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무대는 한 주택의 거실이다. 나이든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손자가 등장한다. 연극은 도입에 발톱을 깎고 있는 나이든 아버지 앞에 중년의 아들이 등장한다. 아들은 택시기사를 하며, 자주 노름을 해 빚이 많은 것으로 설정이 되고, 집까지 저당 잡힌 것으로 소개가 된다. 당연히 아들을 나무라는 아버지의 모습이 여느 다른 집과 다를 바 없이 펼쳐진다. 손자는 택배를 한다. 그런데 손자에게 수취인 불명의 배달물이 도착한다. 거기에는 갓난아기가 들어 있다. 당연히 손자는 아기를 집으로 데려온다. 어머니…. 비록 암 투병을 하지만, 자애롭기가 부처님 어머니 같고 반백의 모습 또한 그렇기 때문인지, 어머니는 아기를 직접 기르겠노라 한다. 그러나 집 형편이 그러하지를 못하니, 가족의 반대로 결국 보육시설로 보낸다는 설정이다. 아버지와 아들간의 불화, 아들과 손자라고 화목할 리가 없다. 그러나 그러한 불화는 가족 사랑이라는 범주 안에서 펼쳐지기에 각기의 다툼은 불쾌하거나 미워보이지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 손자간의 갈등 속에서 병든 어머니의 온정이 새봄의 훈풍처럼 관객에게 스며든다. 대단원에서 친지의 장례식에를 가는 상복차림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기를 소중히 안고 함께 나가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난다.
심사평
올해 희곡 부문 응모작 편수는 모두 161편이다. N포 세대가 처한 현실, 지진과 싱크홀 등 재난 상황 설정, 뷔히너·브레히트·체호프·베케트 등 기존 작품에서 모티프를 가져오거나 신화의 재창작물, 팩션 사극 스토리들, 십대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 등 다양함으로 치자면 으뜸이었다. 이 가운데 마지막까지 견주어 읽은 작품은 두 편이다.
동물원’은 신춘문예에 맞춤한 내용과 형식을 갖추고 있다. 병원 진료실을 극중 공간으로 두고 4인 등장인물을 통해 대한민국 현실을 진단한다. ‘저항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동물이 되어 간다는 우화적 상황을 점입가경 희극 구조로 담아내고 있으며 담긴 메시지는 간명하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그 의미와 해석은 어떻게 증폭될지를 기대하기보다는 읽는 것만으로도 말끔히 충족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당선작 ‘오늘만 같지 않기를’은 대학로 소극장에서 간간이 볼 수 있는 가족 서사의 반복일지도 모르겠다. 새롭지 않은 전형적인 가족 드라마? 그러나 인물 간의 갈등과 충돌이 살아 있고, 해학적인 관점과 대사에 담긴 위트가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이즈음의 탄핵 정국 속에서 목격하는 많은 파행과 인간성에 대한 회의 때문인지 일상을 유지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윤리 감각과 인정, 삶을 지켜 내는 온기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생활에 발붙인 대사와 살아 있는 캐릭터 창조는 극작가가 되려는 이의 소중한 자산이다. 글 쓰는 삶의 정처로 연극 동네에 들어선 것을, 무대라는 터전의 새 입주민이 된 것을 축하한다.
- 심사위원 장성희 연극평론가, 고연옥 극작가
당선 소감 - 조현주(1978년 대전 출생.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살아오면서 결코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이만희 작가의 ‘피고지고 피고지고’ 속 천축의 마지막 독백, 마샤 노먼의 ‘잘자요 엄마’에서 울려 퍼지는 단 한 발의 총성,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포조와 럭키, 피터 섀퍼의 ‘에쿠우스’ 속 앨런의 절규. 그리고 지금 여기에 기록하지 못하는 무수한 장면들. 저는 그들에게 많은 걸 빚졌습니다. 그들을 마주하면서 저는 웃고 울었고, 때로는 분노하거나 때로는 절망했으며, 때로는 위안을 그리고 때로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제가 지금 저라는 사람으로서 굳건하게 이곳에 서 있을 수 있게 한 가장 큰 조력자는 그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을 가까이함으로써 저의 인생은 더 풍성해지고 견고해져 왔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제 안에서 그들은 영원처럼 살아 있을 겁니다.
그런 희곡을 쓰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삶 속에 깊이 파고드는, 그들의 인생을 뒤흔드는 울림이 있는, 그리고 그들이 더 단단하게 자기 생을 살아 내게 할 수 있는 그런 희곡을 쓰고 싶습니다. 그 출발점에 서 있는 지금, 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두근두근하고 있습니다. 제게 그 길의 문을 열어 주신 두 분의 심사위원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나의 아버지, 그리고 찬, 이제야 약속을 지킴을, 그 소식 멀리에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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