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철희 '진천사는 추천석'

clint 2025. 1. 3. 17:04

 

옛날 옛날 한 옛날.
충청북도 진천 지방에 아내와 딸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는 추천석이란 자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승사자의 실수로 동명이인인 '용인 사는 추천석'을 대신해
저승으로 끌려가게 되는 일이 터진다.
염라대왕의 성화 끝에 저승사자들은
'진천 사는 추천석'을 다시 이승으로 되돌려 보내나 
그의 육신은 이미 장사 되어 땅에 묻히고 말았고...

 



작가의 글 - 이철희
<진천이 추천하는 진천 추천연극 진천사는 추천석>은 진천의 대표 설화인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을 극화한 작품으로 살아서는 진천 살고 죽어서는 용인에 묻힌다는 뜻이다. 저승사자의 실수로 '용인 사는 추천석'이 아닌 '진천 사는 추천석'을 저승에 잘못 데려오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루는 소동극으로 세대를 아울러 누구나 쉽게, 함께, 즐거이 즐길 수 있는 연극을 만들어 보자는 목표 아래 쓰여졌다. 또한 굴곡 많은 인생을 산 진천사는 추천석의 일대기를 엿보며 '고통스럽고 지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낭만적이란 말인가.'라는 메시지를 역설적으로 담고자하였다. 충청도 사투리와 마당놀이 형식이 적극 활동된 희곡을 통해 우리 설화의 현대적 변용의 가능성과 한계 없는 연국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웃음을 통한 삶의 통찰과 긍정, 이철희 희극의 힘! - 백로라(연극평론가)
우리 공연계에서 새로운 주제와 형식을 시도한 '희극(Comedy)'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는 의외로 흔치 않다. 널리 알려진 셰익스피어와 몰리에르의 대표적인 희극 몇 편이 반복적으로 공연될 뿐, 동시대 번역극이든 창작극이든 참신한 신작이 소개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희극의 영역에 도전하여 '충청도식 패러디 연극을 추구한다고 평가되는 작가겸 연출가 이철희의 최근 공연활동은 상당히 눈길을 끈다. 작품에서 유독 '충청도'가 강조되는 것이 흥미를 유발하는데, 이것은 그가 국내외 고전들을 과감하게 해체하여 희극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특히 충청도의 특정 장소, 충청도 사투리, 충청도 스타일의 능청스러운 유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데서 연유한다. 충남 조치원을 배경으로 한 <조치원 해문이>(<햄릿> 원작), 충남 홍성을 배경으로 한 <닭쿠우스>(<에쿠우스>원작), 충남논산을 배경으로 한 <옛 전통의 새로운 움직임-맹>(<맹진사댁 경사>원작) 등은 그 대표적인 예다. 이철희 작품의 희극성의 원천을 이루는 키워드가 '충청도'라 할 때, 최근작 <진천사는 추천석> (2024. 7월, 여행자극장)은 그러한 지역성이 한층 전경화된 경우다. 무엇보다 이것은 진천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설화를 바탕으로 극적 서사를 창조한 데서 연유할 것이다. 한국적 전통과 지역적 특수성이 강하게 환기되는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은 관객들에게 상당히 보편적인 웃음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진천사는 추천석>은 진천의 설화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을 바탕으로 구성된 것이다. 이 사자성어는 살아서는 진천 땅이 좋고, 죽어서는 용인 땅이 좋다' 라는 뜻인데, 남의 육신으로 살아야 했던 진천 추천석의 설화로부터 유래한 것이라 한다. 이 극은 저승사자가 진천 사는 추천석을 용인의 추천석으로 오인하여 저승에 데려가는 데서 출발한다. 이름과 생년월일이 같아서 발생한 해프닝이자 실수다. 희극에서 오인의 행위는 흔히 웃음을 유발하는 희극적 장치로 활용되며, 이로 인해 초래되는 세계의 불균형과 무질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일련의 사건들을 불러온다. 추천석은 염라대왕의 심문과정에서 다른 사람과 저승행 운명이 바뀐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이미 묘를 쓴 상태라 육신으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저승사자들은 용인 사는 추천석을 저승으로 데려오고 그 육신에 진천 추천석이 들어가 살게 된다. 이로써 진천 추천석은 다른 사람의 몸으로 살게 되지만, 외양과 실제의 불일치 때문에 또 다른 오해와 갈등이 초래된다. 추천석이 진천의 아내와 딸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힘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추천석을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으로 오인하거나 그 행동을 오해하는 희극적 상황이 유발되는 것이다. 
결말에 이르면 재판극이 벌어진다. 진천과 용인의 가족들이 서로 추천석과 함께 살겠다며 추천석의 거취를 판결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복잡한 상황에 갈등하던 사또는 저승사자의 조언에 따라 최종판결을 내린다. 추천석이 살아있을 때는 진천에 살고, 죽어서는 용인 땅에 묻히게 하라는 것이다. 졸지에 추천석과 생이별을 하게 된 용인 가족들은 판결에 불만을 품지만, 진천 추천석의 딸과 용인 추천석의 아들이 서로 사랑에 빠졌다며 혼인을 알리면서 훈훈한 마무리를 하게 된다. 희극의 결말답게, 결혼식이라는 축제 형식을 통해 모든 갈등이 해소되 고 서로 화해하며, 조화와 질서를 회복하면서 막이 내린다.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안겨주는 이철희 희극의 특징을 단적으로 지적한 표현이다. 이철희 연극의 '재미'가 연극성과 놀이성에서 비롯 된다면, 짠한 정서적 울림은 인간과 삶에 대한 작가적 통찰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전자가 공연의 형식과 연출 방법과 관계된다면, 후자는 희곡 텍스트, 캐릭터, 그리고 찰진 대사와 관계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연극'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며 어떠한 방식으로 무대 위에 구현되는가? 사실상 연극성에 관해 논의하자면 한이 없겠지만 다소 주관적으로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사실성 혹은 현실성(Reality)과 대립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연극하고 있네' 라고 이야기할 때, 그것이 꾸며낸 것, 허구, 가짜를 의미하게 되는 것은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연극성'이란 결국 현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이자 연출의 독특한 연극적 상상력이며 고유한 미적 전략과 긴밀하게 관계된다고 할 수 있다. 연극적 상상력을 통한 무대연출 연극성, 희극성, 놀이성 <진천사는 추천석>은 무대 뒤쪽과 양쪽에도 좌석을 배치하여 일종의 원형무대와 같은 구조를 취한다. 이로써 배우들은 자유롭게 무대와 객석 사이를 넘나들면서 의도적으로 연극적 환영을 깨뜨린다. 이러한 연출 방법은 공연대본의 무대 설명부분에 '배우라는 존재보다 더 미학적인 장(場)과, 정확한 면(面)을 구현해낼 수 있는 무대장치는 없다' 라고 밝힌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철희는 무대와 객석, 배우와 관객, 극적세계와 현실세계를 뚜렷하게 구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배우의 대사와 연기만으로도 자유로운 연극적 상상력을 통해 그 어떤 세계도 창조해낼 수 있다는 관점을 보여준다. 그의 연극이 특별한 무대세트 없이 진행된다거나 암전 없이 신속한 장면 전환을 보여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연출적 관점은 상당히 연극적이면서도 미학적인 장면을 창조한다. 추천석의 저승행을 신체동작의 이미지로 표현한 첫 장면은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배우가 바닥에 누워 원을 그리며 노를 천천히 젓는 동작은 감각적이면서도 시적인 이미지를 연출한 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이외에도 저승사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이승과 저승을 빠르게 왕래하거나 아들이 숲에서 맹수와 싸우는 장면은 시공간을 비약하거나 과장된 액션을 통해 연극성과 희극성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와 아울러 놀이성이 드러나는 장면도 주목된다. 추천석의 1인 2역과 배우들의 1인 다역의 연기는 관객의 눈앞에서 순간적으로 캐릭터가 변신하는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관극의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연극성이 놀이성의 특징을 갖게 되는 것은 그것이 무대 위에서 마치 놀이를 하듯이 자유롭고 거침 없이 발현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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