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무대는 경찰서의 수사실이다. 긴 테이블과 의자가 놓이고 배경에는 스크린이 있어 영상투사로 시대적 배경과 사건현장, 단체사진이 그리고 손가락과 팔뚝의 영상이 투사가 된다. 학생들의 시위를 부추기고 지도한 혐의로 국문학과의 신라시대 향가연구박사인 교수를 경찰서에서 수사관들이 조사 심문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모죽지랑가, 혜성가, 제망매가, 원앙생가가 등장하고 혜성가에서의 민초들의 난을 교수에 의해 현재 대학생 시위를 부추기는 교재로 사용되었다는 혐의에 교수는 왜구의 침입에 대항한 화랑의 공적을 상징적으로 노래한 것이라며 반박을 한다. 향후 교수와 수사관의 향가의 대한 견해차가 한동안 지속이 된다. 결국 수사관은 영상을 통해 시국선언문을 시위대에 전달한 손목과 손가락의 사진을 스크린 영상으로 제시를 하고, 그 손이 교수의 손이라는 것을 교수가 여 제자와 함께 찍은 사진을 통해 증명하려 든다. 물론 교수의 부인과 반박이 계속된다. 그러자 교수의 제자이자 시위주동자의 손이라는 수사관의 억지 주장과 교수의 휴대폰 통화기록까지 들춰내어 시위 주동자의 목소리가 교수의 음성이라는 주장도 펼친다. 그러나 그 음성은 일개인의 음성이 아니라 사람의 음성이 아니라는 판독결과가 나온다. 연극에서는 복선으로 학생들의 처용무가 펼쳐진다. 처용부인의 역신과의 불륜에도 불구하고 이를 관용으로 대한 처용을 영웅으로 묘사한다. 처용이 외지 사람이기에 당시의 성적문란과 성도덕을 깨우치고 사회를 정화하려는 처용의 행위가 교수의 시위 부추기는 행위에 비견되느냐는 질문에 교수는 대답을 거부한다. 그리고 장시간 심문에 이기지 못하고 괴로워 한다. 의사가 등장해 더 이상 심문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며 나간다. 수사관은 분노로 부들부들 떤다. 그리고 교수의 멱살을 잡는다. 교수도 수사관의 멱살을 잡는다. 그리고 소리친다. 우리 사회에 통용하는 양심,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우리 삶의 지표로 삼는 것이 시대적 진리다 라고…..
[희곡 부문 심사평]
지적 유희가 전경화된 作品… 결말은 신선했다
응모작이 200편이 넘는 뜨거운 경쟁이었다. 전체적인 수준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연극의 특성과 제한을 무시한 글쓰기가 압도적이었다. 연극이 본디 사회적인 예술이라 노령화, 게임문화, 혼자 사는 삶 등 이 시대의 이슈들을 풍경적으로 다룬 작품이 많았다.
심사위원들은 특별히 세 작품에 주목했다. 김민정의 ‘봄이 불어오는 곳’은 음악의 재능이 뛰어난 하인이 사회적 천대와 모략 속에서 음악의 완성을 이루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정제된 언어와 성격 묘사가 훌륭했지만 기시감을 주는 주제와 교과서적 구성이 신선함을 주지는 못했다. 강동한의 ‘강릉행’은 강릉 가는 버스를 탄 승객들의 다양한 여행 목적과 삶의 방식을 설득력 있는 상황 전개, 성격에 부합하는 언어, 현대극적인 구조 속에 잘 아우른 수작이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이 가장 주목한 작품은 고군일의 ‘자울아배 하얘’였다. 고전시 연구가 한길섶이 학생들의 시위를 배후에서 지휘했음을 증명하려고 하는 수사관들. 이들의 심증수사를 정교한 논리로 부정하는 한길섶. 그러니까 이 희곡은 지적 유희가 전경화된 작품인데, 처용가의 해석에 대한 입장 차이가 양자 사이에 확연하게 드러나면서 극은 고도의 논리적 싸움으로 치닫는다. 한길섶의 논리나 수사관의 논리 모두 고전학과 수사학에 대한 차원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발전적으로 수행되고 있기 때문에 지적 유희에 강력한 연극성이 수반된다. 지식인의 정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결말이 오히려 신선하다. 당선작으로 필요 충분한 조건을 두루 갖췄다.
김윤철 (연극평론가)· 이병훈 (연출가)
희곡 당선소감
연극인들도 위로받는 작품 쓰겠습니다.
시민아파트 3층 마룻바닥에 앉아 희곡을 읽는다. 손바닥만 한 낯짝을 디민 초겨울 볕이 피리 부는 푸른 테라코타소년상에 박힌 초침 따라 눈알만 빼꼼 한 바퀴 돌리고 내빼버려도 “엉덩이 썩것슈, 신선이 따로 없당게···” 면박에 으름장을 버무린 아내의 은유가 귓속 나팔관을 두드려대도 허물지 않은 한엔 좁혀야 할 생생무쌍한 나의 거리 사회 오염도 사십구 점 구 퍼센트인 나, 의 희곡 읽기.
내일 세상 희곡이 폐기 안 될 것이 다행인 나의 희곡 읽기는 꿈에서조차 시력을 돋구는 아내 옆에 누워서도 계속이다. 밤사이 아내 안경의 온전함은 내일 아침 우리 가정의 평온을 좌지우지한다. 잘잘못의 책임 규명도 없이 평온이냐 소란이냐 이분론적 매개 육화된 아내의 안경 이불 속에 누운 채 그 매개를 소중히 떼내 앉은뱅이 경대 위 머그컵에 밀어 넣는다. 턱~대굴~쨍~와그르르! 앗, 머그 컵째 뒤로 떨어졌나 보다.
머그컵에서 쏟아져 선잠 깬 생활들이 고시랑댄다.
“야심한 밤에 뭔 난리여?”
“비상치곤 좀 심헌디.”
“하이재킹… 아녀?”
“추락헌개빈디.”
“워메, 이무기도 못 되는 것이 승천헐라했나벼!”
내 연극의 시발점인 방송대 극회, 문학성을 깔아준 풀밭동호회, 고전의 시각을 틔워준 고전강독회, 희곡 창작으로의 패러다임을 갖게 지도해 주신 명지대 대학원 문창과 이재명 교수님, 극단 완자무늬 김태수 연출님, 극작워크숍의 선배와 동인들 그리고 형님들 누님 동생들 또한 아내와 두 아들로 오늘의 내가 있습니다.
세상에 진 많은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기회와 활자에 갇힌 대사들에 숨을 불어넣어주신 조선일보사 그리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독자와 관객은 물론 사랑하고 존경하는 연극인들도 위로받는 작품을 쓰겠습니다.
고군일
―1953년 전남 벌교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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