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 57

엘리자베드 베리힐 '전율의 잔'

이 연극은 나치독일의 히틀러와 동시대 신학자이자 목사인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의 일대기다. 무대는 배경 까까이 계단의 조형물이 있고, 그 앞 좌우로 입체로 된 정사각의 조형물들이 나란히 놓여있다. 천정에서 교수형의 밧줄이 내려와 조명을 받고, 배경에 2차세계대전 영상과 아우슈비츠에서의 유태인 집단학살 영상이 투사되고, 극의 전개에 따른 훈련, 행동, 고난, 죽음 등의 장면변화를 각 장면의 도입에 타자기로 집필한 문자영상투사와 효과음이 전달된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모친과 누이, 그리고 매부가 해설자로 등장해 본회퍼의 일대기를 펼친다. 청년시절의 본회퍼와 그를 지도하던 교수, 그리고 본회퍼의 교우였다가 변해버린 적대자 뮐러가 등장해 첫 장면을 장식한다. 아돌프..

외국희곡 2023.09.08

홍창수 '오늘 나는 개를 낳았다'

는 상민과 인화 두 남녀를 통해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 성적인 욕망과 종속적인 미시권력의 문제를 탐구하고 있다.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이라 해도 인간이 지닌 막연하면서도 근원적인 소외와 고독을 그린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철저히 타인관의 관계 속에서, 사회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 종속관계를 극복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바로 극중극 형식으로 나타나는 변상민의 소설 ‘개를 낳은 여인’이다. 작품 속에는 극중극처럼 공상 소설의 세계가 나타난다. 지구의 현실과는 다른 미래의 공상 세계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는 개와 인간의 합성체인 도그험(dog-human의 줄임말 doghum)과 인간이 대립하고 투쟁한다. 인간은 동물과 인간의 합성체를 대표하는 도그험의 족속을 흉측스런 괴물 또는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도그험과 그들..

한국희곡 2023.09.08

알퐁스 도데 '별'

지금은 노인이지만 젊은 시절 뤼브롱산에서 양치기 일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이 목동은 직업 특성상 사람과 거의 접촉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2주 단위로 마을 소식과 먹거리 등을 짊어지고 올라오는 노라드 아주머니나 농장에서 일하는 꼬마 아이 미아로가 유일한 말동무로, 이들이 올 때가 아니면 양들을 돌보고 밤에 별을 헤아리곤 하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다. 그는 이들이 찾아올 때마다 누가 세례를 받았고 누가 결혼을 했는지 등의 마을 소식을 물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알고 싶어한 건 근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인 주인집 따님 스떼 화네뜨 아가씨의 근황. 그는 관심 있는 티는 내지 않으면서도 아가씨가 파티에 자주 참석하고 저녁 만찬에 초대를 받거나 나들이를 하러 외출하곤 하는지, 지금도 멋진 청년들이 아가씨의 환심..

외국희곡 2023.09.07

나상만 '혼자 뜨는 달'

대학 신입생 나선랑은 꿈의 실현과 사랑의 성취를 인생의 목표로 생각한다. 상경하여 사촌 누나와 같이 살던 선랑은 누나의 친구 현주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누나의 벽은 높고 현주는 그를 동생으로만 대한다. 자신도 모르게 비슷한 여인 선이를 만나는 선랑, 그러나 얕은 사랑에 대한 회의로 현주의 존재가 더욱 그립기만 하다. 현주도 차츰 순수한 선랑에게 마음을 빼앗겨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소극적인 성격의 현주는 부모의 강요로 약혼하고 선랑 때문에 약혼을 파기하지만 약혼자의 음모로 순결을 빼앗긴다. 그녀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회복되어 선랑을 만나는 현주, 그러나 선랑의 순수함을 지켜주기 위해 그녀는 선랑의 곁을 떠난다. 작가의 글 〈혼자 뜨는 달〉은 ..

한국희곡 2023.09.07

최인석 '화적 임꺽정'

1980년대 중반부터 동아일보사에서 벌이고 있는 창극운동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큰 의의를 갖는 것인데 소재선택에 있어서 윤봉길 의사나 임꺽정전을 택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윤봉길 의사 같은 소재는 일제시대에는 감히 엄두도 못 내던 소재였고 임꺽정 역시 아직 창극으로 상연된 바 없는 신소재이다. 묵은 이야기이면서 어느 시대에나 재미있게 수용될 수 있는 임꺽정의 이야기는 명종실록에도 나오는 실제인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정치가 혼란하고 관리들의 부패로 민심이 흉흉하던 명종조에 경기도 양주 백정 출신으로 태어나서 많은 동지를 규합하여 의적 행세를 했던 인물이다. 주로 관가의 창고나 부정한 관리의 재물을 빼앗아다가 빈민에게 나누어 주고 원성이 높은 관리들을 혼내 주는 등 억압받는 백성들이 호응할 ..

한국희곡 2023.09.07

이난영 '개 같은 이야기'

실패한 사람, 경쟁에서 밀린 사람을 의미하는 용어로 Underdog이라는 말이 있다. 투견판에서 패배한 개를 지칭하는 말에서 유래된 말이다. 투견판에서의 언더독이란, 단 한 마리의 승자를 제외한 전부이기도 하다. 그리고 싸움의 승자마저도 일확천금을 노리는 탐욕의 노예로 소비될 뿐이다. 패배한 개들도, 승리한 개들도 결국은 언더독으로 전락해버리는 투견판! 좁은 철창 안에서, 자신에게 돈을 건 인간을 위해, 목숨을 거는 투견판의 개들처럼 우리들 역시 물질만능의 자본주의 사회에 갇혀 있는 언더독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성실히 축산농장을 꾸려가던 동남은 구제역 때문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다. 오랫동안 일궈왔던 자신의 터전이 경매로 넘어갈 처지가 되자, 동만은 우선변제로 경매를 취소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돈을 ..

한국희곡 2023.09.06

크리스토퍼 햄프턴 '어떤 박애주의자'

'어떤 박애주의자'는 크리스토퍼 햄프턴의 희곡으로, 1970년 8월 런던의 로열 코트 극장에서 초연한 후(로버트 키드 연출) 웨스트 엔드의 메이 페어 극장으로 옮겨 3년 동안 공연되었고, 그 후 1974년 지역 투어를 계속했다. 또한 이 연극은 1971년 3월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어 같은 해 5월까지 공연되었다. 햄프턴이 "부르주아 코미디"라고 묘사한 작품이다. 연극의 서막은 매우 섬칫하다. 필립과 도널드는 존과 함께 존의 쓴 연극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존이 감정을 넣어 장면 연기하는 걸 보고 필립과 도널드가 평을 해준다. 필립은 작품이 좋다고 하나 도널드는 신랄하게 깎아내린다. 너무 작위적이란다. 이 말에 열받은 존이 작품에서와 같이 리얼하게 권총자살을 한다. 근데... 총이 실제 발사된 것이다. ..

외국희곡 2023.09.06

미우라 시온 원작 강현주 번안각색 '배를 엮다'

무대는 어느 출판사의 사전 편집부. 책상마다 사전이 수북했다. 이 연극은 인터넷과 모바일 사전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종이 사전 편집자들이 주인공이었다. 사전 출간은 단행본⋅잡지와 달리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거꾸로 말하면 인기가 없고 존재감도 없다. ‘배를 엮다’는 일본에서 나오키상과 서점대상을 받은 미우라 시온의 소설이 원작이다. 연극은 사전 편집자들이 10여 년에 걸쳐 ‘대도해(大渡海)’라는 국어대사전을 새로 엮는 과정을 따라간다. 1996년 선경 출판 사전 편집부는 새로운 국어 사전 '대도해'를 준비한다. 정년을 앞둔 희권은 새로운 사전 편찬자를 찾지만 전자사전이 도입되는 시기에 사전 업무를 맡아줄 이를 찾기란 어렵다. 그러던 중 우연히 구내식당에서 국어사전을 보고 있는 영업부 성완을 발..

외국희곡 2023.09.05

테렌스 맥넬리 '정오'

데일의 연락을 받고 케리와 애셔가 그 높은 계단을 걸어올라와 만난다. 케리가 먼저 왔고 애샤가 나중에 도착한다. 그들은 상대가 데일 인줄 얘기하나 말의 핀트가 빗나간다. 정오로 약속한 데일이 아니라 데일과 똑같이 약속한 케리와 애셔이다. 한동안 말장난이 오간다. 에셔는 작가로 그런 대화를 곱씹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데일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고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잠시 후 알레그라, 알레그라, 베릴, 세실이 힘겹게 층계를 올라 온다. 역시 서로 데일인줄 오해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데일은 그 또는 그녀의 새로운 친구 5명과 오후 면담을 설정한 것이다. 왜 그는 미팅에 안 나타난 걸까? 2명의 여자와 3명의 남자가 황당한 상황에 얽혀 서로를 흉보며 자신은 바쁜데 이런 일이 있느냐며 불평이 난무한..

외국희곡 2023.09.04

김효진 '청춘정담'

현대인의 삶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형태로 사랑의 체험이 낳은, 사랑의 정의들도 다양한 것 같다. 그래서 정말 어떤 사랑이 정말 사랑인지 헷갈리는 것도 같다. 어쨌거나, 사람과 사랑 사이를 소통하고 위로하는 사랑은, 정말 시인의 말처럼 사랑만큼 즐거운 것은 없고, 사랑만큼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도 없다 하겠다. 이처럼 사랑은 우리네의 삶의 윤활유이자 에너지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사랑에 대해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텔레비젼을 켜기만 하면 쏟아져 나오는 갖가지 '사랑'에 대한 멜로드라마들. 수많은 멜로디의 노랫말들, 그리고 서점의 한켠을 모두 채우고도 남을 '사랑'과 연애에 관한 지침서들이 있다. 인터넷에 '사랑'이란 단어를 넣어서 검색만 해도 친절하게 알려주는 온갖 사..

한국희곡 2023.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