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위기철 '아제아제 바라아제'

clint 2024. 12. 31. 17:57

 

 

 

중국 당나라 때 천태산 국청사와 그 주변이 무대이다.
객승 싼뉴가 20년만에 이곳에 온다. 
때마침 셴창이란 창녀가 남자들한테 쫓기다 구해주고
셴창을 통해 이 지방의 그간 사정을 듣는다.
농사철 가뭄이 심해 그걸 대비해 저수지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전보다 농사짓기가 수월해졌다고 하는데...
국청사에 다시 들려 옛분들과 인사하고, 한산스님을 찾는데
아직도 암자에서 수행중이고, 생불이라고 불린다 한다.
싼뉴가 머물며 조사한 바로는 이 저수지가 아곳 유지인 촨찐이
자기 돈을 들여 만들어 아무나 저수지의 물을 사용 못하게 했다.
게다가 국청사 주지와 결탁해 농민들의 노동력을 착취, 공양노동을
시켜 국청사를 살찌게 하고 부를 누리는 것이다.
싼뉴가 나서 주지도 만나고 촨찐도 만나 문제를 지적하자 일개 객승이
나설 일이 아니라며 묵살한다.
그리고 큰 장마가 들자, 저수지가 범람해 둑이 붕괴될 위험에 처한다.
역시 싼뉴가 빨리 저수지를 개방해 이 지방이 물에 잠기는 걸 막아야
한다며 경고해도 결정권자들은 끄떡도 없다.
그리고 한산스님도 죽임을 당하고 암자는 불탄다.

 



싼뉴의 마을 주민을 향한 외침:
만일 여러분이 구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땅에서 구하십시요. 그리고 만일 여러분들이 믿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땅을 믿으십시요. 내생을 위해 복을 쌓으려 하지 말고, 이 땅을 위해 복을 쌓으려 하십시요. 죽은 후에 극락에 이르러 하지 말며, 바로 이 땅을 극락으로 만드십시요. 지금 여러분의 삶을 살찌우고 지금 여러분 이웃의 삶을 살찌우십시요. 세상이 설사 윤회한다 할지라도 내세는 지금의 여러분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촛불을 촛불로 옮겨 붙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크고 밝은 촛불이 되지 못한다면 내세에서도 크고 밝은 촛불이 되지 못합니다. 내세의 촛불을 키우기 위해 기름을 소비하지 말고, 이 땅의 촛불을 키우기 위해 기름을 소비하십시요. 내세를 위해 우상을 섬기지 말며, 이 땅을 위해 여러분과 여러분 이웃을 섬기십시요. 부처는 여러분 마음속에 있으니, 더 이상 돌맹이나 쇠붙이를 부처라 부르지 마십시요. 부처는 여러분 이웃 가운데 있으니, 쇠붙이나 돌멩이에게 재물을 바치지 말고 여러분 이웃에게 재물을 바치십시요. 극락과 열반의 문이 있는 곳은 메마른 논밭이요. 가난한 마을이요. 썪은 저수지요. 음침한 사창굴이니 이곳을 통하지 않고서는 여러분들이 갈 수 있는 아무런 극락도 열반도 없습니다.       


이 외침은 반야심경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와 맥을 같이 한다. 즉 이 작품은 중국을 무대로 떠도는 객승을 통해 돈과 권력에 대항하고 그리고 무지한 백성을 일깨우기 위해 헌신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중국을 무대로 쓴 위기철의 작품으로 1984년 극단 탈에서 초파일 기념공연으로 동초 연출로 공연됨.  

 


揭諦揭諦 波羅揭諦 아제아제 바라아제
"가자 가자 넘어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있다. 있다. 모두 있다. 바로 지금 여기 모두 있음에 눈뜨게 하옵소서."
반야심경을 요약해서 찾는 이가 반복하기 쉽게 만든 말이다. 반복으로 오랜 믿음이 씻겨나가고 스승의 가리킴에 가슴이 열리도록 하는 말이다. 그렇게 문득 앎이 일어나게 하는 주문이다. 반야심경의 마지막 이 부분을 바로 이해하려면 수많은 수행에 관한 환상과 믿음을 내려놓고 '수행'의 본질을 바로 알아야 한다. 수행은 뭔가를 얻기 위한 방법이 아니다. 얻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이다. 진리를 찾기 위해 지금 여기가 아닌 어딘가 피안(彼岸)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진리는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있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이다. 있는 그대로의 진리가 드러나기를 바라는 간절함의 표현이다. 이것이 수행의 본질이다. 이미 여기 지금 모두 있기 때문이다. 중생도 없고 부처도 따로 없다. 사물도 사물을 바라보는 '나'도 당신이 믿는 모든 다른 세상도, 극락도 지옥도, 모든 신들도, 브라흐마도 비슈누도 시바도, 정말 어떤 예외도 없이 모두 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있다.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다. 삼세제불이 정확히 아는 사실이다. 이 사실에 눈을 떠라. 이 사실이 관세음보살이다. 이 진리가 관세음보살이다. 그렇게 관세음보살이 드러난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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