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아버지와 아들이 아내이자 엄마를 잃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술에 취해 거리의 여자를 찾아가선 한참 망설이다가
집으로 돌아오고, 고등학생 아들은 우연히 아버지의 뒤를 미행하게 된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아버지는 결혼할 여자를 데리고 온다.
세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식사를 시작한다.
10년 전,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여인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들은 지금 왜 이 '조용한' 식탁에 함께 앉아 있을까?
여인은 조그만 커피 점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나머지 등장인물 두 명은 아버지와 아들이다.
이들 부자에게는 부인과 어머니가 없다. 10년 전 병으로 죽었다.
장례식이 있은 후 얼마 후 너무나 우연히 이 두 남자는 각기 다른 이유로
여인을 따로따로 만나게 된다. 그 여인은 그때는 '기차와 지하철이 함께 서는 역'
근처의 사창가에 있었다.
그때 세 명이 서로 얽혀 들어가는 사건이 하나 벌어진다.
당시에는 그 일이 아프기도 하고 나름 심각하기도 했지만
셋은 각자 그 일을 잊는다. 살면서 그런 일이란 있을 수 있는 것이고
굳이 마음에 새겨 놓을 이유도 없다고 그들은 각자 생각했다.
그 일이 뇌리에 사라지고도 오랜 세월이 경과한 지금
아버지와 아들과 여인은 아버지 집의 식탁에서 맞닥뜨린다.
연극은 등장인물들의 뇌 한 구석에 처박혀 자고 있던
10년 전의 일이 깨어나는 상황을 추적해 간다.
이 작품은 몇 가지 점에서 독특하다. 보통의 연극에서 독백은 대개 무대의 어느 한구석에서, 또는 혼자서 조명을 받으며 한다. '조용한 식탁'에서는 자주 상대방을 앞에 둔 채 상대방을 보며 대화하듯 한다. 관객 입장에서는 그 광경이 눈에 익어질 때까지 약간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작가의 메모를 보면 그 상황이 금방 이해가 간다. "우리는 일상에서 특정한 상대와 대화하는 동안 겉으로 표현하는 말보다, 속에서 더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때로는 또 다른 대상을 생각하며 그 대상과 대화를 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일상을 무대 위에서 그대로 재연해 보고자 하는 의도다. 이러한 의도는 조명에서도 드러난다. 이 연극은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1막 장면, 아들과 여인의 2막 장면, 세 명의 3막 장면이다. 막과 막 사이에 무대가 어두워질 뿐 극이 진행되는 동안 어느 한 가정집의 평상시 밝기를 표현하는 조명은 변하는 것이 없다. 일상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몸동작은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다. 극적인 장면이 나올 때마다 관객들은 그 일에 관련된 실마리가 앞에 대사를 통해 나왔었다는 것을 쉽게 깨닫게 된다. 한마디로 '친절한' 연극이다. 말 또는 행간의 의미를 더듬느라 골머리를 썩일 일이 없다. 작가는 치밀하게 씨줄 날줄로 얽은 대사 속에 인간이 갖는 위선적인 생각과 편견, 그들의 나약한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사건에서 주는 긴장감, 탄탄한 텍스트로부터 오는 서늘한 묘미. <조용한 식탁>은 막장드라마를 비웃고, 코미디 같은 현실이 지겨운 관객들을 만족시킬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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