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태석 '춘풍의 처'

clint 2016. 10. 5. 08:32

 

 

 

 

천하한량 춘풍이를 그의 본 마누래가 찾아나선다. 동해에서 잠시 인간세상에 올라온 미물형제(물고기)를 만난다. 그들의 도움으로 평양감사가 되어 춘풍이 잡혀 있는 평양감영에 이른다. 서방님을 지척에 두고 그러나 본 마누라는 서방을 꼬득인 장본인인 평양기생 추월이를 보자 울화를 이기지 못하고 대어들다가 도리어 낙반해서 그만 사경에 처한다. 이렇듯 천신만고 끝에 서방을 만났으나 본 마누래를 기생 추월이로 착각하고 사경에 처한 것이 추월인 줄로 알고 대성통곡한다. 그래 하는 수 없이 처는 추월이로 행세하면서 서방님과 마지막 정을 나눈다.

 

 

 

 


다분히 해프닝의 요소를 지닌 이 공연의 극본은 우리의 탈춤 대본을 상당히 원용하고 있지만 즉흥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우리 가면극의 내용과 형식에서 현대성을 교묘히 추출해 내어 재구성한 작가의 솜씨는 찬탈할 만 하다. 먼저 내용적인 측면을 보면 가면극에 나타난 민족 고유의 정서에 세계성을 부여하고 있다. 가면극에서 보이는 외설스러움과, 점잖음, 패륜과 정숙, 애와 환, 희롱과 진지함의 교차는 희극적인 것과 비극적인 것이 뒤섞인 현대의 그로테스크한 세계관과 맞닿는다.여기에 죽은 자가 되살아나고 시공이 초월된 비논리적인 극형식은 아르토의 제의극 이론까지 갖다대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통적 극작법에서 이탈해 가는 현대 연극의 조류에 닿고 있다. 초분과 태에서 대담히 플롯과 언어의 해체를 실험했던 오태석이 춘풍의 처 에서 비로소 성공을 거둔 것은 이 작품에서 인물과 주제의 해체마저 시도함으로써 그 나름으로 하나의 완결된 미학에 도달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뜻에서 가장 실험적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한국 연극사의 한 이정표로서 두고두고 논의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오태석 특유의 요설, 객설, 사설이 푸짐하고 북치고 창하고 뛰고 뒹굴고 춤추고 그야말로 한 마당 신들린 굿거리 같은 연극인데 이춘풍의 얘기를 삭제했다고는 하나 줄거리는 있지도 않고 앞뒤 논리도 없으며 인물은 무시로 드나들지만 일관성있는 성격이 부여된 것도 아니고 죽은자가 살아나고 산자가 둔갑하는 해프닝을 연출한 작품이다. 울다가 웃다가 치고 받는가 하면 껴안고 어울리고 한껏 신명이 나는가 싶으면 느닷없이 청승을 떨기도 한다. 언어는 파괴되고 플룻은 이미 존재하지 않고 인물은 분재되어 있는 이 연극은 오태석의 무의식이 빚어낸 가장 현대적이고 따라서 가장 실재적인 연극이 아닌가 생각된다. …… 극의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와 감각으로부터 탈출해 내었다는 데에 보다 큰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춘풍의 처>는 오태석의 다른 작품에 비하여 가장 즉흥성이 강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오태석은 무의식과 충동의 작가로 보고 싶다. 그가 의식과 기교를 가질 때 그의 작품은 위태로와진다.<춘풍의 처>가 지금까지 오태석의 모든 작품들 가운데 가장 의미심장한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바로 그런 점이다. (고대신문 1979년 12월 4일, 정진수)

 

 

 

<춘풍의 처>는 명절날 흔히 공연되는<민속마당 이춘풍전>식의 마당극과는 거리가 멀다. 대학이나 현장에서 공연되는 마당굿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마당극, 또는 마당굿이 전통민속극을 기반으로 아예 새로운 양식으로 발전된 것이라면,<춘풍의 처>는 어디까지나 전통 민속극들의 여러 요소들을 도입한 '연극'인 것이다. 이 작품이 처음 공연된 1976년은 대학가에서 탈춤 등의 민속극 공연 운동이 마당극 또는 마당굿으로 발전해나가던 중이었지만, 현대 연극에 전통민속극을 수용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춘풍의 처>는 일종의 ‘실험극’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연극으로서<춘풍의 처>는 ‘노인분들’께 권했다가는 꾸중듣기 딱 알맞을 만큼 난해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다. 작품의 대체적인 뼈대는 고전 소설<이춘풍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관객들은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어 나가는 것인지 어리둥절하기 마련이다. 전통 민속극에 대한 약간의 사전 지식을 가지고 보면 이 연극이 전통극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이미지를 중심으로 모자이크한 작품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춘풍의 아내가 춘풍을 만나는 대목은<수영 들놀음>의 ‘영감할미 마당’에서 따온 것이며, 등장인물 가운데 덕중과 이지가 뭍으로 올라온 사연은<별주부전>의 ‘별주부’의 이미지를, 덕중이 박치기하는 대목은<꼭두각시>처의 ‘홍동지’의 이미지를 따오는 식이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대체로 오태석씨의 작품들은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모자이크하는 식으로 전개되는 작품들이 많아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구경하다 보면 그 나름대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내용이 약하다보니 연극이 끝난 뒤에는 허망한 생각이 남는다. '그래서 도대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데?'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 도대체 듣고자 하는 바가 뭔데?' 하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한겨레신문 1999년 6월 30일, 위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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