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낡은 허름한 한옥집 내부로 꾸며진 무대.
여긴 재개발이 이루어질 서울 변두리 달동네 무허가 판자집이다.
엄마가 유산(?)으로 물러준 그 집에 혼자 살던 독실이.
어느 날 뜬금없이 엄마와 2년간 같이 살았다는 구실로 우암돈이란 사람이 들이닥친다.
양로원에 들어가는 것이 꿈인 우암돈은 동거하던 여인이 죽은 뒤 딸 독실만 남겨두고
달아났다가 집이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듣고, 염치도 없이 들어온 것이다.
암돈은 보상을 좀 더 받기 위해 빈방에 모두 세입자를 들인다.
이에따라 자식들에게 얽매이기 싫어 건축회사 경비로 일하는 이한심,
영안실에서 시체를 염하며 사는 우남북, 한몫 벌어 빵집 차리는 것이 꿈인 우대풍,
다방레지 선우공자, 선의에 가득찬 의문의 남자 식모 나근예 등이 이 집으로 들어온다.
재개발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을까 하는 맘으로 몰려든 밑바닥 생활을 하는 인간 군상에
한숨이 절로 나오기도 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 모습에서
인생과 인간에 대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결국 건축회사와 시당국의 음모로, 입주민들 모두 철거 보상금은커녕
폭력배들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하고 빈털터리로 달동네를 떠나게 된다.
<엄마집에 도둑들었네>는 권력과 폭력에 짓밟히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희망과 삶에 대한 의욕을 포기하지 않는 가엾은 서민들 모습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관객들은 어렵고 힘듦에도 건강을 잃지 않는 서민들의 건강함에 배꼽잡는 웃음과 웃음 뒤의 진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된다. 이들은 우리 사회 서민들의 빛과 그림자를 상징한다. 헛된 꿈과 잔꾀만 가득한 ‘암돈’이나, 무력하게 여기저기에 휩쓸리는 ‘한심’, 위선과 폭력에 물든 ‘대풍’이 일그러진 서민의 모습을 상징한다면, 꿈을 포기하지 않는 ‘독실’이나 ‘공자’와, 어려워도 남을 이해하고 진지하게 살아가는 ‘남북’과 ‘근예’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서민들의 미덕이다.
이 작품은 몇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한국형 대중 고급 코미디 형식 창출이다.이 작품은 대조·대비·희극적 엉뚱함 등의 코미디 원칙에 바탕한 탄탄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으며 위트와 풍자,아이러니가 넘치는 대사는 때로 버나드 쇼의 사회풍자적 대사를 상기시킨다.
둘째,대중 코미디가 흔히 지니는 피상성을 극복하고 대중성에 바탕을 둔 실존적 희·비극으로 작품의 의미를 확장 승화시켰다.이는 노인 문화를 주제로 작품의 원숙미를 더해가는 극작가 이근삼과 서민형 코미디 형식을 꾸준히 무대화한 김영수 연출의 다행스런(?) 만남을 통해 가능했다고 생각된다.예로,암돈이 끝장면에서 허물어져가는 집속에 갖혀 “연천에 가야되는데”를 되뇌이는 장면은 체홉의 ‘벗꽃농장’의 끝장면을 연상시킨다.개발이라는 시대논리에 밀려 사라져가는 한 노인의 삶과 그 실존적 아이러니는 이 작품을 최근 가장 돋보이는 한국형 희·비극으로 자리매김해줬다.
셋째,지금까지 서민극 시리즈가 견지해온 삶에 관한 긍정적 메시지를 재확인시켰다.“재벌들은 돈 벌어놓고 줄줄이 죽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살아있는 것이 행복하다”는 대사에서 그네들의 건강한 삶의 지표를 엿볼 수 있다.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1996), <땅끝에 서면 바다가 보인다>(1998), <해가 지면 달이 뜨고>(1999) 등 꾸준히 서민극을 선보여 온 극단 신화의 네번째 서민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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