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3 2

조정일 '달의 뒤쪽'

이곳은 어디일까? 버려진 땅. 모래바람이 지독하다. 헐벗은 산들이 멀리 있고 포탄들이 휘파람을 불며 날아다닌다. 왼편에 나무 하나라도 보이지 않으면 이곳이 달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곳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더는 어떠한 소문도 못 들었다. 사방이 지뢰밭, 날개를 달지 않는 한 누구도 이곳에 들어올 수도  떠날 수도 없기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지하에 산다. 그것은 포탄이 떨어져 만든 구덩이다. 이곳에 고여있는 사람들, 지뢰를 모두 캐내고, 종자 뿌릴 날을 고대하며 연장을 손질하는 사내와 전쟁이 끝나면 다시 살림 불릴 생각에 틈만 나면 곳간 열쇠를 만지작대는 아낙, 그리고 기억을 놓지 않으려 죽어간 자들의 이름을 중얼대는 할머니, 전설에 푹 빠져 ..

한국희곡 2025.03.03

윤성민 '내 무덤에 너를 묻고'

왕(경종)의 이복동생인 왕세제(연잉군. 후의 영조)를 왕으로 세워  정권을 잡으려 했던 김춘택은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지방에 숨어 지내며  때를 살피던 중 사촌이 역모로 체포되면서 생존이 발각되고 만다.  왕은 김춘택에게 능지(陵地)를 알려주며 자신의 묘를 만들기를 명하고  혼자 묻히진 않을 테니 그 묘에 순장을 하겠다고 말한다.  김춘택과 그의 가족들은 누가 묻힐지 모를, 여차하면 역모로 몰린 자신들이  묻힐지 모를 무덤을 공사하며 살아갈 방법을 모색한다.  한편 왕은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왕세제가 진짜 역모의 배후에 있는지  아닌지 의심하며 그를 죽여야 할지 고민한다. 경종과 김춘택의 대립이 볼거리인 연극 은 경종이 “자신의 능지공사 후에 순장하겠다”는 파격적인 명령을 내리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그 ..

한국희곡 2025.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