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셰익스피어 양정웅 재창작 '한 여름밤의 꿈'

clint 2024. 9. 28. 06:45

 

 

해질녘, 마을어귀 고목 주위로 도깨비(돗가비)불이 돌아다니며 
춤과악을 좋아하는돗가비들의 흥겨운군무와노래가 시작된다. 
몰래 만나 서로 사랑을 키워 온 항과 벽, 그러나 벽은 아버지가 정해준 
정혼자(루)에게 억지 시집가야 하고, 마침내 둘은 야반도주하기로 결심한다.
벽이의 정혼자 루 도령을 짝사랑하는 익(翼)이를 우연히 만난 벽이는 
그 사실을 말하게 되고, 익이는 벽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단념시키려고 
루에게 그들의 도망사실을 알리게 된다. 
그러나 일은 꼬이고 꼬여만 가고 루가, 벽이를 찾아나서는데... 
한편 바람둥이 도깨비 가비는 늘 처자들 뒤꽁무니만 쫓아다닌다. 
이에 화가 난 도깨비의 우두머리이자 가비의 아내 돗은 가비를 혼내주고
그 버릇을 고치려한다.
그녀의 아우인 실수투성이 빗자루 도깨비 두두리는 돗의 명을 받고 
독초향으로 사람을 홀린다는 들꽃, 은방울 꽃향기로 
가비와 항을 연심으로 홀린다. 
이때 떠돌이 약초꾼 아주미가 우연히 산길을 가다가 장난기가 발동한 
두두리에게 눈에 띄어 도깨비 씨름, 암퇘지 탈바가지 골탕에 걸려들고 만다. 
그러나 두두리의 실수로 홀릴 사람이 뒤바뀌고 
그믐밤 깊은 산속 사람과 도깨비, 한바탕 사랑의 소동이 벌어지는데....

 



원작은 드미트리어스, 라이산더, 허미아, 헬레나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요정들의 마법과 숲을 배경에 펼쳐낸다. 여기에 요정의 왕 오베론과 여왕 티타니아의 부부싸움이 곁들여진다. 중세 로망스, 중세 서사시, 고전 신화 등에서 빌려온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사랑의 고난과 맹목적인 사랑이라는 주제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요정들의 노래와 춤, 마법 등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아주 세밀하게 묘사한 셰익스피어의 대표 희극(comedy)이다. 양정웅은 원작의 기본 틀인 두 쌍의 연인과 요정세계의 갈등 관계는 그대로 두되 요정을 도깨비로 대체했다. 요정여왕 티타니아와 오베론은 도깨비여왕 가비가 바람둥이 남편 돗으로, 네 명의 연인은 동서남북의 별 이름에서 따온 항과 벽, 루와 익 두 쌍의 엇갈린 만남으로 재현했다. 또 원작에서는 아테나 요정왕 오베론의 계략으로 여왕 티타니아가 당나귀로 변한 직공 보톰과 사랑에 빠지는데, 성을 바꿔 바람피우는 가비를 아내 돛이 혼내주는 내용으로 바꾸었다. 바람피우는 것은 주로 남자의 일이었던 우리나라의 보편 정서에 맞게 바꾼 것이다.

 

 

 

이 작품의 으뜸으로 꼽히는 것은 배우의 표정과 대사가 지닌 리듬감이다. 인물의 대사와 코러스는 말 한마디에도 장단과 가락이 있는 춤사위와 같은 리듬을 선보인다. 속담이나 전설이 녹아든 우리 전통의 해학과 풍자가 살아있는 대사는 어디에서도 서양작품을 번안한 흔적을 찾기 힘들다. 재미가 끝은 아니다. 요정의 '사랑의 묘약'이 밝히는 '보이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간의 특성. 현실과 꿈의 구별이 무의미한 '일장춘몽' 같은 삶이라는 도교적 세계관까지 웃다보면 묘한 깨달음도 함께 얻는 작품이다.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밤의 꿈>은 한국 연극 사상 최초로 영국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공연되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 기념으로 기획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셰익스피어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글로브 극장에서 역시 한국 연극 사상 최초로 공연되기도 했다. 공연 당시 호주의 ‘sunday Mall'은 “지금까지 수많은 셰익스피어의 최고의 희곡들이 새로운 해석으로 공연됐지만, 이 공연만큼 가장 원작과 신비감을 살린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