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핀터 작, 박장렬 번안 '제9요양소'

clint 2025. 1. 1. 12:20

 

 

 

이 극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정부 부처에서 주관하는 한 요양소(정신병원)이다.
그런데 이곳은 소장의 말에 따르자면 '보일러가 가열되어' 뜨거운 집이다.
이 극에서는 처음부터 계속 배경에 '통곡소리', '긴 한숨'등이 들린다.
깁스와 롯도 '정의 내릴 수 없는 무슨일이 발생하고 있다'라고 계속 말한다.
따라서 '뜨거운 집'은 무슨 일이 발생하기 이전의 가열된 상태인 집을 말한다고 

하겠다. 또 영미권에서 '핫하우스'는 일종의 성적쾌락을 즐기는 곳이다.
이 요양소도 성적으로 문란하다.
핫하우스의 배경이 되는 사회는 질서가 강조되는 사회이다.
요양소 소장은 질서의 중요성을 계속 주장한다.
이 질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위계질서인데
소장의 비서격인 실장은 소장에게 말할 때 꼭 끝에 소장님(Sir.)을 붙인다.
과장이 소장과 친하다고 생각해 이름을 불렀을 때, 소장은 강하게 반발한다.
또 이 요양소에서는 전문 직원과 허드렛일을 하는 직원이 엄격히 분리된다.
허드렛일을 하는 직원이 주관하는 크리스마스추첨에 전문직원이 동참하지 

않는 경우처럼,  전문직원은 허드렛일 하는 직원과 동등하게 행동하지 않으려 한다.
이처럼 질서를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인간적인 측면이 부재하게 된다.
요양소 환자들은 모두 6457번, 6459번처럼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린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인간 개인이 한 개인으로 보여지는 것, 
소장의 말에 따르면 자신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행위로 권위적인 사회에서 
배제되어야만 하는 요소인 것이다. 이 사회에 속한 전문 직원들 사이에서도 
인간적 교류란 없다. 전문 직원과 환자들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죽은 6457번에 대해 소장과 과장이 묘사할 때 서로 일치하는게 하나도 없다.
소장도 6457번과 6459번을 그렇게 많이 면담했지만 이들의 모습이 어떤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성관계도 이곳에서는 일종의 과학이며, 서로의 필요에 의해 발생하는 행위, 
보고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진정한 감정적 교류, 사랑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행위가 아닌 것이다.
이같이 위계질서를 강조하고, 인간성이 사라진 요양소에 변화가 일어났다.
환자 6459번이 아이를 낳은 일이다. 이 일은 롯의 말에 따르자면 과거에는 
절대로 없었던 일이며 질서의 파괴, 혼돈을 야기하는 일인 것이다.
또 직원들이 위계질서를 깨뜨리기 시작한다. 
질서의 가장 선봉에 서야하는 소장도 자신의 일에 회의를 가진다.
이 요양소의 질서 중 하나는 일의 효율성이 떨어지거나 질서에 회의를 지닌 
소장을 아랫사람이 제거하는 것이다. 소장은 아직도 자신이 능력이 있고 
늙지 않았다고 공언하지만, 실장이 자신을 살해할까 두려워한다.
맹목적인 순응을 하지 않는 과장와 권위적인 질서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실장은 소장을 서로의 세계로 이끄려한다. 마지막에 소장이 과장을 선택했다는 점은 

소장의 가치관이 완전히 변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특히 '믿음을 가지십시오'로 끝을 맺는 소장의 크리스마스 연설은, 
실장이 대변하는 질서세계의 가장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 개개인에 대한 
믿음과 존중의 회복을 권유하는 연설이다.
따라서 이렇게 완전히 변화된 소장은 제거의 대상이 된다.
정부 부처는 부장에게 새로운 소장 자리를 주고 질서는 다시 도래된다.
이제 '제9요양소'는 다시 질서와 신봉자에 의해, 

권위와 질서가 유지되는 조직으로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핫하우스」(제9요양소)는 전체적으로 질서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못하는 소장이 이끄는 세계가 맹목적으로 질서에 순응하는 실장에 의해 무너지는 과정,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잡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핫하우스는 헤롤드 핀터가 생각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인간이 어떻게 권위적이고 부조리한 사회에서 살해되고, 권위적 질서가 어떻게 유지되는가에 대한 주제를 다룬 작품이다.
<The Hothouse>는 1080년 4월 런던의 햄스테드 씨어터(Hampstead Theatre)에서 해롤드 핀터 연출로 첫 공연되었다. 이후 1980년 런던의 앰버서더 씨어터에서 다시 공연되었다. <The Hothouse>는 원래 1958년에 썼으나 작가가 발표를 미룬 채 거의 20년을 방치해 두었다가 1979년에 무대에 올리게 된 작품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이 극을 재평가한 때가 바로 구체적인 정치상황을 그리는 "정치극"들로 자신의 작품경향을 바꾸려 했던 바로 그 시점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때의 정치극이라는 것은 선동극(agit-prop)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의 극이 정치적이라 함은 영국의 정치현실을 고발하거나 어떠한 정치적 사상을 설파하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기본적으로 "지배와 굴종"의 파워게임으로 보고 권력의 본질과 그것을 행사하는 주체의 본질을 성찰한다는 점에서 "정치극"이라는 것이다. 

 

 


<제9요양소>는 해롤드 핀터의 <The Hothouse>를 한국식으로 번안한 작품인데, 인명과 몇 가지 세부사항 이외에는 거의 원작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제9요양소>는 정부가 운영하는 요양소를 배경으로 한다. 이곳의 책임자는 전근원(Roote)이라는 소장이며 이 병원은 그를 정점으로 상급과 하급이라는 뚜렷한 체계로 이루어진 직원들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보호되는 '격리된 장소'다. 이 극에서 환자들을 감시하는 형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피라미드형 구조의 관리계급 체계를 철저히 확립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환자의 이름 대신 숫자로 부르는 등의 비인간화 정책이다. 이런 모든 전략은 "질서"라는 미명 하에 합리화되며, 환자의 죽음을 그 가족에게 숨기는 행위마저도 이 체제의 질서확립을 위해 묵인되고 자신의 직분 이상의 일을 계획한 하급관리인 양순남(Lamb)에게 전기고문을 하는 등의 잔인한 행위도 서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토록 "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근원은 정작 자신은 질서를 어기는 행위를 하며 하급직원들에게 윽박지르는 행위를 통해 권위를 내세우려한다. 그러나 그의 많은 약점 때문에 한정석(Gibbs)이나 주정남(Lush) 등의 부하들에게 끊임없는 위협을 받게되고 결국 그들은 서로를 향해 칼을 들고 대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그들은 희생양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순남(Lamb)을 그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순남은 무조건 자신의 임무만을 수행하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자신의 이상을 가지고 환자들을 대하려 하는 인물이다. 그는 정석이 부를 때 승진 문제 때문으로 착각할 만큼 순진하고 소신 있는 인물이지만 전기고문을 당한 후에는 완전히 자아를 상실하게 된다. 하지만 권력의 주체인 소장 역시 성난 환자들(군중)의 반란으로 제거되는 신세가 되는데, 여기서 그의 이름이 "뿌리"라는 것은 역설적이면서 동시에 결국 권력을 소유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극에서 환자들은 무대 위에 나타나지 않지만 끊임없이 등장인물들에 의해 언급되어지 고, 소리와 조명 등을 통해 암시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의 존재가 더 강조되는 효과를 준다. 또한 그들은 개개인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집단으로 행동하는 존재일 때 "파워게임"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들은 권력집단을 타파하려 하지만 단지 권력의 주체가 근원에서부터 정석으로 바뀌었을 뿐 궁극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러한 상황은 마지막 장면에서 순남이 넋을 잃고 앉아있는 모습으로 형상화되며 결국 이는 모든 담론의 권력 하에 있는 우리의 자화상인 것이다 

 



작가 노트
나는 1958년 겨울 The Hothouse를 썼다. 그러나 집필 당시 더 많은 검토를 위해 남겨두면서 무대 위에 올리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The Caretaker의 집필에 들어갔다. 1979년 나는 The Hothouse를 다시 읽은 뒤에 이 작품이 공연할 가치가 있음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주로 내용을 잘라내는 일이었지만 리허설 동안 몇 군데를 새로 고쳤다. - 해롤드 핀터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삼식 무용극 '마디와 매듭'  (3) 2025.01.02
이근삼 '엄마 집에 도둑 들었네'  (1) 2025.01.02
박춘근 '민들레 바람되어'  (3) 2025.01.01
위기철 '아제아제 바라아제'  (2) 2024.12.31
김태웅 '링링링링'  (2) 2024.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