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 57

베르나르 베르베르 '잠'

우리는 일생의 3분의 1을 자면서 보낸다. 12분의 1은 꿈을 꾼다. 그러나 몸을 회복시키는 시간 정도로 생각할 뿐 잠자고 꿈꾸는 사이 벌어지는 일들은 아직 미지의 영역에 가깝다. 수면 주기는 잠의 깊이와 뇌파의 종류에 따라 5단계로 나뉜다. 마지막 단계에서 안구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두뇌활동은 활발해지면서 선명한 꿈을 꾼다. 렘(REM) 수면 또는 역설수면(逆說睡眠) 단계다. 베르베르의 장편소설 '잠'은 역설수면 다음에 여섯 번째 단계가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스물여덟 살 의대생 자크의 어머니 카롤린은 수면을 연구하는 신경생리학자다. 카롤린의 설명에 따르면 6단계 수면은 좀더 깊은 잠을 인공적으로 유도해 얻어지는 단계다. 심장 박동은 더 느려지고 몸은 이완되지만 두뇌활동을 더욱 활발해진다. 카..

좋아하는 소설 2023.09.13

위성신 '오감도'

연극 ‘오감도’는 소설 ‘날개’와 시 ‘오감도’, 그리고 2010년의 현실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백수이자 사회부적응자이며 고뇌하는 예술가인 이상을 1930년대가 아닌 오늘의 현실에 옮겨내는 것이다. 공연 중간마다 시 ’오감도‘가 슬라이드 형식으로 관객들에게 보이는데, 다소 난해하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극의 내용과 어색하지 않게 조화 된다. 시인 이상의 난해하고 복잡한 언어 세계를 탱고음악의 선율 속에서 배우들의 움직임을 통해 마치 활자체로 고정되어 있는 한편의 시가 살아있는 그림 같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연극 ‘오감도’는 그 동안 몇몇 소수에 의해 평가되어 오던 어둡고 복잡한 이상의 세계를 문 밖으로 끌어내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무대의 가장 큰 특징은 '오감도' 등 이상이 남긴 텍스트들을 근..

한국희곡 2023.09.13

글렌 휴즈 '레드 카네이션'

한 청년과 그리고 한 남자가 공원 벤치 근처에서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꽂고 있다. 누구를 기다리는 듯...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견재한다. 특히 카네이션이 거슬리는데... 둘 다 처음 보는 여자와 만나기로 했는데, 그 표시가 붉은 카네이션이다. 잠시 후, 젊은 아가씨가 두리번 거리며 나타난다. 벤치 주변을 보며 긴가 민가 자신이 없는 듯 뒤쪽의 벤치로 간다. 두 남자 다 자기를 만나러 온 것으로 확신하지만, 자신이 없다. 가면무도회에서 만나, 얼굴을 못 보았기 때문이다.. 그 여자의 의상도 시바의 여왕으로 똑같다. 그렇다면 여자가 양다리를 걸친 건가? 두 남자는 사전 협의로 일단 여자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하고, 청년이 먼저 접근한다. 여자에게 남자에 관한 인상착의나 이름... 등을 묻는다. 여자 역시..

외국희곡 2023.09.12

김은성 '뺑뺑뺑'

뺑뺑이 되풀이 되는 한국사 그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영수와 영희의 윤회. 영수와 영희는 그 질기고 질긴 악연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오늘 아침 서울의 지하철, 영수와 영희는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마주 서있다. 영수와 영희는 바로 나와 당신이다. 은 총 16개의 이야기가 삽화식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옛날 옛적부터 지금 이 시대까지 이 땅에서 살아왔던 많고 많은 영수와 영희들을 호출한다. 한 번도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본 적이 없는 이들은 떠밀리고 쫓겨나고, 자의를 가장한 타의로 생이별을 한 사람들이다. 기러기아빠와 조기유학생으로, 상경처녀와 동생으로, 제주도 4.3피해자들로, 파월장병과 그의 어머니로, 위안부 소녀와 그녀를 팔았던 그의 아버지로, 윤락객과 윤락녀로, 고공농성자와 사복경찰로..

한국희곡 2023.09.12

데이비드 헤어 '남모르는 환희'

영국 극작가 데이비드 해어의 연극 '은밀한 기쁨'(원제 남모르는 환희)은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는 동시에 '전통적인 가치의 종말'을 맞은 현대의 비극을 그린다.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 이져벨. 이져벨은 아버지와 조용히 작별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져벨에게 새로운 인물들이 찾아오면서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다. 환경부 차관인 언니 '마리온'과 성공한 기업가인 형부 '톰', 아버지의 젊은 새 아내인 알코올중독자 '캐서린'이 이져벨 앞에 나타난다. 인물들의 충돌과 그 안에서 파멸하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 연극은 성공과 돈의 가치가 과연 숭배될 만한 것인지 반문한다. 연극은 다섯 명의 인물을 다루고 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킨 딸 이사벨과 뒤늦게 장례식장을 찾은 언니 마리온. 그녀는..

외국희곡 2023.09.11

최진아 '사랑, 지고지순하다'

극이 진행되면서 등장인물들은 사랑의 모습에 대한 생각에 변화를 겪는다. 모두 처음에는 하나의 사랑에 순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신념 아래 살아가나 관계가 얽히면서 각기 다른 모습의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성희는 처음에 사랑은 하나이며 그러기에 순수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재우를 만나면서 자신 안에 현호와 재우에 대한 욕망이 모두 존재함을 보고 사랑은 둘일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현호는 역시 사랑은 하나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나 성희와의 관계에 불안정을 감지하고 사랑이 둘일 수 있음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의 사랑을 바라본다. 재우 역시 사랑은 하나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성희와 관계가 얽히면서도 자신의 사랑은 윤정이라는 한 여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둘의 사랑에 빠져있다. 이들의..

한국희곡 2023.09.10

프랭크 마르쿠스 '블라인드 데이트'

블라인드 데이트는 통상 얼굴을 모르는 남녀가 아는 사람의 소개로 만나는 일을 말한다. 이 작품에선 브라이언이란 남자가 콘택-렌즈를 놓고 약속장소에 나와 2중적인 의미로 쓰인 것이다. 20대 엔지가 대학 비서과 동창친구인 니콜라의 남자를 소개 시켜주겠다는 전화를 받는다. 남자는 브라이언이라는 니콜라의 사장이다. 나이 40세. 애들이 있는 유부남이지만 지금은 별거 중이란다. 아마도 같이 놀러갔을 때의 사진을 보여준 모양인데, 사장이 무척 관심이 있단다. 그래서 그 남자의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해서 보는데, 스페인의 해변 종려나무 밑에서 찍은 사진인데, 얼굴은 자세히 보이진 않으나 롱다리며 몸매가 날씬한 게 그런대로 괜찮은 듯해서 한번 만나볼까 하는데 바로 니콜라는 전화를 바꿔줘서 둘이 알아서 만나라고 하고… ..

외국희곡 2023.09.10

고영범 '이인실'

변변한 직업이 없는 진석은 교통사고를 계기로 한 몫 챙기려 병원에 입원했다가 2인실 병실에서 지룡을 만난다. 지룡은 간단한 수술을 위해 입원을 했지만 수술 동의를 해줄 보호자가 없어 퇴원하려고 한다. 이를 본 진석이 보호자 서명란에 대신 사인을 해준다. 그런데 수술 도중 지룡이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되어 진석과 미경(진석의 여자친구)은 그를 책임져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병원의 원무과장은 장기기증에 관련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하고 진석과 미경은 지룡의 연고자를 찾기 위해 가방을 뒤지던 중 지룡이 탈북자라는 사실과, 한 통의 편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은 고영범의 신작으로 이 작품의 소재는 다소 생경하게도 탈북자 이야기다. 그러면서 여타 탈북자와 다르다. 탈북자로 환기되는 남과 북의 문..

한국희곡 2023.09.09

톨스토이 '크로이체르 소나타'

주인공은 그의 젊음을 향락에 탕진하고 결혼은 남녀 간의 사기극 정도로 치부하며 젊은 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그도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게 되며 한 여자에게 충실한 맘을 갖는 자신에게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신혼여행부터 싸움은 시작되고, 해결의 실마리로 섹스를 택하며 지루한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 그렇게 5명의 아이와 함께 중년을 맞이하는 부부. 아내는 정신생활이 결핍된 상태에서 피아노연주로 소일거리를 하다가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나게 되고, 그들의 관계를 의심하고 질투에 괴로워하던 남편은 출장에서 일부러 돌아와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협주하던 아내를 불륜에 빠진 것이 확실하다 믿고 살해하게 된다. "음악은 영혼을 맑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

외국희곡 2023.09.09

이진경 '고독청소부'

국가 기관 소속 고독청소부인 무성과 세만, 이들의 임무는 고독사한 인간의 흔적을 비밀리에 청소하는 것이다. 무성은 고독사위험 제1군으로 분류된 김대성과 우희영을 추가 감시하라는 임무를 맡게 된다. 대성은 아내를 잃은 뒤 아르헨티나 이민 준비에만 5년째 매달리고 있는 독거노인이며, 그의 집 옥탑에는 희영이 살고 있다. 무성의 아내 정숙은, 무성의 상관인 세만과 내연관계에 있다. 감시와 통제, 상처와 고독으로 얽히고설킨 이들의 관계는, 우발적인 살인으로 인해 종국을 향해 치닫게 된다. 고독(孤獨). 사전적 의미는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이다. 고독하게 사망하는 일명 ‘고독사’는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아무도 모르게 홀로 세상을 떠나는 사망 사고가 증가하고 있다. ‘고독청소부’는 ..

한국희곡 2023.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