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1 3

조현 '의자연석회의'

의자들이 등장해서 궐기대회를 벌인다. 무슨 궐기대회인고 하니,  해방을 맞아 의자들도 정신 똑바로 차려서 친일 반역자가 아닌  애국자들만 골라 앉히도록 투쟁하자는 결의를 다지는 궐기대회다. 여기에는 독립투사의 의자(고물상 의자)를 비롯하여 노조의자, 대학생 의자, 이발소 의자, 카페 소파, 호떡 의자, 냉면집 의자, 고문실 의자,  안락의자에 심지어 비단 방석까지 등장한다.  이들은 각각 자기들 이 모셔 앉히던 주인의 성격을 그대로 빌어  의인화된다. 예컨대, 안락의자나 비단 방석은 철 지난 양반 계층을  대변한다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의자 특유의 입장에서 스스로  무생물임을 자처하며 어떻게 하면 이 시대를 올바로 살아 갈 것인가를 토의한다. 대회가 해산을 선언한 후 차례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감투 욕심..

한국희곡 2025.03.11

남정희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여자(피어나)가 혼자 살고 있는 아파트에 어느 날 한 남자(원일)의 전화가 온다. 남자는 오늘 강연회에서 다이어리를 주웠고 거기에 주소와 전화번호가 있어연락해서 전해주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남자가 방문한다. 그는 이 아파트에 들어오며 무척 놀란다. 고급 맨션이기에, 그리고 여자가 홀로살고 있기에. 피어나는 남자에게 차를 대접하고 고마움을 표한다. 남자는 여자가 여러모로 궁금하다… 30대 초중반의 여자는 웃음이 없다. 어느 정도 얘기가 진행될 때 전화가 온다. 아마도 그녀의 남편인 것 같다. 원일은 서둘러 인사하고 아파트를 나선다. 잠시 후 그녀의 남편이 들어온다. 부부사이인 두 사람의 대화는 뭔가의 문제로 별거중인 듯하다. 그래서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는 남편의 말이 계속 나온다. 그러나 ..

한국희곡 2025.03.11

로베르 르빠주 '달의 저 편'

극은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된 뒤를 시점으로 시작한다. 한 미국 병사가 그 피해를 조사하러 왔다가 원자탄의 희생자인 여인을 만난다. 극은 이 두 사람의 사랑을 틀로 삼아 유태인 학살 당시의 테레진 수용소 시절까지 돌아갔다가, 다시 에이즈에 걸린 한 남자가 암스텔담의 자발적 안락사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현재로까지 이동한다. 요컨대 르빠주는 두 연인들의 사랑이야기에 홀로코스트와 전후 미국의 사회상을 담아 20세기의 거대 비극들을 직면했던 개인들의 뼈아픈 이야기를 직조해냈다. 재탄생, 용서, 동과 서의 만남이라는 거대한 주제들이 이 위대한 장인의 용광로에서 녹아 하나의 통일된 총체극으로 거듭 나서 관객의 눈과 마음과 가슴을 홀린다. 지식의 축적으로 인간들은 우주와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자만하게 되..

외국희곡 2025.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