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대장경 제조의 총책임자인 수기대사는 꿈을 꾼다. 꿈에서 고려인들의
잠재해 있는 기운에 불을 붙일 불씨를 갈구한다.
꿈에서 깬 수기대사는 누군가를 찾아 떠난다.
무작정 수기대사를 쫓던 천기는 수기대사가 누구를 찾아 나섰는지
왜 찾는지 궁금하다. 수기의 알듯 모를 듯 한 대답에 천기의 의문이
더해만 가던 중, 그들은 어느덧 동굴에 도착한다.
동굴 안에는 고려 최고의 각수인 비수가 혼자 석상을 새기며 살고 있다.
장경을 다시 만들어 몽고를 물리치겠다는 수기의 말에 비수는 그 효력을
의심하지만 수기대사의 설득으로 비수는 장경 제작에 전념키로 결심한다.
나루터에 모여든 사람들, 수기대사와 각수들의 도착을 환영한다.
단아는 비수를 보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고, 단아의 마음을
눈치 챈 만전은 이를 분개한다.
판각작업은 의식처럼 경건하게 진행된다. 부모를 죽인 몽고군에 대한
복수심으로 마음을 달래지 못하는 비수에게 단아는 격려의 힘을
불어넣어준다. 비수역시 단아를 사랑하게 되지만, 단아에게 다가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안쓰럽다.
소강상태에 빠진 몽고군. 고려가 함락되지 않는 이유가 대장경에 있다고
판단한 이들은 장경을 불태우기 위해 강화로 진격할 것을 결정한다.
고종과 문무백관들, 남해에서 배로 올라오는 판재의 도착을 기다리던 중,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한다. 고종은 다시 한번 우리의 정성이
하늘에 닿기를 바래며 기원제를 열 것을 명한다.
장경제작의 성공을 위한 기원제가 열린다. 장중한 기원의식이 끝나고,
단아와 비수는 서 로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자신의 여자라고 생각했던
단아가 천한각수 비수와 사랑하게 되자 만전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결국 강제로 묘화를 겁탈한다. 단아, 모든 일 접고, 여승의 길로 들어서고,
홀로 남겨진 비수, 그녀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사랑을 간절히 불러본다.
제2부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판각작업은 무르익어가고, 글자를 새기는 비수는
단아에 대한 그리움은 나날이 더해만 간다. 세월이 가도 끝내 분을 삭이지 못한
만전은 비수에게 장경작업이 끝나면 목숨을 거두겠다고 위협하고,
이를 지켜보던 수기대사는 비수의 마음 을 조용히 달래준다.
나주근처 산 중에 산적들이 세상과 등진 채 숨어살고 있다.
산적들에게 붙잡혀 온 별초 군 부상병이 몽고군의 강화진격 소식을
알리고 숨을 거두자. 산적들은 나라를 위해 싸울 것을 결심한다.
여승이 된 단아, 산적들과 함께 강화로 떠날 준비를 한다.
몽고군의 강화진격 소식을 들은 고종 및 문무백관들, 고려의 정신인
'대장경판'을 철저히 지킬 것을 다짐한다. 고종은 장경의 완성을 위해
굴하지 않고 끝까지 이뤄낼 것을 독려한다. 삼천각생들과 백성들이
판목을 나르고 판각하고 있다. 지성을 다하는 백성들의 판각작업을 지켜보던
대장경 운송 총책임자 정안은 이들의 정성이 헛되지 않도록 하늘에 기도하며
강도로 판재를 싣고 떠날 준비를 한다. 이때, 승선을 원하는 산적들과 여승이 온다.
여승이 딸 단아임을 알아 본 정안, 10여 년만에 부녀 해후다, 함께 배에 오른다.
마지막 판재를 싣고 강화로 떠나는 마지막 배는 강화에 도착하기도 전에
거센 폭풍을 만나고, 판재와 함께 침몰할 위기에 빠진다. 단아의 간절한 기도는
폭풍을 잠재우고 배는 무사히 강화에 도착한다.
십여년 만에 해후한 비수와 단아 못다한 그리움을 나누고 싶지만,
전쟁이라는 현실로 되돌아가야 한다. 비수와 단아를 멀리서 지켜보던
만전, 끝내 가질 수 없는 단아에 대한 집념을 포기하고, 장경을 지켜
고려의 혼을 구하리라 결심한다.
결전이 시작된다. 일진 일퇴 공방이 거듭되는 가운데 고려군은 수세에
몰리고, 만전은 한꺼번에 몰려드는 몽고군의 칼에 전사한다. 몽고군의
기습대는 장경각에 불을 지르고, 모든 고려인은 불을 끄기 위해 사력을
다하지만 여의치 않다. 단아는 자신의 몸을 불 속에 던지고, 이에 힘을
얻은 백성들은 용감히 돌진하여 몽고의 포위망을 뚫고 불을 끈다.
결전이 끝난 새벽, 단아의 시신을 안고 장경각을 걸어나오는 비수는
단아의 거룩한 죽음을 애도하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린다.
마침내, 장경이 완성된다. 16년에 걸쳐 완성된 장경은 제작에 희생된
넋들에게 바쳐진다.
뮤지컬 팔만대장경 (두 젊은 연인의 슬픈 사랑이야기)는 한국의 국보<팔만대장경>을 당시의 제작과정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국난극복으로 승화된 젊은 두 연인의 슬픈 사랑을 극화한 작품이다.
<팔만대장경>은 가로70cm, 세로 24cm, 두께 2.8m의 목판 8만여장에 52, 330, 152자의 부처님의 말씀을 새겨 만든 불교성전이며, 현재 한국 합천 해인사에 원형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13세기 초엽, 대륙 제패의 웅지를 품고 중국 대륙은 물론, 유럽까지 서역정벌에 나섰던 몽고의 징기스칸 군대는 1231년부터 1259년까지 무려 30년 간 고려국의 전 국토를 초토화시키고 항복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는 이에 굴복하지 않았고 항전하였으며, 처참한 전쟁의 와중에서 1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평화를 염원하는 한마음으로 한자 한자 부처님의 말씀을 목판에 새겨 <팔만대장경>을 완성하였으며, 그 고려인들의 의지는 마침내는 몽고군을 나라 밖으로 몰아낸 원동력이 되었다.
<팔만대장경>은 1995년 12월 모든 인류가 소중히 보호하여야 할 찬란한 세계의 문화 유산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고려문화의 금자탑이다.
대장경이란 불교의 세 갈래 귀한 문헌 - 경(經), 율(律), 논(論)을 모아 두는 "세 개의 광주리"란 뜻에서 비롯한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는 "팔만대장경"은 770년전 우리 선조들의 얼을 담아 오늘의 한국인에게 전해주고 있는 진정 커다란 보물 광주리임을 알 수 있다.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는 "팔만대장경 8만 1258장의 목판 한 장 한 장에는 당대 고려인의 간절한 바램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오늘의 우리들에게 남겨준 메시지이기도 하다. 한 장의 목판은 대개 가로 70cm 남짓, 세로는 24cm, 그리고 두께가 3cm로 되어 있으며, 무게는 약 4kg씩이나 된다. 한 장이 거의 한 아름이나 되는 묵직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목판 한 장 한 장에는 각각 앞뒤로 644자씩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한 장에 644자씩. 모두 8만장이 넘는 목판에 새겼으니 그 글자는 모두 5천만자가 넘는다. 거의 우리나라 인구와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지금부터 760여년전인 고려 고종 때 1236년(고종 23년)부터 시작한 대장경 새기는 일은 1251년(고종 38년)까지 16년간에 걸쳐 계속되었다. 이 놀라운 노력의 결과를 지금 우리들은 우리 보물로 누리게 된 것이다. 세계 어느 다른 곳에도 이렇게 많은 경관을 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새겨본 일도 없거니와, 더구나 그리도 많은 경관이 한꺼번에 남아 계승되고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세계의 자랑일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는 이를 세계 문화유산의 하나로 지정한 바 있다.
"팔만대장경"을 만든 고려 후기 고종 임금 때는 유난히도 어렵던 고난의 시기였다. 우리 역사상 유일하게 (단 한 번) 수도를 강화도 섬으로 옮겨 침입한 몽고 군대를 피하고 있던 그런 시절이기도 하다. 당시 징기스칸의 후예들은 세계를 정복하고 있었고, 그 힘을 유럽과 아랍중국 어느 민족도 물리치지 못할 정도로 강한 군대를 부리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강한 세계의 정복자들로부터 나라를 오래 지킬 수 있을지 조차 알 수가 없는 위급한 상황속에서 고려인들은 이 힘든 대장경판의 제작을 끈질기게 추진해나갔다. 그 전에도 몇 차례 대장경은 주조되었지만, 몽고의 침략으로 그것이 불탔기 때문이기도 하다.
1231년(고종 18년) 8월 몽고군이 고려를 침입했다가 이듬해 물러갔고, 고려는 몽고의 재침을 피하기 위해 이듬해 6월 강화로 천도했다. 몇 차례의 침략이 되풀이 되는 가운데 1236년 6월 몽고는 다시 압록강 을 건너 침략해 들어왔다. 그리고 이번 침략은 1239년까지 지속되었다. 전국이 외침의 피해로 얼룩졌고, 신라의 대표적 자랑이던 황룡사 구층탑도 이듬해 1238년 4월에 몽고군이 불태워 없어졌다. 고려 사람들은 이런 참담한 가운데 부처님의 힘을 빌어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뭉쳐 "팔만대장경 이라는 대사업을 추진했던 것이다. 그들의 애국정신은 종교적 헌신으로 뒷받침되었고, 그것은 16년 동안이나 한결같이 계속된 끈질긴 국민적 노력의 산물이었다.
당시의 나라사랑이 지금과는 성질이 다르고, 당시의 단 한가지 종교였던 호국불교(護國佛敎)에 대한 신앙 역시 지금의 다양한 종교 속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런 장기간에 걸친 수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는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그 나름의 애환이 얽혀 아롱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바로 이 부분을 되살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그때의 감격을 되새길 수 있게 해주는 일은 오늘의 한국예술 이 담당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우리 역사. 또 세계사의 관점에서, "팔만대장경은 인쇄술의 고향으로서의 한국인의 자부심을 간직하고 있는 귀중한 유물이기도 하다. 특히 불국사에서 1966년 처음 발견된 <다라니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 유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를 세계의 제1차 정보화 혁명의 주역으로 만들어 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팔만대장 경은 바로 그 인쇄 전통의 클라이막스(완성자)였다. 그리고 "팔만대장경을 만들고 있던 바로 그 때에 우리 선조들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 인쇄술을 개발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팔만대장경"을 새기기 시작한 직후인 1234년(고종 21년)에 처음으로 금속 활자를 가지고 책을 찍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찍은 그 책은 지금 남아 있지 않지만 1377년 청주에서 찍은 다른 불경 <직지심경>이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금속활자 인쇄물로 공인되어 있다. 금속활자는 그 후 더욱 완성되어 조선초, 특히 세종 때에는 완벽한 금속활자 인쇄술로 발전했고, 그때 금속활자로 찍은 책은 여러 가지가 지금도 남아있다.
좋은 말씀을 널리 전하고 길이 남기려던 우리 선조들의 정보화 정신을 잘 대변해 주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정보화의 시대> - 21세기의 인류 모두에게 자랑스런 유산이 아닐 수 없다. 불교 하나만 존재하던 당시와는 달리 우리는 지금 다양한 종교의 시대를 살고 있고, 그 지키 고 싶고 가르치고자하는 소리와 정보도 770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그 때와 달리 인터넷을 통해 세계의 온갖 정보는 누구나의 책상 위에서나 간단히 접속해 얻을 수가 있는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고려시대 우리 조상들의 아름다운 소리를 오늘의 청아한 목청과 음악에 담아 세상에 전하는 뜻은 그 때와 지금이 다를 바 없다. 그것은 좋은 소리(새로운 정보)를 더 널리, 더 오래 전하고, 가르치려던 우리 선조들의 성의와 노력을 오늘 다시 일깨움이다.
이 작품은 김의경 원작, 윤조병 각색, 김선하 작곡으로 극단 현대극장에서 1999년 초연하였고 이후 재공연과 해외 초청공연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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