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에 묘를 파는 인부들 소리가 들리고 부친의 입관을 기다리는 조문객들이
있다. 어느 노파의 얘기로는 고인이 자살했다는 소리를 들었단다.
여자는 입고 온 상복의 검은 색깔 맘에 안 든다며 투덜거리고...
아들이 등장해 조문객들과 인사할 때 그때 한 여인이 등장해
고급승용차가 고인을 치고 뺑소니쳤다 한다.
아들은 악몽에 시달린다. 여러 섬뜻한 형상에 아빠를 외친다.
목격자1, 2가 아들을 만난다. 아들이 목격자를 찾는 신문광고를 보고.
그들은 사례금 얘기부터 시작해 결국 아들의 신상부터 털어내고
과거의 잘못을 추궁한다. 마치 수사관 같다.
또 아빠의 꿈을 꾸는데 자신이 총을 들고 있고 아빠는 "살려줘"를 외친다.
묘지에 왔던 여인도 만나 사고 얘기를 하려는데, 이 여인은 아들을
유혹하는 듯 치근덕 거린다.
아들은 이제 환청에 시달린다. 남녀 혼성의 소리들이 각자 떠들어댄다.
아들을 동조하기도 하고, 제3자가 되어 꾸짖기도 하고.
결국 실체를 알기 위해 그 고급 승용차의 주인이란 사람을 찾아간다.
큰 빌딩, 어느 사무실. 비서가 만나주는데, 그의 말은
"먼저 길에 쓰러져 있는 노인을 인도 쪽으로 안전하게 옮겨 놓은 후
그 곳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의 어르신이 뵙고 싶다고 해서 만나는데...
아들이 그 어르신을 보고 "아빠!"를 외친다.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아빠!’ (박귀옥 작)는 아들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살부(殺父)의 욕구를 건드리면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의식의 흐름을 따라 그려낸 작품이다.. 당시 심사위원인 이강백 작가는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신선한 형식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마치 다면체 거울로 여러 각도에서 사물을 비춰 보여주는 것 같은 수법이 재미있고, 연극만이 가질수 있는 특성을 매우 효과적으로 살려내었다." 평했다. 이 작품에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장소나 시간, 정형화된 인물들이 나오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아빠(DADDY)의 죽음(DEATH)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추상적 설정은 이 극을 난해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과연 현실이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우리가 논리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계가 실제는 허상이 아닐까? 이 극을 혼란케 하는 또다른 요소는 극의 구성이다. 현실과 꿈, 회상이 아무런 설명없이 나열되어 있고 어느 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명확하게 구별되지도 않는다. 그것들은 서로 혼합되기도 하면서 관객들을 미궁 속으로 (또는 절망 속으로?) 서서히 몰아간다. 사실 이 연극 전체가 하나의 수수께끼일 수도 있다. 관객은 느긋하고 열린 마음으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라고 권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상징의 덫에 걸려 헤어나올 수 없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 '퍼즐 연극'에 대해서 약간의 힌트라면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가장 확실하다는 것, 바로 그 점이다.
당선소감 - 박귀옥 「당선의 샘물」로 목축였지만 갈증은 끝이없어...
한 여자가 캄캄한 소극장 구석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 앞에서는 극작가들의 말(言)의 향연이 베풀어지고 있었다. 흘러 넘치는 말의 홍수 속에서 그 여자는 낯선 감동을 발견했고. 그 감동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심한 목마름을 느꼈다. 어느 날 그녀는 <당선>이라는 이름의 작은 샘앞에 서있었고, 그 물을 마셨다. 이제 그 여자의 갈증이 해소되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샘의 물은 다량의 염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녀를 더욱 더목마르게 만들었을 뿐이다. 나의 미약한 발걸음을 늘 지켜주시고 때때로 업어주기도 하시는 하나님과, 딸의 당돌함도 애정으로 너그럽게 감싸주신 부모님, 따뜻도 시선으로 격려해주신 많은 분들께 작은 지면으로나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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