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自由(자유) 제 147 회 정기공연
바람... 타오르는 불길
金 正 鈺(김정옥) 作(작). 演出(연출)
1994. 4. 20 - 26 문예회관 대극장
1994. 5. 12 - 18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자유극장의<바람, 타오르는 불길>(1994.5.12-18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은 뮤지컬 시대에 또 하나의 뮤지컬 양식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이다. 브로드웨이식 뮤지컬에 식상한 관객들, 창극·판소리 스타일만으로는 아무래도 시대퇴행적이라고 여기는 관객들을 위해 자유극장은 그들 나름대로 문제해결을 도모한다. 이 연극은 자유극장식 내지는 연출가 김정옥 스타일의 집단창작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그것은 약간은 엉성하고 약간은 기발하고 또 약간은 전통연희적이며 약간은 현대적이다.
이런 조건들을 다 채우면 토털 시어터이자 제3세계 연극이 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춤 대신에 짓거리, 혹은 움직임의 동선(動線)창출에 재미(在美) 연극인 장두이를 내세운 것이 특색이다. 그의 비중을 감안한 듯한 ‘사내’ 역의 주역 노릇과 다양한 악기를 이용한 소리와 효과음 조성이 별나 보인다. 피아노(김소연) 반주가 끝까지 따라가는 음악(이정선 작·편곡)은 합창곡, 이중창, 솔로 등 모두 15곡이다.
자유극장의 비슷한 다른 작품들(<무엇이 될고 하니><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 등이 민속·설화적이라서 연희전승의 현대화를 위해 대중가요를 많이 삽입한 데 비하여<바람…>에서는 중간에 말썽 많던 누드 작품<헤어>연습 장면에 귀에 익은 팝뮤직이 현대 감각을 두드러지게 한다. 1·3부는 한국의 민속연희, 그리고 2부가<헤어>연습 장면으로 한국과 서구, 과거와 현재를 어울리게 한다. 이 어울림에는 어떤 이론이나 문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연출과 집단창작 형식을 취하는 자유극장의 색깔이 이론이나 문법에 앞서기 때문이다.
아주 묘하게 느낀 것은<헤어>연습 장면에 반응하는 관객들의 자세이다. 1·3부는 어쩌면 민중적인 고된 삶의 반영일 뿐이다. 상두꾼들이 권세가의 딸을 납치해서 잡혀 있는 동료와 인질교환을 꾀한다. 그 딸은 감시 역의 인두꾼인 한 사내를 사랑하게 되고 아버지 권세가에게로 돌아와 잡혀 있는 상두꾼을 풀어달라고 간청하지만 허사로 끝난다. 그 사내는 인두꾼 사회에서 추방되어 광대의 삶을 걷는다.
그런 이야기 가운데 끼어든<헤어>연습 장면은 분위기 아주 상반되는데 민속설화적 설정에서 진지하다 못해 가라앉아 있기조차 했던 관객들이<헤어>의 리듬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관객들이 록 뮤지컬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일까. 그만큼 창작뮤지컬의 예술상의 설정은 멀다는 의미일까. 삽입곡을 들려주기 위하여 딸 역, 사내 역을 교체해 줄거리 진행에 혼신이 생긴다. 느닷없는 논객·평론가와 기자의 삽입도 너무 인위적이다. 그러나 간간이 터져 나오는 김정옥의 시적 경구는 매력적이다. 바람 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와 브로드웨이 뮤지컬「헤어」를 1부와 2부로 복합시켜서 광대가 되는 민중으로 끝을 맺는다는 이야기처럼, 한국 전통과 서구 뮤지컬의 본격적인 충돌의 예시로 기대를 모았다.
이 작품도 극단 '자유'의 특유의 작품 구성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단지 이번에는 전통 이미지와 소리의 재현보다는 전통과 서구의 충돌에 주력하여 우리식 음악극을 모색하였다. 산만하게 이어지는 스토리 라인도 여전했으며 오히려 더욱 논리적인 연결이 어려웠다. 연결할 수 있는 이야기 모티브는 납치된 양반의 딸과 납치범인 한 상두꾼 사내와의 사랑으로, 여인은 사내 동료의 석방을 약속하고 설득하여 집으로 돌아오지만 끝내 자신의 아버지 양반을 설득하지 못하여 그는 처형된다. 여인은 절망하고 사내는 동료 상두꾼들에게 죽음을 당해 광대로 다시 태어난다. 이 중간에 80년대 초 서구 뮤지컬 「헤어」공연이 금지되던 상황이 삽입된다. 양반의 폭력과 권력의 폭력은 아무런 설명 없이 대비된다.
이렇듯이 산만하면서도 다분히 멜로드라마적인 이야기가 감동으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주제를 향한 집요한 상징이나 이미지가 필요하다. 종래 극단 자유의 공연에서도 이야기보다는 무대의 극장성이 공연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작품을 미학적인 수준으로 이끌어 올렸었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우선 시각적으로 너무 단조로웠다. 「바람 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의 1부와「헤어」의 2부는 동·서의 대조적인 이미지의 확연한 변화로 작품의 리듬을 바꾸어 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었는데, 적어도 시각적으로 이를 가시화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별 변화 없는 무대장치나 의상들도 지극히 상식의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특별한 이미지의 구현(마지막 장면의 가면들의 등장 정도를 꼽겠다)도 없어서 종래 극단 자유가 보여주었던 시각적 이미지의 미학과 통일을 찾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음악성이 작품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가? 뮤지컬을 표방한 만큼 음악성과 청각적 이미지의 부각은 대단히 중요할 것이다. 분명 음악에 주력한 노력은 느낄 수 있었다. 피아노와 대금이 함께 연주되고, 우리 소리와 서구식 주제가가 어우러진다. 이러한 충돌은 분명 우리 식이며 현대적인 음악극 정립을 위하여 필수적인 실험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하겠다. 그러나 이번 실험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나는 의문으로 남았다. 개개인의 노래가 비교적 잘 전달되었던 것은 극단 자유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하게 하였지만 듀엣이나 합창의 전체적인 조화의 앙상블이 부족했다고 느껴졌다. 또한 기억에 남는 아리아나 음악적 감동을 느끼기 어려웠음은 음악성이 궁극적으로 작품에 통일을 부여하지 못했음을 입증하고 있다고도 하겠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부재를 강조하려고 한 인물의 여러 배우가 부분적으로 연기한 발상은 독특했으나 과연 효과적이었나는 의문이었다. 가뜩이나 산만한 이야기를 더욱 산만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여기에 무대의 시청각적 극장성마저 집요하게 한 구심을 이루지 못했을 때, 작품의 주제는 불분명하게 되며 감동은 더욱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극단 자유 공연의 핵심을 이루던 세련된 전통과 그 현대적 이미지들이 분명 이번 작품에서는 후퇴하여 통일성의 결여가 더욱 드러난 느낌이다.
그러나 "우리 작업을 통해서 다함께 우리의 뮤지컬의 냄새와 색깔을 모색해 보고 싶다"는 극단 대표 이병복의 말은 명성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실험을 모색하는 젊은 극단 자유를 느끼게 한다. 비록 대단히 성공적이지는 못했으나(한술 밥에 배부르랴?), 항시 극계를 앞서가며 문제의 방향을 제시하던 극단 자유답게 오늘날 연극의 중요한 한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바람 타오르는 불길」은 평가되어야 하겠다.
작가 김정옥 대담
판소리가 200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될 때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그의 개인적 이력을 감안하면 판소리를 연극에 끌어들인 것은 고개가 끄덕여 지는 일. 하지만 김정옥 연극에서 힙합이라니 파격이 아닐 수 없다.
"판소리와 랩은 서로 상통하는 면이 있어요. 둘 다 음악적 리듬에 맞춰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기도 하고요. 랩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힙합을 끌어들임으로써 어려운 시절을 겪은 사람들의 향수만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로 하여금 현재 사회에 관심을 갖고,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생각하게끔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연극에 음악을 적극적으로 집어넣는 것은 극단 자유의 오랜 전통이다. 1980년대의 '무엇이 될고 하니'와 1990년대의 '바람 타오르는 불길' 등 당시로선 접하기 어려웠던 음악극을 여러 편 선보였다.
"연극적 감동을 강화하는 역할을 해서 그런지 관객은 음악을 좋아해요. 우리 극단은 1980년대부터 연기는 기본이요, 노래도 하고, 춤도 추는 '토털 연기자'를 지향했습니다."
이어 극단 자유의 모토는 '우리끼리 하는 연극'이 아니라 '관객이 찾아오는 연극'이라면서 "이런 자세로 연극을 하다보니 40년 동안 흑자는 못냈어도, 적자는 내지 않았다"고 껄껄 웃었다. 하지만 현재 대학로를 휩쓸고 있는 뮤지컬 열풍은 못마땅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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