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경성, 때는 민족주의와 자본주의가 무질서하게 들어와 충돌하고,
전근대적인 윤리관과 극단적인 자유연애가 공존하던 시기.
어느 날 총독부에서는 최근 검거된 미곡상 연쇄털이범이 딴스를 즐겼다는
이유를 들어 딴스를 금지시키고, 그 본보기로 카페 비너스를 폐쇄한다.
이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 모인 여섯 명은 카페의 정상화와 딴스의 자유를
위해 은밀히 대회를 개최하기로 한다. 신여성 윤화영, 카페의 주인 박사장.
시인이자 기자 김기도, 카페여급 이봉자, 사업가 부부 이순심과 이재우...
함께 딴스대회를 준비하고는 있지만 다들 숨기고 있는 사연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카페에 순사가 들이닥치고,
그들 중 한 명이 잡혀가게 되는데....
연극 ‘경성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1937년 실제 있었던 ‘딴스홀 청원서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창작된 작품이다. 또한 일본 총독부가 시국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조선의 딴스홀을 금지시켰던 황당한 사건에 맞서기 위해 딴스경연대회를 여는 여섯 인물의 이야기이다. 딴스홀을 허가해 달라고 청원서를 기고했던 이 실제 사건은 역사 특히 댄스스포츠의 역사에서는 주목할만한 사건이다. 실제 청원서를 냈던 문예부장과 기생, 영화배우들 8명은 예술인, 자본가, 카페여급, 사회운동가 등의 6명의 더욱 다양한 캐릭터들로 바뀌어 당시의 경제적, 문화적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딴스홀이라는 공간에 모인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다양하고 혼란스러웠던 시대상과 사회 문화 풍경을 보여준다. 근대에 이렇게 다양하고 개성적인 인물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한편, 재미있는 구성에 여러 사연들이 어울어져 딴스와 함께 과거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작가의 글 - 김수진
<경성의 딴스홀을 허하라>는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이 나와 경성을 소재로 작품을 한다는 것 자체를 많이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를 공부할수록 현재와 무척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경성을 배경으로 현재의 모습을 반추해본다는 목표 아래 작품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을 하면서 '왜?'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하는 편입니다. 난 연극을 '왜' 할까? 이 작품을 '왜' 할까? 이런 질문의 구체적 해답이 제가 공연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부족한 작품을 열정으로 함께 만들어간 배우들과 스탭 여러분께 가장 큰 감사를 보냅니다. 나의 현재이자 미래인 극단 아리랑, 대표님과 예술 감독님을 비롯한 모든 단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댄스의 역사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볼룸댄스가 들어온 것은 19세기 말, 러시아 공사에 의해서였다고 전해지며, 고종황제가 Webel의 부인에게 왈츠를 배웠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과 소련에서 돌아온 유학생들이 종로의 황성기독청년회(현 YMCA)에서 시범을 보인 것을 볼룸댄스의 시초로 본다. 이후 1920년 최초로 정동 동양극장 맞은편에 예술학원을 설립하고, 최초의 사교댄스 지도자인 김동한이 사교댄스와 호팍댄스를 가르치며 댄스가 보급되기 시작한다. '신유행의 망풍 소위 사교무도'와 같이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지만 일본인들의 딴스홀 청원(1929년, 불허됨), 1937년 조선인들이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탄원서를 잡지에 게재하는 등 댄스에 대한 열망은 높아져갔다. 그런 가운데 서울 회현동 미쓰코시 백화점 건물에 우리나라 최초의 카바레가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해방 이후까지도 댄스는 허가되지 않았으며, 미군이 들어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사회적 지탄을 받는 부정적인 춤으로 인식된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사회악을 일소 한다는 목적으로 댄스를 금지시켜 무도계는 시련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 댄스를 여가선용을 위한 스포츠로서 배워야 한다는 자각이 일어나고, 사용법을 제대로 배우고 전파하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관련 단체들이 생겨나게 된다. 1959년 장충체육관에서 첫 전국무도선수권대회를 열고, 1970년 한국무교육협회 설립. 1988 Olympic Youth Camp에서 댄스스포츠의 경연대회를 개최하면서 우리나라는 댄스스포츠의 양성화에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1992년, 비로소 관련법이 제정되어 양지로 나오기 시작해 우리나라 댄스스포츠는 일대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댄스스포츠는 전국의 대학과 초중고생, 수많은 댄스동호회와 클럽이 왕성한 활동을 벌이며 즐기는 대중스포츠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참고자료 : [댄스스포츠 발달사], 동덕여대 정진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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