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 57

박한열 'EXIT : 출구는 저쪽입니다. 뛰세요!'

난 항상 평범한 학생이었다. 평범하게 살기 위해 죽을 만큼 노력했다. 적당한 성적과 적당한 학벌 그리고 적당한 직업을 가지기 위해, 낙오되지 않기 위해, 죽을 만큼 노력했다. 노력치 않는 적당한 미래를 꿈꾸며, 숨 막히는 입시경쟁을 뚫고 입학한 대학은 고등학교와 다를 것이 없었다. 오히려 더 고통스러웠다. 나와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끼리 모여서 그 안에서 또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혔다.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입시와 학점경쟁을 지나 졸업하고도 취업을 위해 또 다시 그 지난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팽팽했던 내 인생이 팽그르르 꼬였다. 그래서 나는 생애 처음 커닝을 했다. 그리고 들켰다. 빌어먹을 내 인생…. 이렇게 나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그후 징계위원회가 소집되고, 컨닝에..

한국희곡 2023.09.03

이청준 원작 남정희 각색 '낮은 데로 임하소서'

이청준 작가의 실제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새빛 맹인선교회 안요한 목사다. 지난 1981년 출간된 는 2000년 이미 1백 쇄를 돌파하는 등 기독교 문학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으며,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화돼 당시 대종상 4개 부문과 백상예술대상 3개 부문을 휩쓸기도 했다. 이 작품은 기독교적 메시지가 너무 강하고, 실제 인물의 일대기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까닭에 평론가들에게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작품은 사실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하여 인간의 치열한 삶을 다루고 있다는 점과, 또한 작가도 이 작품이 소설적 허구성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의 진실성으로 이 작품을 보기를 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위치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

한국희곡 2023.09.03

레오너드 멀피 '밤'

1968년 11월 28일 헨리 밀러 극장에서 브로드웨이의 서클 인 더 스퀘어 극장에서 초연된 레오너드 멀피의 이 작품은 이상한, 정말 이상한 밤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한다. 명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참석자는 그의 아내, 정부, 남자친구, 그리고 아마도 친구인 것으로 보인다. 콕 써튼(Cock Certain)라는 이름의 "코믹한 작은 놈"인 고인은 분명히 밤 장례식을 원했다. 그리고 여기에 모인 그 조문객들은 고인을 위로하고, 예전의 재밌던 얘기도 하며 서로서로의 얘기를 듣고 조롱하기도 하며 - 이들의 고인에 대한 기억은 성적 경험을 토대로한 재밌는 얘기가 대부분이다. - 아쉬움을 달래며 고인을 묻지 말고 그냥 집에 미라처럼 보관하자는 말도 한다. 그리고 끝날 즈음 흰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등장하며 극..

외국희곡 2023.09.03

한로단 '神바람'

이 작품에는 등장인물이 파우스트 박사를 별명으로 가진 사람과 오이디푸스, 엘렉트라, 살로메, 햄릿, 오필리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들이 동호회에서 만난다. 회장은 파우스트 박사이며 나이도 많고 좌장이다. 별명과 실제 인물은 성격적인 면에서 조금 연관이 있다. 그리고 무당인 엘렉트라의 어머니가 나오는데, 엘렉트라의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파우스트 박사를 통해 여러 실험으로 치유하려 하나 엘렉트라 내심의 강한 반발로 실패하자, 결국 모친인 무당을 통해 그 문제의 본질을 찾게 된다. 아마도 엘렉트라는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그 무당의 기질이 있는 것 같다. 오이디프스-컴플렉스, 엘렉트라-컴플렉스를 바탕으로 엘렉트라는 초인적인 힘과 염력이 있다. 특히 젊은이들의 여러가지 심적 상태 중에서 첫째, 오이디푸스와 같..

한국희곡 2023.09.02

옥타브 미르보 '어느 하녀의 일기'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가이며 극작가인 옥타브 미르보(1850~1917)의 작품으로 1980년대에 들어 활발하게 공연됨으로써 빛을 보고 있다. 부르주아에 대한 혐오 그리고 위선과 허위의식에 대한 고발은 그의 작품 어디에서나 엿보이는데, 이 작품에서 한 하녀의 눈에 비친 부르주아 사회의 악덕은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양상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인간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악에 대한 유혹과 잠재력은 신분과 계층을 불문하고 인간 모두에게 공통된 것임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각계각층의 기묘한 인물들을 여럿 등장시켜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와 시골의 뒤틀린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전지적 시점의 화자가 아닌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만 서술하는 셀레스틴느를 화자로 내세워, 수수께끼로 ..

외국희곡 2023.09.02

해윤 '단 한번과 두 번'

이 작품은 시간을 다룬 어떤 작품에서도 볼 수 없었던 ‘존재와 시간’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절대시간의 틀을 깬 상대시간 속에서 과거는 더 이상 기존의 미래가 거쳐 온 과거가 아니다. 미래 역시 과거를 지나온 미래가 아니며 언제나 그 스스로 현재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이 속에서 존재는 시간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존재 속에 시간이 있고 그렇기에 존재에게 시간은 영원한 현재다. 이로써 새로운 운명이 가능하고 새로운 현재가 생성되는 것이다. 청소부가 혼자서 졸고 있는 대학 복사실에가 여행 가방을 끌고 들어온다. 여자는 아주 먼 곳, 지금으로부터 십 년은 훨씬 넘고 이십 년은 조금 안 되는 먼 곳으로 부터 돌아오는 길이다. 마흔이 다 되도록 아무 것도 이루지 못 하고 한심하게 살아온 여자는 스무 살 시절, 꿈..

한국희곡 2023.09.01

슬라보미르 므로제크 '카롤'

안과의사의 진료실에 장전된 산탄총을 가지고 맹인 같은 할아버지와 함께 손자가 방문한다. 그나마 손자가 부축해 줘서 움직이는 듯... 이 손자 역시 거칠기는 매한가지다.할아버지는 캐롤을 사냥하고 싶기 때문에 안경이 필요하단다. 꿈에서 봤다는 할아버지도 손자도 캐롤을 알지 못하고, 그가 누구인지, 그가 뭘 잘못한 건 지도 모르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안과의는 시력 검사를 한다. 그러나 노인은 검안표의 큰 글자도 못 본다. 나중에 손자가 거들길 그 방법은 할아버지가 문맹이기 때문에 읽을 수 없다고 한다. 손자 역시 "문맹"이기는 마찬가지다. 아무튼 할아버지는 의사의 안경을 시험해보기로 하고, 그 안경을 쓰자시력이 잘 맞는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눈이 트이자 의사를 보고 캐롤! 이란다.두..

외국희곡 2023.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