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춘근 '민들레 바람되어'

clint 2025. 1. 1. 08:51

 

 

 

바람 속에 날아가는 남편의 고백, 시간과 함께 이해하는 아내의 마음.

해를 거듭하며 나이가 들어가는 남편과 민들레꽃을 좋아하는 소녀 같은 감수성을

지닌 채 젊은 모습을 간직한 아내. 둘의 엇갈린 대화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각자가 간직해 온 비밀, 오해 그리고 사랑,,

그러던 어느 해, 한 평생 애증으로 살아온 노부부가 무덤가에 새로이 들어오고

남편과 아내는 그들을 보며 많이 늦었지만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를 나누는데…   

 

<민들레 바람되어>는 일찍 사별한 아내의 무덤을 무대배경으로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고

아내를 찾아와 대화하는 형식이며등장인물은 살아있는 남편, 죽은 아내, 

그리고 아내 옆에 무덤의 감초 노부부이다.

 

 

 

 

 

아내가 죽은지 약 2년 뒤, 아내가 있는 곳을 꽃다발과 함께 찾은 안중기

아직 한참 어린 아이를 위해서라도 재혼을 허락받으러 온다. 

곧 그녀가 올 거라며 녹음기를 켜두고 떠난다.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겠다며

지금은 무엇보다 신중해야 된다며.. 그런 얘기를 듣는 아내는 혼란스럽다. 

그동안 자기가 못했던 것 같고. 불러 봐도 붙잡아 봐도 대답이 없다. 

그런 아내는 답답하기만 하다. 

한참 세월이 흐른뒤, 계절도 바뀌고.. 다시 찾아온 남편. 새 아내가 있지만, 

말 못할 고민은 처음 아내의 무덤에서 주저리주저리다. 

승진 탈락한 애기며, 아내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재현까지 귀여운 남편의 모습에

아내는 웃고 있다. 그리고 아이 얘기에 한번만 다시 만져보고 안아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아내는 몹시 답답하고 슬프다

세월이 또 흘러 흘러, 중년으로 접어든 남편. 회사에서는 책임자급으로 성장해 있었다. 

하지만 가정생활, 아내와 자식한테는 좋은 남편, 아빠가 못하는 모양이다. 

말 못할 고충들을 또 와서 주저리주저리 말한다. 그런 남편을 위로하는 아내... 

 

 

 

 

그리고 다시 찾은 남편은 아내를 몹시 처절하게 그리워한다. 

하지만 더 이상 볼 수도 잡을 수 도 없다. 그냥 사진을 보며

예전 아내의 유품을 보며 그리워하며 슬퍼할 뿐이다.

또 다시 세월은 흘러 흘러 이제는 서있기조차 불편한 노인 모습의 안중기가 나타났다.

허리가 굽어지고 눈도 떠지지 않고 글자도 잘 안보이며 소주를 따르는 손은 수전증까지.. 

재혼한 아내와도 이혼하고, 하나뿐인 딸아이도 결혼시키고 이제는 진짜 혼자 남은

쓸쓸하고 외롭고 힘없는 노인이다. 아내의 무덤을 찾아 마지막으로 안아달라며 손을 뻗치는

그의 모습이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자기가 기댈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며..

마지막 장면은 다시 결혼하기 전 아내와 첫 만남 때로 돌아가서, 아내가 좋아하는 것을

미리 알아 호감을 얻는 노력하는 안중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사랑으로 시작한 극은 사랑으로 끝이 난다.

 

 

 

 

 

'민들레 바람되어'는 늘 옆에 있어서 깨닫지 못하는 소중한 것들에 대한 반성문이다. 우리는 항상 소중한 것은 잃고 나서야 소중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민들레가 홀씨 되어 날아가 버리고 나서야 예뻤던 민들레를 기억하게 되는 것처럼. 아직 자신의 옆에 그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손잡아 주면 좋겠다. 안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어도 좋다. 타박하지 말고 꾸짖지 말고 등 돌리지 말고 아무런 조건 없이 말이다.

이 작품은 평범한 남자 '안중기'의 일생을 통한 삶과 사랑, 그리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이 시대 부부들이 공감할 만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관객의 눈에만 보이는 아내를 향한 남편의 독백 형식으로 한 남자의 일생과 사랑이야기가 이어지는,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구성의 연극이다. 원치 않는 아내의 진실을 알게 된 주인공, 그 이후 자신의 사랑도 의심 하지만 그래도 꿋꿋이 그 사랑을 지키려 하는 평범한 남자의 모습을 사실감 있게 표현하여 삶의 아름다움을 돌아 볼 수 있게 하는 여운을 남겨준다.

 

 

 

 

 

박춘근 작가는 "결혼을 하고 아이가 둘인 아빠인 나는어느 날 문득 내가 아내, 그녀 자체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 만들어진 또 다른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오해'도 물론 사랑의 한 요소일 수 있지만'사랑은 없다." 과연 남편은 아내를 정말 사랑한 걸까? 라는 화두와 함께 맛깔스런 대사로 관객의 가슴속에 다가간다.

 

 

 

 

작가인터뷰 

Q. 2008년 초연 이후 작품과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

작품은 조금씩 변했습니다. 그때마다 이유가 있었는데 아마 제가 변한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사이 아이가 하나 더 생겼고, 극중 남편의 나이가 되어가고 있지요. 작품의 운명을 작가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좋은 배우들과 계속해서 이 작품을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는 예상 못했습니다. 공연을 통해 알게 된 부분도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남편보다 아내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Q. 작품을 쓰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부분

작품 속에 커다란 사건이 휘몰아치듯이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떤 변곡점이 있기는 했지요. 1장을 써놓고, 사건으로 밀어붙일 것인지, 그들의 조곤조곤한 인생으로 조탁할 것인지를 두고 제 속에서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조금 어려운 선택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지점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Q. 주인공 안중기와 닮은 점이 있다면?

어디선가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전혀 없다고 했는데, 억울하게도 잘 믿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굳이 저와 비슷한 인물을 꼽자면, 노부인에 가깝지 않을까요? (농담입니다) 조금은 보편적인 인물, 이야기를 찾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특정한 누구의 이야기라기보다 우리의, 당신의 이야기이기를 바랐습니다. 혹시 극중 인물이 누군가와 닮았다면 그건 그들이 우리의 어느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Q. 중장년 관객들이 보았을 때 공감할 수 있는 장면(또는 대사)

어떤 장면 또는 대사가 아닐 것 같습니다. 공연은 고작 수십 분 안에 끝날 것입니다. 하지만 무대는 수십 년이 흐르지요. 장면과 장면 사이, 그사이에 흐르는 수십 년의 이야기를 함께 채워가길 바랍니다. 언젠가 아는 어르신이 공연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들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네.” 한참 그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을 생각했습니다. 어르신의 삶을 정보로는 알고 있지만, 제가 어찌 그분의 삶을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 들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들을 수 없는 사람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신 어르신을 생각하며 이 작품이 조금은 위로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Q. 작품을 본 관객이 어떤 메시지를 얻어갔으면 하는지

어떤 특정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을수록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다소 특정한 메시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그래도 그 메시지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어떤 계기나 변화 앞에 놓이신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게 이 작품은 계속 그랬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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