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위화 원작 소설 배삼식 각색 '허삼관 매혈기'

clint 2024. 9. 30. 04:52

 

 

 

가난한 노동자 허삼관은 피를 파는 것이 건강의 징표가 되는데다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에 피를 판다. 
피를 팔아 번 돈으로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던 허옥란과 결혼을 하고 
세아들-일락,이락,삼락을 얻는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아들 일락이가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 
하소용의 자식임이 밝혀진다. 
분노한 허삼관은 일락이를 친아버지 하소용에게 보낸다. 
하지만 하소용은 일락을 내쫓고 허삼관은 일락을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인다. 
삶의 고비가 닥칠 때마다 허삼관은 피를 팔아 돈을 마련하며 아들들을 키운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허삼관의 집에도 고비가 닥치지만 
특유의 낙천성으로 극복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일락이 병을 얻어 입원을 하게 된다.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또 다시 피를 판 허삼관은 그만 쓰러지고 만다. 
다행히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은 구하고 
일락이도 아버지가 피 판 돈으로 병원비를 대어 회복을 한다.   
세월이 흐른 후 허삼관은 난생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고기를 사먹기 위하여 피를 팔려 하지만 늙고 병든 탓에 
이제는 아무도 자신의 피를 사주지 않는 사실을 알고 슬퍼하는데...

 

 

 

<허삼관 매혈기>는 1996년 중국의 작가 위화가 발표한 소설로 출간되자마자

그해 인민일보에 의해 '올해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어 중국 독서계를 뒤흔들며

단숨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문제작으로 현재까지도 부동의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주인공 허삼관이 자신의 피를 팔아 살아가는 인생역정을 다룬 이 작품은

중국현대사의 큰 굴곡을 이루었던 국공합작과 문화대혁명이라는 거센 물결을

무리없이 작품 속에 수용하며 매혈이라는 무겁고 어두운 소재가 주는 일반적인

관점을 뛰어넘어 유머스럽고 경쾌하게 풀어낸다.

 

 

 

작품의 배경은 1960년대를 전후로 한 중국. 자신의 피를 팔아 연명해 나가는 한 가난한 노동자의 이야기에 국공합작과 문화대혁명이라는 격동의 중국역사를 병풍처럼 배경에 드리우면서 서사진행의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반복시키며 무거움을 덜어준다. 그 당시 집단광기와도 같았던 문화대혁명의 암울한 기억조차 평범한 한 인간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함께 모아 코믹하면서도 빠른 템포로 풀어나간다. 그래서 특유의 낙천적인 모습으로 시대의 벅찬 무게를 이겨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작가 특유의 따뜻한 시선과 풍성한 입담, 그리고 능숙한 이야기 솜씨를 통해 사랑스럽게 살아난다. 허삼관에게 있어 '피'는 자신을 지탱해 주는 '힘'이자 곧 '돈'이었다. 피를 팔아야만 살 수 있는 구차스럽고 황당한 허삼관의 삶은 문화혁명이라는 특수한 과거속 중국에서만 일어났던 가장 중국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수시로 삶의 그늘과 마주치며 그 무게를 이겨내려 애쓰는 오늘의 우리들 삶과도 다르지 않음을 작가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다. 때로는 아들들을 위해, 때로는 식구들의 맛있는 밥 한끼를 위해 매혈이라는 고단한 역정을 아슬하게 이어나가는 허삼관의 모습에서 우리네 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인공 허삼관과 그의 가족들은 슬픔과 삶의 무게에 마냥 짓눌려 있지만은 않는다. 작품 곳곳에서 우리는 해학이 넘치는 대사들과 마주치게 되는데 이러한 것들이 자칫 어둡고 비극적일 수 있는 이 극의 분위기를 코믹하면서도 부드럽게 만든다. 고통스럽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교차, 반복시켜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다. 비애와 연민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사는 등장 인물들을 통해 예로부터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던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삶의 진실을 보여준다.

 

 

 

할아버지의 이야기처럼 - 각색 배삼식
제 할아버지는 자기 논밭과 집을 시계추처럼 또박또박 오가며 일흔 몇 해를 살다가신, 오갈 데 없는 농사꾼으로, 평생 땅만 들여다봐서 그랬는지 이 양반 입술도 누가 들쑤석거리지 않는 이상 좀체 열리는 법이 없었는데요. 그 무거운 입에서 얻어들었던 몇 마디 말씀 중에, 참 지금 생각해 봐도 뜬금없는 말씀 한 마디는 잊히지가 않습니다. 어느 여름날, 마루에 앉아 다리를 대릉거리며 햇살이 따가운 마당을 건너다보고 있는 제 앞에 할아버님이 오시더니, "사내자식이 맺힌 게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 붙들고 두들겨 패서라도 풀어야지, 충그리고만 있으면 안 된다." 앞뒤도 없이 달랑 이 말씀만 던져놓으시고는 가버리셨습니다. 아니, 얌전히 앉아있는 애한테 와서 하신다는 말씀이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두들겨 패라니 이 무슨 말씀이신가,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등줄기가 찌릿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말씀은 아마도 당신 자신에게 하시는 혼잣말 비슷한 것이었겠지만, 저로서야 그분 속에 맺혔던 게 무엇인지, 그래서 그 말씀대로 풀고는 가셨는지 앞으로도 영영 알 길은 없지요. 또 생각나는 것은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 할아버지께서 안 쓰고 비워놓았던 사랑채를 치우고 그리로 옮겨가셨던 일입니다. 자식들이 다 떠나고 둘만 남은 집에서 밤이면 안방에 혼자 누운 할머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사랑채에 누운 할아버님은 또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왜 꼭 그러셔야 했는지 알 길은 없지 만 그 모양을 떠올리다 보면 슬며시 웃게 됩니다. 할아버님의 그 말씀과 마지막 '독수공방'을 저는 앞으로도 잊지 못하고 또 생각할 때마다 웃게 될 텐데요. 그 일들은 제게 영원한 물음표, 유쾌한 궁금증으로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분께서 제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인 셈이지요. 위화씨가 들려주는 '허삼관' 이야기 또한 제게 그러했습니다.

 

 

 

작가 /위화

위화(余華)는 1960년생 중국 항주(抗州)출생으로 1983년 단편소설 <첫번째 기숙사>를 발표하며 작가활동을 시작, <18세에 집을 나서 먼길을 가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등 실험성 강한 중 단편을 내놓으며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급부상했다. 이후 장편소설 <가랑비 속의 외침>으로 작품활동의 일대변화를 예고한 그는 중국의 역사성과 본토성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두 번째 장편소설 <살아간다는 것>을 통해 마침내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음하게 된다. 가파른 중국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인간이 걸어가는 생의 역정을 그려낸 이 작품은 장이모 감독에 의해 공리 주연으로 영화화(국내에서는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위화현상'을 일으키는 일련의 기폭제가 되었다. 1996년 발표한 작품 <허삼관매혈기>는 명실상부한 중국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를 굳히게 한 명작이다.

 

2015년 영화로도 제작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