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배삼식 무용극 '마디와 매듭'

clint 2025. 1. 2. 21:08

 

 

 

‘오래 기다려 그립고 설운 것들이 그득히 내려오는’ 
동지의 긴긴 밤부터 ‘아스라한 그 밤 그 짧은’ 하지의 밤에 이르는 
13절기 안에서 희로애락의 삶을 살아가는 여인들의 모습을 
춤, 노래, 연주로 엮는다. ‘꽝꽝한’ 소한에 ‘갈라터진 얼굴’로 잠든 
어린 자식들을 들여다보는 어머니는 한때 ‘마음엔 가만히 봄’이 
들어섰던 입춘의 여인이었고, 한식날 ‘불 꺼진 아궁이에 찬밥을’ 먹으며 
할머니의 옛 이야기를 듣던 꼬마이기도 했다. 
계절과 시절을 몸과 마음으로 감각했던 여인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마디와 매듭>은 자연의 시간을 살아내는 여인들의 삶을 살펴보는 작품이다. 끊임없는 순환을 통해 인간들의 삶에 질서를 부여하는 24절기가 작품의 큰 틀을 구성하며, 절기별로 달라지는 풍경과 세시 풍속을 배경으로 시간의 마디 마디 안에서 여인들의 '옹이진 마음에' 서리고 '세월에 묻은' 이야기들이 드러난다. 추위와 배고픔, 허리 펼 틈 없는 고단한 농사일을 견디는 날들 속에서 때로는 짓궂게 킬킬대다가, 때로는 떠나보낸 누군가와 한 시절을 절절히 그리워하기도 하고, 시원한 빗소리를 들으며 한입 베어 무는 복숭아에서 달콤한 휴식을 맛보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지난 세월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여인들의 삶은 장르간의 조화를 통해서도 구현된다. 이야기와 음악과 무용은 서로를 존중하고 끌어안으며 하나의 공연 안에서 나란하게 기능한다. 극본 배삼식· 음악 최우정· 연출과 안무에 정영두, 각 분야에서 동시대 예술을 대표하는 창작진이 절기에 따라 생동하는 여인들의 삶을 한 편의 아름다운 공연으로 빚어낸다. 

 



 

<마디와 매듭> 음악에 적을 두고 있다. 이 극은 얼핏 시처럼 보이는 스물여덟 편의 노랫말로 이루어져 있는데. 말맛이 뛰어난 어휘와 반복으로 자아내는 박자 덕분에, 노래로 듣지 않아도 읽는 것만으로 흥이 올라온다. 제목의 '마디'는 24절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편마다 절기에 얽힌 서사를 풀어낸다. 여성 화자들이 삶에서 느끼는 기쁨과 보람, 그리움과 수심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우리는 절기로 '시간'과 '순환'을 다시 인식한다. 시간은 일렬로 나아가고 되돌릴 수 없지만, 그 속에서 자연과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되풀이하고 있다. 그 되풀이가 시절을 견디는 힘이 되곤 한다. 눈이 내릴 때 꽃이 필 것을. 밤이 길 때 낮이 길어질 것을 죽음이 닥칠 때 또 다른 삶이 기어코 찾아올 것을. 그리고 그 반대의 때를, 묵묵히 기다리게 한다. 저마다 어떤 모양의 매듭을 지으면서.  <마디와 매듭>의 구절처럼, 그렇게 우리는 또한 고개를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