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자림 '老女들의 발톱'

clint 2016. 10. 7. 20:54

 

 

 

이 작품의 주인공인 두 자매(마 공자, 마 맹자)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몰락한 옛 양반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망해서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지만 몰락하기전의  양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지금의 처지를 인정하지 못하고 옛날 자신의 존재를 잊지 못하는 양반들의 언행과 흡사한 느낌을 주는 두 자매들의 언행을 볼 수 있다. 이는 작가가 독자들이 이미 익숙한 몰락한 양반들의 해악과 풍자를 빌려 좀더 독자들에게 이해와 관심을 끌기 위해 두 자매들을 몰락한 양반들처럼 느끼게끔 의도한 결과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과거 직업과 현 직업, 권력자와 비 권력자, 경찰과 범인, 죽음과 삶 등 극단적으로 대조되어지는 갈등 구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아물 하고도 무거울 수 있는 주제가 재미있고 좀더 가벼워 질 수 있었던 같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특징 중 그들이 가진 장점이나 특이사항을 통해 주제를 표현하기보다는 등장인물들이 가진 단점과 약점을 통해 작품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장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거의 모든 주제 전달과 사건들이 등장인물들의 단점을 통해 전달되어지고 이루어진다. 마지막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작가는 인간이 순수하지 못한 존재, 권력과 과거에 얽매여 있는 존재, 현재 나타나고 있는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에 빠져 있는 존재 등 인간의 어두운 면만을 보여주면서 인간이란 존재를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 지게 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비관적이지 않다. 정말 약하고 보잘것없는 것으로 인해 느끼고 살아나게 되며 생각이 바뀌고 언행이 달라지는 마지막 사건을 통해 인간이란 존재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희망적이고 낙천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존재로 묘사하며 작품의 끝을 맺는다. 이처럼 작가는 극한 상황으로의 사건을 통해 갈등을 격화시키며 이러한 절망적 상황에서 작은 것으로 이겨내는 반전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극대화 시켰다. 작가는 극단적 대조를 통해 이 모든 극단적 대조들은 인간들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지 원래부터 이렇게 대조되는 삶이란 없다는 것을 말하며 모든 것들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또한 꾸미며 살아가기보다는 자연처럼 悠悠自適한 삶을 살아가고 자기가 처해있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아가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1막      

장소는 국립공원 안이다. 국립공원이란 장소는 누구나 올 수 있고 누구나 쉴 수 있는 장소이지만 거지인 두 주인공들은 이곳 관리자의 눈치를 보며 지내야 한다. 이것은 사회의 권력 차별이나 어떤 물질화 된 편견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불평등한 차별에도 어쩔 수 없이 굴복하고 숨어야만 하는 모습을 두 거지들과 관리자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같은 거지지만 생각이 다른 두 자매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 공자는 자기의 주장이 뚜렷하고 밝은 미래를 바라보며 명예에 대한 욕망을 보여주지만 마 맹자는 현재 자기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안주하며 명예욕보다는 사랑을 찾는 이성적 삶의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두 자매의 모습을 통해 권력을 얻기 위해 발부림 치고 권력에 대항하는 사람의 모습과 이러한 권력 차별화를 인정하고 회피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신하여 보여준다.
              
2막      
사회적인 지휘가 올라간 두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모습은 현재 땅 투기나 증권 투자 등 각종 투기와 운으로 인해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지 였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큰 부자가 되어 이에 굽신데는 관리자의 모습을 표현하므로 인해 물질과 권력으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현 사회에 대한 풍자가 들어있다. 강 여사에게 사기를 맞은 두 자매는 다시 거지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강 여사가 사기를 친 모습을 통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구하는 물질과 권력의 추구에 대한 문제점을 말하고 있다. 경찰서에 연행되어 가는 두 자매의 모습을 통해 인간들의 한탕주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주고있다.       
              
3막      
다시 거지가 되어 공원으로 돌아온 두 자매의 모습을 보면서 물질과 권력에 대한 허무함을 보여 주고 있다. 두 자매의 원망을 통해 현 사회의 잘못된 점을 말하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죽음의 길을 선택했지만 죽지 않고 발톱에서의 생기를 느껴 살아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이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인간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이며 무엇이 인간을 존엄하게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과거를 묻으로 가야지라는 말을 통해 지금까지의 잘못된 현재의 문제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미래지향적 삶을 바라는 작가의 주제가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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