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백연희 '복날은 간다'

clint 2023. 10. 22. 08:48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상은 지겹거나,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한 사람들은 일상속에서 어떻게 현실을 버텨 나가는 힘을 찾고 사는가? 우리는 현실에 직면한 도시속의 현대인, 전형적인 30대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꿈꾸는 일상에서의 자유의 정체를 담백하고 유쾌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의 주인공 안대찬은 30대 초반의 보험회사 영업사원이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겪고 있는 여러 어려움들을 꿈으로써 잊으려 하지만, 결국 꿈은 현실의 또다른 반추일 뿐이다. 작품은 주인공 안대찬이 어느 찌는 듯한 복날 하루 동안에 꾼 6개의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첫번째 꿈은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 안대찬의 인생 파노라마이다. 안대찬이 겪었던 인생의 희로애락이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빠르고 경쾌하게 펼쳐진다. 프롤로그를 대신하며, 경쾌하고 신나는 노래와 짧은 장면들의 연속이다.

두번째 꿈은 로맨스를 꿈꾸며! 대찬이 꿈꾸는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엘레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만난 이상적인 여인과의 계속되는 운명적인 만남, 신파극의 유장한 어조와 흑백영화톤의 질감이다.

세번째 꿈은 성에 대한 콤플렉스와 모험, 복날 아침에 꾸는 개꿈이다. 정력과 뜻밖의 횡재를 바라는 안대찬이 애견광고를 보고 초래하는 황당한 사건을 다룬다.

네번째 꿈은 용감하고 싶다! 안대찬의 영웅이 되고자 하는 욕구를 보여준다. 일상속에서 자꾸만 위축되는 자신의 존재와 정의에 대한 갈구, 억제된 파괴 본능이 분출된 인질극이 벌어진다.

다섯 번째 꿈은 벗어 던지고 싶다! 사우나탕에서 일어나는 안대찬의 꿈과 삶의 이야기이다. 치열한 생존경쟁과 질서와 안정이 바탕이 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안대찬이 원하는 자유를 보여준다. 그러나 꿈에서 깨어난 후엔 옷 벗은 남자들의 현실적인 고민들이 보여진다.

여섯 번째 꿈은 내가 만일 죽는다면? 누구나 한번씩 꿈꾸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신의 장례식 장면을 직접 지켜보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들까? 평소에 몰랐던 주위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사후평가를 듣게 된다면 인간은 자신이 살아왔던 삶에 대해 어떤 반추를 하게 될까?

이 연극의 공간적 배경은 범위가 없다. 별다른 장치의 변화없이 안대찬의 집이나. 회사나, 거리로 변하고, 여기에서 다시 꿈속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무대는 3개의 변기가 의자로도 쓰이고 탁자로도 쓰이는, 단순한 공간구조 속에서 다양하고 자유로운 공간을 표출한다. 현실의 공간이 그러하듯이 꿈 속에서도 안대찬은 좌절하기도 하고 행운에 감격하기도 하지만 결국 기나긴 꿈들을 통하여 현실과 자신과의 화해의 고리를 찾게 된다.

 

 

작가의 글 : 꿈을 꾼다는 것- 백연희

이 작품은 작년 8월에 공연된 극단의 기획시리즈 유쾌한 연극 <꿈꾸는 남자>를 모태로 하여, 전체 출연진의 의견을 모아 각 장면을 수정하고 첨가하기도 하면서 만들어졌다. <꿈꾸는 남자>의 틀거리는 30대 초반의 평범한 샐러리맨이 직장과 가정에서 받는 과중한 책임과 채근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꾸는 다양한 꿈들을 연결한 것이다. 임신한 아내가 기형아를 낳는 악몽을 꾸며 아침을 맞고 늦게 출근하여 지하철에서 사랑에 관한 꿈을 꾸다가 종착역까지 가게 되어 처음으로 그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로운 시간을 만들게 된다. 회사로 가지 않고 거지의 자유로운 생활에 동화되는 몽상을 하다가, 영화관에 가서 자신의 아내를 인질로 삼은 흉악범과 결투하는 영웅의 꿈을 꾸기도 하고, 나오는 길에 넘어져 잠깐 기절한 동안에는 자신의 장례식을 꿈꾼다. 그러나 죽은 후에도 그의 문제는 풀리지 않아 결국 밤이 되면 술에 만취하여 아내의 잔소리를 듣다가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번에 수정하는 과정에서도 꿈으로 이어지는 큰 틀거리와 하루 동안에 발생한 사건들이라는 설정은 그대로 고수하였다. 다만 주인공 안대찬이 직면한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어 현실장면을 부분부분 삽입하였고, 사건 중심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몇 개의 장면을 바꾸었다. 주제면에서는 안대찬이 현실과 화해할 수 있는 매개고리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공연시기가 여름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사건이 발생한 날을 복날로 잡았다. (참고로 복날장면은 임상태씨의 몸보신씨의 어느 伏날>이라는 시나리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한마디로 안대찬은 자유를 꿈꾸는 남자다. 그런데 그가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자라오면서 형성된 성품과 현사회구조와의 부조화에 있으므로, 그가 꾸는 꿈은 그의 성격과 연관된 몇 개의 콤플렉스를 반영한다. 또한 그의 주변을 형성하는 인물들 역시 그가 꾸는 꿈의 성질과 연관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번 공연이 보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공감과 위안을 드릴 수 있다면 공연을 준비하면서 참가자들이 꾸었던 각자의 꿈들도 다음 작품에선 보다 풍요로운 모습으로 모아질 수 있을 것이다.

 

백연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