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정복근 '산넘어 고개넘어'

clint 2023. 12. 3. 08:10

 

 

줄거리
산 속 주막에 누구든지 살기 좋다는 남촌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남촌으로 가려면 열두 고개가 있는 산을 넘어야 하는데 그 산 속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여우가 있다는 소문이 있다. 하지만 10명이 함께 가면 무사히 넘을 수 있다는 소리에 그들은 일행이 다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반년이 넘도록 기다렸는 데도 10명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9명의 사람들은 주막에서 일하는 영감을 데리고 출발하기로 한다. 그 영감은 예전에 그 산을 넘다가 정신이 이상해진 사람이다. 그래서 쉽게 동행하려고 하지 않지만 사람들의 애걸과 협박에 못 이겨 따라가게 된다. 그들은 다섯째 고개까지는 그런 대로 무사히 넘어간다. 다만 짐승의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오고 찢어진 옷자락들이 널려 있어 그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할뿐이다. 그때, 갑자기 바위들이 굴러 내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겨우 진정이 되자 사람들은 일행 중 맨 뒤에서 오던 두 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함께 있던 사람들은 그 둘이 여우에게 잡아 먹혔다고 생각한다. 겁이 났지만 남은 여덟 명은 계속해서 산을 넘는다. 잠시 후, 이번에는 안개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안개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거린다. 그리고 안개가 서서히 걷히자 3명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애타게 없어진 이들의 이름을 불러 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자 남은 사람들은 나머지 4고개를 넘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는 길이 안전하리라는 보장 또한 없기 때문에 그들은 계속 산을 넘기로 한다. 다시 산행을 시작하자 이번에는 눈이 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지럽게 내리는 눈발 속에서 세 사람이 다시 없어진다. 여우의 울음소리는 무섭게 들리고 여인의 비명 소리만이 산 속을 가득 채울 뿐이다. 이제 남은 사람은 단 두 사람이다. 고개는 하나 밖에 남질 않았고 남은 사람 중에는 영감도 포함되어 있다. 영감은 무언가를 아는 듯한데 쉽게 말해 주지 않고 점점 심하게 공포에 떤다. 남은 한 사람이 이 곳에서 살아 나갈 방법을 묻자 영감은 겁에 질려 간신히 말을 한다. 마지막 고개에는 천년 묵은 구미호가 사는데 그 곳을 지나가려면 신체의 일부를 떼어 주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까지 말하던 영감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한다. 산 넘어 남촌이 없다면 그래도 신체를 떼어 줄 수 있냐는 것이다. 동행하던 사람은 산을 넘기만 하면 당연히 남촌이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지 그 소문이 설마 거짓이라고는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영감의 말을 듣고 그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감을 혼자 내버려 둔 채 사라진다. 여태껏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던 9명의 사람들은 전부 다시 주막에 모여 있다. 도중에 겁이 나서 살며시 돌아 온 것이다. 그러나 영감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까지 영감과 함께 있던 사람이 영감처럼 정신이 이상해져서 헛소리만을 할 뿐이다.

 

 

 

 

 

 

극작가(劇作家) 정복근(鄭福根)씨는 7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막극<여우>로 당선돼 무대현장과 긴밀한 작업을 해온 작가다. 지금까지 그의 공연 작품은 단막극<자살나무>연극제 참가작품 <태풍><산넘어 고개넘어> <현대묵시록> <검은새>가 있고 서울과 지방 일반극단과 대학극에서 공연한 <도깨비재판>이 있다. <한국연극>에 발표하고 아직 무대에 오르지 않은<버스를 타고> <독배>등이 있다. 그밖에 서울인형극회를 위해 쓴 인형극 <햇님달님>과 서정자물이랑발레단을 위해 쓴 발레대본<사군자(四君子)>가 있다. 이들 작품들은 작가 정복근이 우리 무대에 등장한 후 그가 밖에 보여준 모습들이다. 그의 데뷔작 <여우>는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전세권 연출로 무대에 올랐다. 텔레비젼연기자 한진희가 첫 연극으로 주역을 맡았었다. <여우>의 주인공은 나약한 한 사람의 소시민이다. 그가 처한 상황은 짐승같은 인간(人間)들이 가득찬 냉혹한 현실이다. 작가 정복근은 동물원에서 차례로 동물들이 도망쳐 사라지고 그 동물들이 사람이 돼서 사람인 주인공을 오히려 도망친 동물로 몰아부친다는 플롯을 만들어냈다. 데뷔작에서 이 작가가 보여준 관심은 사회와 개인 주변환경과 개체(個體)의 갈등이고 그가 보여준 재능은 각 인물들의 성격창조의 능력 - 적어도 그 가능성이었다. 극단 가교가 공연한 <자살나무>는 주변과의 투쟁에서 허물어진 개체(個體)의 체념이 나온다. 주인공들의 절망이나 체념같은 것이 어떤 저항처럼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부각시켰다. '태풍'은 바닷가 마을의 둑을 쌓는 사람들의 얘기다. 극단 가교가 대한민국연극제에 들고 나서 그해 농민문학상을 탄 작품이다. 그로서는 첫 장막극이었고 연출가 이승규씨와의 첫 작업이었다. 이 작품은 그 소재가 당시 여러방면으로 소개되던 새마을 성공 사례같은데 가 있어서 연극무대 비평에서는 간단히 치워져 버렸지만 새마을 연극이라는 식으로 그냥 밀어둘 수 없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둑을 쌓아 마을의 미래를 열어야 한다는 주인공의 의지가 줄거리를 이루면서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人物)들의 성격(性格)을 상당히 단단하게 구축해낸 작품이었다. 박인환, 김소야, 김진태, 최주봉등 당시 가교의 중요맴버들이 총출연한 이 무대에서 이 인물들은 상당히 선명하게 살아남았다. 그의 주인공들은 상황에 의해 태어나지만 그 상황속에서 살아온 저마다의 이력을 무대위에 들고 나온다. 그들은 이미 무대밖의 일생을 살아왔고 어느날 그 무대 그 상황에 나와 얘기를 하는 것이다. 첫장막극에 첫장막극에서 극작가로서 그가 보여준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러한 성격창조에 대한 관심과 능력이었다. 우리 무대의 여성극작가들은 혼자서 작품을 쓰는 경우가 많다. 무대와 연결되기가 힘들다. 여성극작가들은 한두편 공연과 연결을 갖고 그만 주저앉아 버리거나 혼자서 작품을 써서 책으로 발표를 하거나 묻어두는 경우가 많다. 정복근씨의 경우는 비교적 공연현장과 가깝다. 지금까지 연극제에 4편이나 작품을 낸 여성작가는 그 혼자뿐이고 10편의 무대를 갖고 있는 여성작가도 그 한사람 뿐이다. 물론 번역극쪽에는 박영희, 신정옥씨가 있지만 창작무대의 여성작가의 작품은 많지 않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가교에서 김영열 연출로 만든 < 산넘어 고개넘어>는 주제와 상황이 강조된 작품이었다. 여우 고개 전설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희망과 좌절 배반의 사슬을 엮어낸 것이다. 극단 뿌리가 김도훈 연출로 만든 <현대 묵시록>은 소문에 의한 재판, 공포에 의한 범죄를 주제로 현대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들춰내 얘기했다. 극단 민예의 원재식 신선소극장의 서현석등 젊은 연출가들이 관심을 보였고 지방무대 대학극중에도 등장했던 <도깨비재판>은 <현대묵시록>과 같은 주제이면서 훨씬 사람의 얘기가 강조된 작품이었다. 쥐를 잡기 위해 기르는 고양이가 너무나 쥐를 잘 잡으면서 점점 오만하고 무서운 위협이 된다. 부부는 고양이의 위협앞에서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고 스스로 죄를 자백하며 무너진다. <현대묵시록>에 새가 되어 가는 여인(女人)이나<도깨비재판>의 남편과 아내 이들의 삶에 있는 어떤 아픔같은 것이 상당히 충격적으로 등장한다.

하나의 작품소에서 가끔씩 들어나는 이 아픔의 기억들은 이 작가의 또 하나의 강점이기도 하다. 이 강점은 때로는 주제에 간섭해 올 정도로 진하게 작용할 때도 있다. 한국연극에 발표된<독배>나 극단 성좌의 권오일 연출로 무대에 오른<검은새>서정지물이랑발레단의 무용제 참가 작품이었던 발레대본<사군자(四君子)>그리고 이번 미추가 손진책 연출로 만드는<지킴이>는 이 작가의 최근의 관심을 드러낸다.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속에 아픔을 겪는 사람들 그 아픔과 싸우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가 다뤄온 주제였다면 이들 최근작은 우리의 옹졸한 현실을 긍정적인 것으로 만들어 보고싶은 작가의 소망의 눈으로 본 역사라는 명제(命題)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에서 출발해 '나와 주변'이 됐고 다시 '우리와 우리의 세상'으로 확대되다가 이제 '우리는 무엇이고 우리의 세상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작가의 탐구가 시작된 것이다. 그의 주인공들은 타협을 하지 않는다. 아픔을 피하지 않고 겪었으며 그 아픔을 철저하게 누리며 아프지 않아야 한다고 외치며 주저앉았다. 그러한 주인공들의 성격에 역사가 얹혀지면서 독배의 여주인공이 태어났고 검은새의 이징옥과 분홍이 태어났으며 <지킴이>의 김종과 손부가 만들어진 것이다. <사군자(四君子)>에서 그가 조선조 선비정신을 매(梅)-난(蘭)-국(菊)-죽(竹)으로 끌어 소년-청년-장년-노년으로 이상-수련-출사-전개로 전개해낸 것도 무용이라는 표현에 의해 같은 의식을 펼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킴이>는 이러한 그의 작가로서의 모색이 결정(結晶)돼서 나온 가장 최근의 수확이다. 이 작가는 완성(完成)의 개념이 색다르다. 써놓고 밀어두는 성격이 아니다. 끊임없이 다시 고쳐 쓰고 매만진다.<태풍>공연때 막이 오르기까지 그는 무대현장에서 13번을 다시 썼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킴이>의 완성(完成)을 위해 그는 애를 썼다. 어쩌면 그의 작품세계가 한동안 바로 이<지킴이>를 완성시키는 일이 될 지도 모른다. 그는<지킴이>계속 지켜나가며 그의 작가로서의 새 지평을 열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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