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한길 '사건 발생 일구팔공'

clint 2016. 10. 9. 10:23

 

 

 

현실에 대한 섬세한 터치와 더불어 인간의 내면에 대한 치밀한 표현으로 두터운 마니아 층을 확보 하고 있는 김한길의 작품은 자극적이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따스하게 젊은 세대의 감성을 담아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지닌 김한길의 이 작품은 무대에 흩어져 있는 무거운 내용을 단아하게 정리하는 마술과도 같은 연극이다. '사건발생 일구팔공'은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보편적인 소시민들의 삶을 담았다. 공연을 통해 비춰지는 인물들은 나 자신의 삶과 내 가족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을 주로 사용해 수다스럽게 풀어내거나 침묵으로 비워내 작품의 흐름을 조절한다.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면서,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생선가게를 하고 있는 정자가 지체장애 둘째 딸 순희의 식사를 위해 집으로 온다. 장마로 인해 상가가 물에 잠기자 순희를 남겨놓고 정자는 다시 가게로 나가고, 셋째 딸 선희는 결혼준비로 나가고, 막내 아들 춘구는 친구 합의금으로 단란주점에 가려고 나간다. 이렇게 가족들이 집을 비운 사이 순희는 동물병원에 있는 강아지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선다. 비 오는 날의 교통사고, 선희의 약혼자 지환이 감춘 비밀, 그리고 춘구의 옛 여자친구 지윤과의 관계. 그들 사이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낡은 상 위에는 서너 가지 찬이 올라오고, 구형라디오에서는 판소리가 흘러나온다. 밖에는 비까지 내린다. 서른 여덟이 되도록 초코파이를 입에 물고 사는 정신지체 둘째딸 순희는 동물병원에 강아지 보러 가자고 보챈다. 엄마 정자, 셋째딸 선희, 막내 춘구 등 가족 모두 집을 비우자 혼자 길을 나선 순희는 영정사진으로 되돌아온다. 깊은 슬픔에 잠긴 집으로 선희와 결혼할 지훈이 찾아온다. 지훈은 춘구 앞에 식칼을 디밀고 말한다.“우리 여기서 서로를 죽이는 일이 있더라도 솔직하게 얘기 하나씩 할까.” 처남과 매형 사이에 줄타기 하는 얄궂은 운명을 가늠대에 놓고 춘구는 주먹 대신 이런 말을 날린다.

“용서, 양심, 이 지랄 하면서 절대 입밖에 내지 마라.”
 
 

 

 

제목의 '1980'은 춘구가 태어난 1980년도부터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 착안해 붙인 것이다. 또 서로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1980년대 광주와도 연결된다. 순래와 그의 딸 정자, 정자의 딸 순희, 선희 등 소시민 모녀 3대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렸다. 순래는 모진 시집살이와 하나 밖에 없는 딸 정자마저 자신의 곁을 떠난 한으로 죽어서도 딸의 곁을 맴돈다. 젊은 시절 중동으로 간 남편과 소식이 끊긴 정자는 생선가게를 하며 의붓 딸 순희와 선희, 친아들 춘구 등 자식들과 함께 근근이 살아간다. 큰딸은 오래 전 집을 나갔다가 자살했고, 순희는 그 충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졌으며 선희는 의붓 엄마인 정자에게 벽을 쌓고 있다. 어느날 정자는 정신지체를 가진 둘째 딸 순희의 밥을 차려 주러 집으로 갔다가 가게가 홍수로 물에 잠겼다는 소식을 듣고 밖으로 나간다. 셋째 딸 선희는 결혼준비를 하러 나가고, 말썽꾼 아들 춘구는 단란주점에 가기 위해 집을 나간다. 혼자 남겨진 순희는 동물 병원에 있는 강아지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는다. 순희의 죽음을 통해 숨겨졌던 가족의 비밀이 드러나고, 가족들은 그 동안의 오해를 풀고 용서와 화해에 이른다.

 

제목은 춘구가 출생한 해가 1980년인 점에 착안해 따왔다.김한길은 젊은 작가답게 치밀하고, 예민하게, 그러나 따스하게 젊은 세대의 감성을 담아내는데 탁월하다. 현실에 대한 섬세한 터치와 인간의 내면에 대한 치밀한 표현은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임대아파트], [장군슈퍼], [춘천 거기] 등 내놓는 작품마다 관객과 평단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2006년에는<춘천 거기>로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하는 등 왕성한 활동으로 주목 받고 있다. 담백한 대사, 등장인물 간의 관계 설정, 입체감 있는 장면 전환, 유머러스 한 상황 설정 등이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며 적극적인 공감대를 끌어낸다. 대학로 연극계에 김한길 연출은 재미와 감동, 모두를 놓치지 않는 욕심 많은 작품을 선 보이고 있다.

 

 

 

 

김한길

극작가, 연출가, 배우
서울예술대학 극작과 졸업
現 극단 청국장 대표
現 혜화동1번지 4기 동인
2002 방언연극 워크숍<자전거>
2003 아시테지 선정작<사랑의 피아노>,<장군슈퍼>
2005 백만 송이 프로젝트<춘천 거기>,<라이어 2>
2006 혜화동 1번지 4기동인 페스티벌 참가작<임대아파트><장군슈퍼>, 국립극단 특별공연<우리읍내>
2007 혜화동1번지 4기동인 페스티벌 참가작<사건발생 1980><임대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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