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병종 '지붕 위에 오르기'

clint 2023. 11. 24. 07:46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이다.

한강 철교 부근에서 천체망원경을 보고 있는 천문가와 이 근처를 배회하는 실업자의 만남과 대화가 주를 이룬다. 이 천문가는 새벽시간에 천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배회하는 그 실업자를 지켜본 것이다. 아마도 천문가는 그가 머잖아 한강철교에서 투신할 것을 예감이라도 하듯이. 불편한 듯한 이 두사람의 대화잠시후에 사람을 찾는 한 사내가 등장하여 이들의 대화의 숨통을 티워 주는 역할은 한다. 그것은 그 사내가 자살한 한 남자의 비밀을 간직했는데 그 얘기를 듣고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어겼기에 그가 자살했을 거라는 강박감 때문이다. 그 사내가 가고 천문가와 실업자는 둘이 가지고 있는 얘기를 서로 털어 놓는다.

 

 

희곡 심사평 <김정옥·한상철>

 

이번에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21편이었다. 우리는 먼저 이들의 전반적인 특징으로서 다채로운 상상력과 다양한 극 형식을 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드라마라는 매우 까다롭고 구속적인 형식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어둡고 아픈 삶을 그 속에 무리 없이 용해시켜 보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것은 이번 응모작들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사람은 매미가 아니다』(김무림)는 대사 없는 두 사람의 설정이 흥미롭지만 주인공의 공허감과 외로움이 극적 설득력을 주지 못했다.

『인형과 신호등』(장원범)은 현대의 우화적인 발상은 좋으나 너무 단조롭고 이미지가 약하다.

『십자가 내려지다』(김병무)는 정서가 짙은 깔끔한 소품이지만 무대보다 오히려 라디오드라마로 더욱 좋겠다.

『어떤 출항』(김형우)은 극적 긴장, 세련된 화술이 돋보인다.

그러나 끝맺음이 진부하고 센티멘틀하다.

『자객』(성준기)은 공포의 분위기를 엮어 나가는 짜임새에 비해 그를 받쳐줄 주제가 모호했다.

『선녀와 나무꾼』(최인석)은 「아라발」을 연상케 하는 무구함과 공포를 자아내는 상황과 대사가 특이했던 반면 끝맺음이 성글지 못한 흠을 남겼다.

『수직환상』(김지림)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소재를 잘 다뤘지만 상상력이 단조롭고 보다 비정하지 못한 결함이 있었다.

최종심에 오른 김지림, 최인석, 성준기, 김병종 중에서 우리는

김병종의 『지붕위에 오르기』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 작품은 약간 지루한 듯한 점은 있으나 연극적 긴장을 잃지 않으면서 현실과 환상, 진실과 허구라는 철학적인 주제를 한 개인의 소외감을 바탕으로 매우 시적으로 구현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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