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오끼나와 동양연극제 참가
"이름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
金正鈺(김정옥) 作(작)
문예회관대극장
이 작품은 자유극장 집단 창작극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김정옥은 일련의 이 작품군들을 통하여 특히 해설역을 겸하는 광대를 등장시켜 현재 우리의 시각으로 맞추어서
역사의 재조명과 당시의 실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보여준다..
'이 이름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는 조선조 말을 배경으로 한다.
광대들의 지닌 비극적 깊이 위에서 한판 벌리고 놀아지는 광대들의 삶...
대원군과 민비. 고종.. 당시 최 상층 권력자의 지배아래 무력해진 서민의 삶, 죽음의 문제등이
광대를 통한 현대 연기자들의 의식속에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작가 창작노트
나의 연극 인생은 허풍을 떨고 허세를 부리는 데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는데, 아마도 연극은 멋대로 허장성세를 부릴 수 있다는 데에 매력이 있는지 모른다. 종래의 연극적 틀, 기성의 형식을 깨는 새로운 연극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연극을 만드는 우리들 자신과 관객들을 위해서 허구한 구호를 내세워야 했다. 연극이란 연출자 혼자 멋대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연출자의 뜻대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연기자와 뒷스태프, 무대미술, 조명 등이 대본을 기본으로 해서 공동으로 집단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비슷한 창조적 방향을 잡을 필요가 있고 이탈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 자신을 위해 구호가 필요한 것이다. 만드는 사람만이 아니라 관객을 위해서도 구호는 필요했다. 관객은 새로움을 기대하면서도 새로운 연극을 대할 때 일단 경계한다. 새로우면서도 뭔가 의미 있는 창조라는 것을 내세워야 한다. 어떻든 우리는 1978년<무엇이 될꼬하니>를 연습하면서 마치 데모를 하는 사람들처럼 구호를 외치고 내세울 필요가 생긴 것이다. 사실 우리는<무엇이 될꼬하니>를 연습하면서 그 제목처럼 우리의 연극이 무엇이 될 것인지 불안했던 것이다. 종래의 틀과 형식을 깨고 자유로워지자, 극장의 형식이 주는 구속을 거부하고 희곡이 주는 구속마저도 거부하자, 그러나 자유를 원하고 새로움을 추구할 때 우리는 더욱 불안해지고 더욱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불안을 달래고 관객을 속이거나 세뇌하기 위해서 구호가 필요해진 것이다.
처음에 우리가 내세운 구호는 다음 다섯 가지 어설픈 구호였다.
1. 이번 작품은 워크숍 형식으로 연습한다.
2. 연습 과정에서 제기되는 발언들을 기록해둔다.
3. 가장 연극적인 연극을 만들도록 연구한다.
4. 이 작품은 작가, 연기자와 연출, 스태프들이 합동으로 만드는 집단창조이다.
5. 반사극(反史劇)(실험적이며 미래적인)이다.
6. 연기자들은 관객과의 새로운 공간, 시간 접근을 통해 연극적 체험을 한다.
광대’를 화두로 한 이 작품에는, 국악인들이 출연을 하는데,
지금은 인간문화재인 명창 안숙선, 판소리 인간문화재 고 김소희 명창의 딸인 박윤초,
그리고 진도씻김굿의 인간문화재였던 고 박병천 선생이 출연을 합니다.
영화에서는 배우들이 모두 진도에 내려가서 진도씻김굿을 보는 장면도 있고,
그리고 진도 다시래기의 한 장면은 유인촌(당달봉사 역), 이혜영, 박 웅 세 사람이 재현을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전체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윤복희.
그는 마치 창극으로 치면 도창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죠. 연극<이름 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가
영화<바람 부는 날에도 꽃은 피고>의 뿌리가 되는 셈인데, 이 연극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 윤복희, 그는 여기서 ‘광대’를 얘기합니다. 조선시대의 광대와 대한민국의 배우 등을 오가면서,
각 시대 속의 배우, 곧 광대는 어떤 역할을 했고, 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얘기합니다.
연출가 김정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극단 자유다. 1966년 이병복과 함께 극단 자유를 창단하면서 <따라지의 향연>(스칼페타 작, 명동국립극장)을 스스로 연출한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극단 자유를 벗어나 연출을 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연출가 김정옥과 극단 자유의 역사는 한 쌍의 수레바퀴처럼 50년 가까이를 함께 굴러오고 있다.
극단 자유를 창단할 당시 김정옥은 <한꺼번에 두 주인을>,<아가씨 길들이기>,<마리우스>,<피크닉 작전>등 주로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의 외국 고전 희극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한국 사람한테 부족한 것이 바로 희극정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희극의 빠른 템포를 우리나라 연극에 도입하기 위해 많은 힘을 쏟았다. 그 뒤 서구의 부조리극을 선보이다가 1978년 대한민국연극제 참가작품이었던 <무엇이 될고하니>를 기점으로 이른바 집단창작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김정옥은 이 작품을 통해 집단창조와 총체적 연극의 이상을 내세우고 생과 죽음의 주제를 극적으로 부조하면서 서구 연극과 우리의 연극적 유산의 만남 속에서, 단순한 접목이 아니라 오히려 충돌 속에서 이루어지는 오늘의 새로운 연극, 우리의 연극으로서의 제3의 연극을 표방하고 나설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차피 연극의 중심은 배우인데, 그 배우들에게 서양의 틀을 씌우는 것의 한계를 동시에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구의 연극과 우리의 전통연극이 만나고 부딪치고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새로운 형태의 한국연극이 빚어질 수 있으리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판소리, 탈춤을 과감하게 연극에 끌어들인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무엇이 될고하니>,<달맞이꽃>,<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이름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수탉이 안울면 암탉이라도>,<피의 결혼>등이다. 초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희극에서 1970년 한국의 전통설화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과 그 후 총체연극이란 이름 아래 제작된 그의 연출기법은 연극에 관한 다양한 관심과 연출가로서 겪어야 했던 혼돈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러한 희곡 선택과 연출경향은 그가 국제극예술협회 제3세계 연극분과위원장을 맡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른바 ‘제3세계 연극운동’ 혹은 ‘뉴시어터 운동’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는 서구연극과 다른 독자성을 추구하기 위해 제3세계의 개성을 찾아내고, 문화의 주체성을 찾자는 자생적인 움직임을 강조한다. 이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충돌함으로써 새로운 연극을 찾아내어야 한다는 그의 연극관으로 발전한다.
극단 자유는 1980년에 정력적으로 해외 순회공연을 추진하기도 한다. 일본,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튀니지 등에 여섯 차례에 걸쳐 순회공연을 가졌으며, 프랑스의 렌느연극제, 낭시 세계연극제, 칼카존연극제, 소피아 앙티포리스연극제, 스페인 시저스연극제, 바르셀로나 연극제, 마라가 연극제, 튀니지 하마메트연극제, 일본의 오키나와 동양연극제 등에 참가했다. 그러나 극단 자유가 치른 외국 공연보다 그의 이름은 더 국제적이다. 국제극예술협회(ITI) 한국본부 회장직을 10년 넘게 맡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본부 회장을 지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1997년에는 국제극예술협회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하여 외국의 우수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한 구석에서 광대들 꼭두각시놀이를 하고 있다. 관객들 틈에서 이것을 지켜보던 대원군 일행 심기가 사나와진다. 입구에서 광대들의 점호, 늦게 달려온 두 광대로 인해 종아리를 맞는다. 북을 치고 노래를 하며 무대로 올라간 광대들. 자리를 잡고 자기소개를 마친 뒤 다음판 준비를 한다. 첫마당은 그들 자신의 얘기 "광대의 죽음. 한 광대 조용히 노래한다. “이름 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
대원군을 고축하는 장님 무당의 중. 이를 목격한 대원군의 부하 급히 대원군에 알렸으나 잡혀온 무당을 벌을 주는 대신 융숭히 대접해서 돌려보내는 대원군. 구사일생한 무당. 민비에게 사실대로 고하나 도리어 대원군에게 매수당했다고 짐작한 민비는 그의 처형을 명한다. 왜 진실대로 고했을까? 거짓말에 익숙한 광대가 아니더냐?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고소하며 회자수에게 목숨을 맡긴 장님 무당. 일본인의 손에 왕비를 잃은 고종. 아버지 대원군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한탄한다. "꼭두각시 임금"이라고. 꼭두각시 왕과 어릿광대 대감을 힐책하며 광대의 본질을 항변하는 그들.
동대문을 빠져나가는 민비의 최후, 이조 오백 년에 황혼이 깃들었는가!
아버지에게 가면을 물려받은 광대 삼동이와 연인 삼순이. 고종과 민비가 되어본다.
산중에서 두 무뢰한에게 강간을 당할 운명에 처해 무당의 딸. 다행히 지나치든 중의 구원을 받는다. 중은 다름 아닌 사당패의 모가비. 관의 눈을 피해 변장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무당의 딸은 사당패에 끼게 된다.
고리와 북의 연습. 다음은 슬픈 사람들을 웃기는 놀이" 웃음을 잃은 무당 딸을 위해서 모가비는 “다시래기"를 제안한다. (다시래기 : 상주를 웃기기 위해 이웃 사람들이 벌이는 진도지방의 굿거리) 드디어 웃음을 터뜨린 무당 딸, 그러나 웃음에도 진실이 있고 거짓이 있지 않은가! 사당패들 억울하게 죽어간 부모 형제들의 얘기를 털어놓는다.
마님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쫒겨 난 어느 광대의 에미는 주막에서 목을 맸다.
춤의 명인이었던 어느 광대 애비의 이야기. 민비의 어전에서 춤을 춘다. 민비의 뜨거운 시선. 그는 민비의 명을 받들어 저자를 버리기를 맹세하였으나 결과는 거꾸로였다. 왕비의 명을 받들어 처자를 버린 부정한 남편으로서 혼자 낙도로 추방당한다. 이 세상에 한을 남기고 간 광대들의 부모 형제들을 위해서 일동 상여놀이를 한다.
다음 판 광대의 무덤", 광대는 죽어서도 묘가 없다. 노변에서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 아니더냐! 흙 위에 징표로 돌을 놓아줄 뿐이다. 행로에 평안을 빌며 나 그네도 돌을 놓고 간다. 어느 날 돌의 무덤이 되는 거다. 돌의 무덤 그것은 광대의 무덤. 광대의 무덤은 관객의 마음 한구석이 아니겠는가!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정옥 '바람... 타오르는 불길' (1) | 2017.02.08 |
---|---|
김정옥 '수탉이 안 울면 암탉이라도' (1) | 2017.02.08 |
강월도 작 '주인과 그의 착한 세입자들' (문의 희비극) (1) | 2017.02.08 |
강월도 '어쩐지 돌연변이(변태)' (1) | 2017.02.08 |
윤조병 '도요새와 들오리' (1) | 2017.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