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태석 '비닐하우스'

clint 2025. 3. 18. 12:37

 

 

국가의 비상사태 때 쓸 피를 채혈하는 가상의 장소 '비닐하우스' 
국민 합의에 의해 설립된 곳. 통지서가 날아오면 가서 며칠 머무르며 
채혈당하고 돌아오는 그런 곳. 여기에 수은 중독에 걸린 15세 소년이 
뛰어들면서 소동이 벌어진다. 무대는 국가의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국민들의 피를 집단 채혈하는 <비닐하우스>내부이다. 이른바 국민적 
합의에 의해 설립된 곳으로 통지서를 받은 사람들이 며칠씩 머무르면서 
헌혈을 하게 된다. 중앙의 철제침대 양쪽으로 발걸이가 달린 등받이 의자 
8개가 나란히 놓여있고 재소자들은 모두 분홍빛 잠옷에 자주색 가운을 
입고 있어 매우 질서정연하게 보인다. 그 뒤편은 대형기계들이 놓인 
밀실로 재소자들을 항상 감시하고 통제한다. 
재소자들은 강아지처럼 목에 카드를 걸고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린다. 
그들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잠자고 체조하고 식사하고 일제히 담배를 
피우거나 상자갑을 조립하는 단순노동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한다. 
용변을 본 후 앞으로부터 손을 찔러 뒤처리를 하는 행위, 식사 때 수저를 

쓰지않는 행위조차 규칙으로 익숙해지면 관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요원들은 재소자들에게 헌혈의 숭고함을 주기적으로 세뇌시킨다. 
혹 매혈을 당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지만 곧 검색자로부터 

끊임없이 양말을 신고 벗는 따위의 지겨운 체벌을 당함으로써 차라리 
의심을 포기해버린다. 여기에 수은중독의 한 소년이 천장의 배기구로부터 

굴러 떨어지면서 일대 소동이 벌어진다. 납빛 안색으로 변한 소년은 

변기에 얼굴을 처박고 고통스러운 토악질을 해대지만 재소자들은 

악취에 질겁뿐 무관심이다. 얼마 후 소년의 사망소식과 현장검증

예행연습이 실시된다. 신입재소자가 소년의 역할을 대변하고 다른

재소자들은 양동이에 얼굴을 들이밀고 욕지기하나 장내에는 
곧 공허하고 요란한 웃음소리만이 진동하게 된다. 
이때 신입재소자가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변기에 담겨진 피를 
온몸에 쏟아 붓고 소년의 고통을 웅변한다. 그러자 재소자들이 그를 
시트로 상여처럼 싸매들고 서서히 움직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신입재소자가 밀실로 돌아감으로써 이 소동이 조직에 의해 조작된 
프로그램이었음이 밝혀진다.

 

 

 

이 작품은 전쟁과 공해로 얼룩진 후기산업사회를 배경으로 위선적인 공동선을 표방하는 거대한 조직에 순치되고 파괴되어가는 인간군상을 보여준다. 비닐하우스는 엄청난 재난에 대비하여 국민들이 집단으로 채혈하는 곳, 사람들은 마치 입영영장을 받듯이 헌혈통지서를 받고 이곳에 와서 저마다 할당된 양의 피를 뽑는데, 국민적 합의로 세워졌다는 이 기관이 자율과 자발보다는 강요와 통제에 의해 통치된다. 헌혈자들은 죄수 취급을 당하여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고 비닐하우스의 화초같이 고분고분해지도록 사육된다. 세속적이지만 아직도 정의감과 인간미를 지니고 있는 청과시장 중매인이 비닐하우스에 침입하여 조직의 비리와 싸워 마침내 승리한 뒤 수용소를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극이다. 마지막 장면의 처리를 놓고 연출자와 작가 사이에 있었던 논쟁이 극계의 관심을 끌기도 했었는데, 원래 오태석은 이 침입자마저 조직이 보낸 역정보원으로 설정하였으나 이윤택은 관객의 신뢰를 배반할 수 없다면서 작가의 안을 무시하고 매우 낙관적으로 극을 마무리지었다.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면서 남에게 해만 끼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 현대인의 '생활철학'이다. 그 생활철학 속에 안주하고 자위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울타리를 점검해 본다는 이 작품은 안과 같은 평온한 분위기, 따뜻한 공기, 적당한 습도, 뽀얀 햇볕 아래 있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삶을 새롭게 돌아보게 한다.

 

 

 

작가의 말 - 오태석(吳泰錫)

나는 비닐 하우스에서 우리가 어디까지 끌려와 있는지

또 우리가 어디까지 밀려와 있는지 한번 생각해 봐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점을

펼쳐보려고 했다. 어떤 좋은 사람 위대한 사람이 있어서 우리를 좋은 쪽으로

끌고가려 했을 때 그는 과연 어떤 처방을 내릴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미 너무나 고단위의 별의별 흉악한 약까지 다 써본 상태에 이르러 있다.

우리가 바라는 대로 가다 보니까 생긴 결과다.

이젠 고단위의 약이 아니라 단위를 조금씩 줄여 가야 할 때다.

 

 

 

비평적 촉각, 과학문명 고발 - 오태석 작 <비닐하우스>. 가상의 비닐하우스 세계에서 피를 헌혈하고 구역질하는 인간군상들을 통해 과학문명을 고발하는 작가는 또 한 꺼풀 탈피를 도모한다. 오태석의 작품세계에 반문명적인 색채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개 그런 문명 비평적인 촉각은 전통사회라는 카오스의 씨줄이 견주어지는 날줄로서의 질서 그것이었다. 반질서의 질펀한 판놀음 가운데 깨진 유리조각처럼 번뜩이던 반문명성은 그래서 어쩌면 전통성에 반사된 현대의 추악한 몰골 같아서 그의 작품세계에 드러나는 과학과 질서의 문명세계는 이미 부정의 그것으로 낙인 찍혀 있는 터였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비닐하우스>는 전통연희에 담긴 현대의식과 과학문명이 아니라 처음부터 가상의 과학문명사회 자체에 조명이 주어진 상황설정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시선과 관심을 모았다. 비닐하우스는 인공(人工)의 극치다. 그런 시스템이 바로 문명이다. 그리고 그 얄팍한 문명의 조직 속에서 온실의 야채가 자라듯이 사람들은 합의라는 미명으로 피를 뽑는다. 그 조직과 합의라는 대전제는 과학문명 이전에 정칟사회적 조직의 일면을 드러낸다. 비닐하우스의 과학문명은 비정한 산업사회의 관료제도와 맞물려 무서운 파멸로 해체된 놀이를 즐기고 있다. 해체된 놀이는 극적인 절정이 없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 연극적 재미를 돋우는 전승연희의 놀이가 해체된 가운데 남는 것은 문명질서의 깔끔한 껍데기뿐이다. 그만큼 오태석의 연출작품에서<비닐하우스>만큼 정돈된 무대도 드물다. 오픈 스테이지로 처음부터 가까운 공간처럼 거기 놓여 있는 무대는 때때로 광원(光源)을 드러낸 조명과 싸늘한 빛깔의 스테인리스 골격 의자와 장치들로써 깔끔하게 정돈된 질서의 위화감을 강조하는데 그 비닐하우스 공간 속의 ‘우리’는 어쩌면 또 하나의 정치적인 변종인 ‘1980년’(조지 오웰의<1984년>에 빗대어)을 살아야 하는 현대 과학문명의 희생양들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비닐하우스>의 질서는 관료조직의 질서이며 그 질서를 깨뜨리는 자는 정치적인 반역이 된다는 식의 강한 이데올로기를 부여하지 않은 것이 오태석답다. 그의 놀이적 수법은 하필이면 환기통 구멍을 통해 잠입한 수은중독증 소년의 구토증세이며, 그 전염 증세로 관객들을 ‘갖고 놀려고 한다’. 그러나 관객들과 함께 노는 것이 아니라 관객을 갖고 노는 작가의 악의는 그것이 선의의 장난이기 때문에 굳이 구애받을 것이 못 된다. 그런 악의 없는 장난은 오태석의 장기이기도 한 것인데 놀이가 해체된<비닐하우스>에서의 문명 비평적인 그의 변신은 현대 관료사회의 어슴푸레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상황설정과 함께 질펀한 놀이판의 형성을 억제한 탓에 그의 또 다른 장기인 그로테스크를 통한 문명비판적 강도를 더해 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국민적 합의라는 피의 헌혈무대, 느닷없이 나타난 수은중독증 소년의 죽음, 그리고 그의 구토증 증세의 전염을 담아내는 소도구로서의 변기나 양동이에 머리를 틀어박는 무리들, 위장된 동맥 절단과 피주사기와 가제 등 선혈의 그로테스크한 형상들은 분명히 작가 오태석의 일면을 담고 있는데 그것이 전통사회의 현대 의식일 때와 현대사회의 전통적 의식일 때, 그가 펼치는 재미와 관객의 즐거움이 휘발해 버린 까닭은 끝내 밝혀낼 수가 없다. 그것은 어쩌면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간극을 비집고 그 틈바귀에서 장난스런 악의의 웃음을 만들어내던 오태석이 그의 두 세계 사이의 축을 한쪽으로 거두어 내고 지나치게 과학문명 쪽으로 쏠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장난스런 악의의 웃음이 아직 어떤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전환기의 시대처럼 표류하고 있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작가로서, 연출가로서 한 고비를 넘어가고 있다는 징후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통사회의 원초적 의식을 지향한다기보다 과학문명의 관료적 제도 속에 도사린 어두운 절망에 대한 성찰일지 모른다는 예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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