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되지 않는...」이 작품 속의 세 개의 이야기가 있다
미애의 경우-. 준경의 경우-, 그리고 삼례의 경우-
미애는 외국인 상사 타이피스트다. 가까운 거리에 중견회사의 촉망 받는
30대 남자 명석이 있고 오가다 만난 사이이고, 어느 날 호텔에서 외박을
하는데, 미애가 거절해서 그냥 자기만 했다. 다음 날 미애의 전화를 받은
명석은 외박으로 집에서 쫓겨났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만나 그 사연을 듣는데
그의 배다른 오빠로부터 주기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대학생인 준경은 프리섹스 스타일이다. 회사 사장인 아빠가 돈을 잘 벌어
금전적으로는 여유로우나 자주 외박하는 딸에게 잔소리가 심하다.
어느날 애를 임신했고, 집에 얘기해 애를 낳겠다고 하자 난리가 난다.
새엄마와 아빠는 중정수술하고 좋은데 혼처를 정해주려하자 준경은
내 아이를 왜 맘대로 떼라느냐고 싸우고 집을 나간다.
삼례는 가정부로 이 집에 왔다. 이 집에 다큰 두 아들과 아버지, 어머니는
중명으로 몸져누워있다. 두 아들이 집쩍대고 어느 날 아버지도 달려들었다.
솔직하게는 막내아들이 좋지만 다 포기하고 이 집을 나간다.
미애는 자신의 자신의 비밀이 폭로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명석이 좋으면서도
언제나 거리를 두어왔는데 막상 그것이 다 들어난 다음에도
명석과 헤어지는 결심은 왜 그래야 하는지.
준경은 어째서 그토록 방탕하고도 그것에 처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한테 대들게 됐을까?
또 삼례의 경우 두 아들이 삼례를 집적거리는 것을 아버지가 짐작하면서
아버지 마저 삼례에게 달려드는 것은 아버지가 주책이 없어서 그랬나,
욕정을 참지 못해서 그랬나, 혹은 삼례에게 일종의 강박감을 주어
아들과 떨어뜨려 놓으려고 한 짓인가....
무엇이던 간에 정상과 비정상의 판단은 주관과 객관의 입장서 서로 다르기도 하고 또 일치되는 때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항상 일치되진 않는다. 객관적으로 볼 때 다 비정상적인 사건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객관적이란 오늘날 우리의 사회에서 정상적인 논리관으로 보는 측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물들의 주관으로 스스로들을 바라볼 때 과연 비정상이라고 자인할할 것인지. 미애는 자신의 처지를 비정상이라고 믿을 것이다. 삼례는? 아직 판단할 능력이 없지 않을까. 그러나 준경은 어쩌면 자신의 일을 조금도 비정상이라고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욱 문제거리는 위의 세 여자들의 사고를 가름질하는 이 자체가 벌써 객관적이지 각자의 주관은 아니라는 것. 이 극에서는 어째서라는 사건의 출발과 그러니까 하는 경과가 빠져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을 놀라움으로 폭로하려는 의도도 없다. 그러나 극의 세 개의 사건이 무엇인가 한 가지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지 않느냐 하고 관객에게 묻고 있다. 그것(Sex) 때문에? 혹은 인간, 성격 때문에? 또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숙명이기에... 등 어느 것에 기인하는가 그리고 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인가, 아닌가, 이것을 생각해보고자 제시한 것이다. 윤리, 도덕이라는 것은 느끼는 사람에 따라 가치관이 다르고 또 달라지고 있는 오늘날 그것의 정상과 비정상은 주관에 의하여 단정되고 있다. 이 말은 이 연극을 보고 극중사건들이 비정상라고 말하는 사람과, 그게 뭐 대단한 일들이냐는 사람과 갈라지리라 믿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하여튼 이 작품의 내용과 같은 일들이 오늘날 우리 주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인 못하리라. 그리고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떠한 느낌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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