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진주 원작만화 '달려라 하니'

clint 2023. 11. 23. 13:36

 

 

1985, 중학교에 입학한 여학생이 있었다. 엄마는 계시지 않고 아빠는 그 멀다는 중동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 학교에 어떤 옷을 입고 갈까. 언제나 청바지 차림에 헐렁한 셔츠.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아주 짧게 존재했던 전면 교복자율화의 시대. 교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학생들의 자율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지만,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가난을 전시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어쨌든 이 가난한 여학생은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그 것만이 지금은 다른 세상에 계신 엄마의 품으로 뛰어들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오랫동안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 속에 간직되고 있는 이 시대의 고전 <달려라 하니>에 대한 주관적이고 간략한 소개다.

 

 

 

결코 다작(多作)을 하지 않았던 작가 이진주의 <달려라 하니>가 등장하자마자 '국민만화'가 된 이유는 매우 단순한 곳에 있다. 전통적인 한국 만화풍을 벗어났지만 결코 당시의 일본 만화풍을 그대로 전수 받은 것도 아닌 개성적인 작화. 그리고 당시의 시대상을 정확하게 포착한 리얼리티 뛰어난 설정 능력 등도 중요하지만 이 만화 최고의 매력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평범, 혹은 평범 이하의 사회적 위치에 있는 이가 노력해 최고가 된다는 스토리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렇게 명료한 스토리를 지닌 이야기는 수많은 만화와 영화. 그리고 소설 등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아이는 그저 승부에서 이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거나 라이벌에 대한 무한한 증오 때문에 달린 것이 아니다. 달리는 것으로 자신의 슬픈 현실을 잊고 새로운 꿈을 꾸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다른 비슷한 이야기들과 차별된다. 뿐만 아니라 그 소재와 내용이 시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달려라 하니>가 시작된 1985년은 거의 모든 국민들이 짓눌렸던 역사의 무게를 살짝 벗고 새로운 희망을 향해 걸어가던 시기다. 쿠데타와 시민항쟁이 정리되고 잊혀졌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이라는 거대한 행사를 앞두고 모두가 희망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프로야구와 축구 등 구기종목에 한정돼 있던 관심은 종합운동장의 트랙에도 분산됐다. 특히 1986년 임춘애가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육상종목 2관왕에 오르면서 '달리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큰 관심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전까지 스포츠나 어려운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인식됐던 순정만화, 혹은 소녀만화의 작화를 지니고 있는 이 작품은 어떤 의미로 '퓨전'이란 용어를 동원할 수 있다. 현실의 도피를 위한 만화가 아니라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과 같은 만화인 동시에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남녀간의 사랑이 있고 선생과 제자간의 애정이 있으며 친구들과의 우정과 가족간의 사랑까지 담겨있는 그야말로 '사랑 종합선물세트'로서의 기능도 충실한 작품이다. 월간지에 연재되어 인기를 끌었던 이 작품은 1988 TV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다. 육상이라는 스포츠를 소재로 한 이 애니메이션은 서울 올림픽과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이전까지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가득했던 한국의 TV화면에 순수 국산 캐릭터가 자리를 잡았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 엄마와의 추억을 지키기 위해 달리는 순수한 소녀의 분투기는 주인공 하니와 함께 성장하는 어린이들, 소년과 소녀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고 그들의 청소년기에 잊지 못할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달려라 하니>는 스핀오프 시리즈로 1989년에 만들어진 <천방지축 하니>와 함께 수차례 재방영됐고 한국 애니메이션을 일정 시간 이상 편성해야 하는 애니메이션 쿼터 덕분에 현재까지도 케이블 채널을 통해 주기적으로 재방영되고 있는 그야말로 이 시대의 '고전'인 것이다.

 

 

《달려라 하니》는 이진주가 그린 대한민국의 순정만화이다. 만화잡지 《보물섬》에 인기리에 연재되었으며, 1988 KBS가 만화영화로 제작한 초기 방송용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소녀 주인공 하니가 역경을 딛고 육상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시리즈물 만화영화로 1편격인 달려라 하니는 빛나리 중학교의 신입생 하니가 홍두깨 선생님의 배려와 지도로 육상선수로 성장하지만, 육상대회에서 접질린 다리를 뒤이어 벌어진 교통사고로 아킬레스건까지 손상받아 장거리 선수로 전향하는 이야기로 제작되었다.

그렇지만 TV시리즈의 엔딩과 원작인 보물섬에 연재된 엔딩은 전혀 다르다. TV시리즈에서는 건설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시력을 잃었던 아버지의 눈이 완치되어 하니가 마라톤을 뛰는 모습이 그려졌지만, 원작 보물섬에서는 아버지의 완치내용은 전혀 없다. 보물섬에는 "달려라 하니"의 후작으로 "날아라 하니"가 이어졌는데, 날아라 하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눈이 완치가 안 된 하니 아버지가 집에서 낙상으로 죽게 되는데, 하니는 아버지를 제때 돌봐드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유지애를 다시 미워하게 되고 두 사람의 갈등 위주로 전개가 된다. 아버지 죽음 이후로 하니 집안이 급격히 기울어져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 유지애와 하니는 하니가 오래전에 살던 아파트 옥상으로 이사가게 되지만, 하니가 유지애를 '엄마'라고 부르는 행복한 이야기로 끝나게 된다.

그리고 원래 만화에서 하니가 아닌 포니라는 제목으로 추진되었으나, 현대자동차에서 개발한 승용차인 포니를 홍보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하니로 결정되었다. 하니는 2008년에는 이진주 교수가 살고 있는 서울 강동구에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도 했다TV시리즈 달려라 하니는 KBS에서 방영되었는데 이선희가 주제가를 불렀다.

 

 

 

또 달려라! 하니야! - 원작자 이진주

까만 머리에 치켜 뜬 두 눈, 꼭 다문 입술을 가진 키 작은 아이, 하지만 뒷모습이 쓸쓸한 달리기를 잘하는 소녀를 한 명 그렸습니다. 이름을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때 나이 13살이었습니다.    "달려라 하니" 30대 초반의 만화가의 손끝에서 밤샘 끝에 탄생되어 만화잡지 보물섬에 처음으로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내 자식에게 보여주고 싶은, 내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들을 꿋꿋하고 당찬 하니를 통해서 그려냈습니다. 우리가 몸담은 따뜻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이며 진정한 사랑의 가치는 무엇인지를 그려보았습니다. 홍두깨 선생님, 고은애와 유지애 아줌마, 또 창수와 명화. 그리고 나애리 등을 통해서.... 많은 독자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연재분이 묶여서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KBS-TV에서 한국 최초로 시리즈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서 방영도 되고, 팬시 상품이 되어 많은 제품에도 등장하고, 게임도 만들어지고.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서울시뮤지컬단에서 그 하니 얘기를 뮤지컬로 만들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처음 악바리 하니를 그려 놓고 밤새 바라보던 설레임이 다시 되살아났습니다. 지면과 영상이 아닌 살아있는 하니가 눈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가슴의 응어리를 풀어낸다는 사실에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그동안 무언가 아쉽고 허전했던 느낌이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만화가가 진정 얘기 하고팠던 하니의 참모습이 재탄생되어 하나를 사랑했던 독자들과 하니를 처음 보는 관객들에게 비로소 완성된 몸과 마음을 보여주게 되었으니까요. 그런 하니의 나이는 지금도 13살입니다. 만화가의 나이는 오십줄을 넘었습니다. 그 만화가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내고 맙니다. "달려라 하니"를 그리던 그 시절로 돌아가서 잊고 있었던 초심을 되찾았던 것입니다. 하얀 원고지 위에 새로운 하니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또 달려라 하니야!"

이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