양상 또한 계속 그 무게중심을 바꾸어 간다. 마치 세상의 주류 혹은 권력자/셀러브리티/지식인이라 지칭되는 누군가에 의해 세상의 색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처럼. 이렇듯 극작가 김원태가 이 사회를 이루는 시스템의 화려한 외향으로 인한 인간들의 획일적인 대중화, 무비판적인 태도, 맹목적 삶을 - 그 화려함으로 상징되는 기름 고래를 잡는 어선의 선장과 그를 맹신하는 선원들 그리고 기름고래의 미끼로 배에 잡혀온 한 남자와의 사투- 를 통해 은유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극은 2011년 공연예술 인큐베이팅 사업 희곡부문 최종선정 작으로 한편의 연극을 통해 현대 사회의 거대한 구조와 그 구조를 이루는 부조리들을 들여다보게 하는 극성이 뚜렷한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이 처한 강력한 극적 상황,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알레고리적 구조, 기름고래의 상징과 반전은 긴장감을 자아내며 몰입을 이끌어내는 대사의 힘은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극 속에서 기름고래를 쫓는 사내들과 미끼로 사용되어지기 위해 그들과 한배를 타게 된 남자가 주고받는 ‘말’들은 다시 미끼가 되어 관객들의 머릿속을 맴돈다. 저들이 타고 있는 저 어두운 뱃속은, 저들이 주고받는 저 말들의 낯익음은 공연을 보는 내내 웃음을 때로는 폭소를 자아낸다. 현대인들 자신들조차도 스스로 속고 믿어온 정치적, 경제적 이상과 허구 만들기에 일침을 가하며 이 사회를 이루는 시스템의 화려한 외향으로 인한 인간들의 획일적인 대중화, 무비판적 태도, 맹목적 삶을 - 그 화려함으로 상징되는 기름 고래를 잡는 어선의 선장과 그를 맹신하는 선원들 그리고 기름고래의 미끼로 배에 잡혀온 한 남자와의 사투- 를 통해 은유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무대에는 선실의 바닥이라는 느낌의 네 개의 철제 조형물로 된 기둥이 안으로 굽어져 서있고, 역시 선실 내부로 보이는 벽이 배경 막 가까이 펼쳐져 있다. 바닥에는 크고 작은 드럼통과 버킷, 그리고 장비가 여기저기 널려있고, 왼쪽 벽 가까이 조리대와 커다란 양푼과 식칼, 그리고 그 옆에는 음향기기가 놓인 것이 보인다. 중앙의 벽 앞으로 옷걸이에 걸린 산뜻한 재킷상의와 프렌치코트가 눈에 띄고, 그 오른쪽으로 선실의 비밀창고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되어있다. 무대 왼쪽에는 안으로 굽으러져 갑판위로 올라가는 등퇴장 로가 나있고, 그 앞으로 철제 기둥에 쇠사슬을 묶어 늘어뜨린 게 눈에 띈다. 천창에서 광선이 내리 비추는 공간에 작은 텃밭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파 같은 채소를 옹기종기 심은 것이 보이고, 텃밭 앞으로 객석 가까이에는 간이침대 한 개가 놓여있다. 도입에 기계마찰음과 함께 극이 시작되면 간이침대에 잠들어 있는 사나이가 그 소리에 깨어 일어나고, 마침 빈 플라스틱 음료수 병들을 투명한 비닐자루에 잔뜩 담아들고 등장하는 선원을 맞이한다. 이후 계속 등장하는 선원들과 선장에 이르기까지 사나이를 선생이라 호칭하며 극진히 대하는 모습이 여느 배와는 눈에 띄게 다르다. 그들 중 젊은 선원은 음식을 만들어 사나이에게 대접을 하며 호의를 보인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사나이는 무슨 까닭이었는지 물에 빠지게 되었고, 익사직전에 바로 이 고래잡이배의 선원들에 의해 구조되었으며, 선장은 인공호흡으로 사나이를 살렸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러나 사나이는 자신이 무엇을 하던 인물이었는지 자신의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여하튼 사나이는 이들 모두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이들의 작업을 적극 돕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러나 선원들은 사나이에게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만류한다. 사나이는 텃밭에 물을 주면서 선원 하나하나와 친분을 맺는다.
장면이 바뀌면 새 인물이 이 배에 탑승을 하게 되고, 새 인물은 선원들과는 달리, 사나이에게 거칠게 대한다. 차츰 사나이의 기억상실과 맞물려 사나이가 기름고래의 먹이 감이라는 것이 알려지고, 향후 사나이는 쇠사슬에 묶여 기름고래의 먹이가 될 날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그러나 사나이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는 의지와 함께 선원 하나하나를 설득해, 기름고래는 실제 하는 것이 아니라며, 선장에게 반기를 들도록 종용한다. 사나이의 설득이 주효해 선원들은 선장에게 반기를 든다. 사나이의 종용으로 선원들은 이번에는 선장을 쇠사슬에 묶으려 한다. 그러나 선장은 쉽게 묶이지 않고, 삼등항해사의 조력으로 무위로 끝이 난다, 사나이와 선장의 기름고래 존재유무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선장은 끝내 존재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거친 기계의 마찰음 소리와 더불어 기름고래의 접근사실이 알려진다....
에필로그엔 검은 양복과 선장의 미끼 조달에 대한 의미심장한 대화가 여운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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