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수전 글래스펠 '앨리슨의 집'

clint 2024. 6. 13. 05:51

 

 

 

《앨리슨의 집 (Alison's House)》은 1930년에 수전 글래스펠이 쓴 마지막 장막극으로

1931 년 퓰리처 상 수상작품이다. 이 작품의 퓰리처상 수상이 많은 논란을 낳았을

정도로 발표 당시에는 작품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다. 그러나 오랫동안 잊혔던

글래스펠과 그녀의 극작품이 최근에 다시 발굴되고 조명받으면서 이 작품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2000년에는 뉴욕 민트 극단,

2009년에는 오렌지 트리 극장에서 이 작품이 호평 속에 리바이벌 되었다.

 

 

 


작품에서 주인공 앨리슨은 죽은 지 18년이 된 시인으로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을 모델로 하고 있다. 디킨슨이 그랬듯이 앨리슨 또한 평생 거의 집에서 칩거하며 시를 썼다. 1886년 디킨슨이 죽은 다음에 그녀의 여동생이 숨겨진 시들을 발견하면서 그녀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내려졌다. 이 작품에서도 엘리슨의 집이 남에게 넘어가는 19세기의 마지막 날 그녀의 숨겨 놓은 시가 발견된다. 디킨슨을 모델로 한 이 작품에는 디킨슨뿐만 아니라 20세기 초에 시대를 앞선 예술가로서 활동해야만 했던 글래스펠 자신의 삶의 모습들도 담겨 있다. 이 작품은 디킨슨이 살았던 매사추세츠 주 애머스트(Amherst)가 아니라 글래스펠의 고향 아이오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강둑에 있는 집은 아이오와 주 버펄로에 있는 글래스펠의 남편 쿡 가문의 집과 비슷하다. 이미 결혼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 글래스펠의 전기적 사실도 앨리슨이 유부남을 사랑한 이야기에 녹아 있다. 디킨슨에게는 한 살 많은 오빠 오스틴, 여동생 라비니아가 있었고 디킨슨이 사망한 후 그녀의 시를 발굴해 출판한 사람은 여동생이었다. 이 작품에서 앨리슨, 애거서, 스탠호프의 관계는 디킨슨의 형제자매 관계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앨리슨은 죽은지 이미 18년이 되었으며, 그녀를 마치 신처럼 숭배하며 그녀의 기억을 지켜온 애거서 또한 기력이 쇠하고 건강이 악화되어 2막에서 사망하기 때문에, 애거서가 작품에서 63세인 존 스탠호프의 여동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줄거리

19세기의 마지막 날, 이 집이 외부인에게 팔려 헐리게 되는 시점에서 스탠호프

가문 사람들은 앨리슨이 살았던 집과 방에 대한 만감에 휩싸여 이사 준비를 한다.

이때 시카고의 신문기자인 놀즈가 등장해 앨리슨이 살았던 집과 방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고 요구하면서 이 가문과 앨리슨에 얽힌 이야기들이 하나씩 밝혀진다.

관객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놀즈는 외부인의 눈으로 전통과 명예를 지키고,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을 지난 세기의 시간과 함께 묻어 버리려는 스탠호프

집안의 시도에 맞서며 숨겨진 사실을 캐내려고 한다.

놀즈는 지금까지 발표된 시가 앨리슨이 쓴 시의 전부인가 하는 질문으로

극의 갈등을 촉발한다. 외부인이 들어와 신성한 기억으로 간직된 앨리슨의

시인으로서 명예와 명성에 도전하는 사건이 터지자 식구들 각자 다른 반응이고,

실제로 앨리슨이 쓴 연애시가 발견되었을 때 그걸 어떻게 처리할까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반응 또한 달라진다. 처음부터 기자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스탠호프는 앨리슨이 자신만을 위해 쓴 시이므로 공개할 필요 없다 생각하고,

앨리슨의 시의 존재를 알면서 18 년 동안 지켜온 애거서는 심지어 집을 불태워

서라도 그것이 남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 한다.

그러나 스탠호프의 자녀인 에벤, 엘사, 테드, 그리고 그의 비서인 앤은

앨리슨의 시가 단순히 그녀의 것만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거란 입장으로

그녀의 시를 출판하자는 의견이다. 젊은 사람 가운데 루이스만이 유일하게

기자가 와서 과거를 들쑤시는 일에 민감하다. 왜냐하면 고모인 앨리슨이

유부남과 연분이 있었는데 올케인 엘사마저 친구 마거릿의 남편과 도망쳤기에.

그녀는 기자가 다시 과거를 들추는 일이 가문의 명예에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스탠호프라는 성을 가지고 자랄 자식들에게 미칠 악영향을 염려한다.

앨리슨의 유작인 시를 두고 세대 간의 의견이 갈리는 것처럼 사랑에 대한

태도에서도 구세대와 신세대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앨리슨은 하버드대학 교수인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지만 집안의 명예와 전통을 위해 그 사랑을 포기하고

평생 혼자 살아야만 했다. 앨리슨이 그 남자를 따라 떠나지 못하게 말렸던

스탠호프 또한 앤의 어머니와 사랑에 빠졌으면서도 가정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그 사랑을 외면하고 평생 부인과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야만 했다.

자녀 세대에 속하지만 에벤은 아들로서 가문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구속받는 그는 루이스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 같지 않으며 연말무도회에도

가지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1년 정도 가족을 떠나서 다른 곳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앨리슨이 살아있을 때 이것저것 글을 써 왔으나 결혼 후에 중단했다면서

아버지와 앨리슨처럼 가족과 전통을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이와 대조적으로 엘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떠난다.

그로 인해 가족들이 힘들어하고, 특히 루이스는 그녀를 강하게 비난한다.

왜냐면 상대가 바로 루이스의 친구인 마거릿의 남편이었고 엘사가 유부남과 도망쳐

가문의 명예에 먹칠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엘사는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앨리슨 고모가 하지 못한 일을 감행했다. 스탠호프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

앤 또한 그날 처음으로 집에 찾아온 기자 놀즈와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에

몸을 맡기기로 결심한다. 앤은 어머니가 스탠호프와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전철을 따르지 않기로 결심하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도록 자신을 허용한다.

앤을 딸처럼 사랑하는 스탠호프는 놀즈가 찾아와서 앤을 데리고 나가려 하자

그에게 앨리슨이 소유했던 에머슨 시집을 주면서 그들을 격려한다.

앨리슨이 쓴 사랑의 시는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간다.

스탠호프는 그 시를 앨리슨 만의 시로 간직하려 하지만  엘사와 앤의 설득으로

그 시가 자신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그러한 아픔을 평생 안고 사랑하는

모든 여성에게 바치는 시라는 것을 깨닫는다. 애거서 또한 마지막에 시를

엘사에게 준다. 그날 처음 만난 사람과 사랑에 빠진 앤조차

"여자니까요. 앨리슨이 여자들을 위해서 라고 말했으니까요" 라고 말한다. 

그녀는 계속해서 앨리슨의 시가 모든 사랑에 빠진 여성을 위한 시라는 걸 주장한다.

마지막에 스탠호프는 선물을 만들어 주기를 좋아했던 앨리슨이

엘사에게 시를 남겨 주었다고 생각하고

"엘사를 위해…. 앨리슨으로부터” 라는 대사와 함께 엘사에게 시를 준다.

 

 

 

글래스펠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단막극 《사소한 것들(Tritles)》에서처럼 이 극의 주인공인 앨리슨은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죽은 지 이미 18년이나 되었지만 부재하는 그녀의 시와 삶은 남아 있는 가족 모두에게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소한 것들》에서 남편을 죽인 혐의로 유치장에 갇힌 라이트 부인의 집안을 조사하던 여성들이 그녀가 부재한 공간에서 그녀가 감내하며 살아야 했던 남편의 억압과 폭행, 인고의 세월들을 읽어낼 수 있었던 것처럼 《앨리슨의 집》에서도 등장인물들은 시인이 부재하는 방에서 발견한 시를 통해 세상에 감춰졌던 그녀의 삶의 다른 면을 발견하며 그것을 자신들의 삶에 적용한다. 사회의 인습과 시선 때문에 자신의 사랑을 감추고 즉음과도 같은 세월 동안 방안에 갇혀 살아야 했던 시인의 작품은 이제 스탠호프의 결단을 통해 그녀의 방에서 나와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송가로 다시 생명력을 찾게 된다. 《앨리슨의 집》 또한 수십 년의 잊힌 세월을 지나 페미니즘 비평가들에 의해 재조명돼 그 가치와 진가를 찾고 수전 글래스펠의 대표작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사실 역시 흥미롭다.

 

 

 

 

작가 소개
수전 글래스펠은 수십 년 동안 간과되고 잊혔다가 다시 발굴된 작가다. 1876년 아이오와 주 대븐포트(Davenport)에서 태어난 그녀는 남편인 조지 크램 쿡(George Cram Cook)과 함께 프로빈스타운 플레이어스(Provincetown Players)라는 극단을 창단했다. 사실상 미국의 현대 연극을 출범시킨 공로를 인정받아야 하지만, 그녀는 유진 오닐의 그늘에 가려 그동안 중요한 작가로 인정받지 못 했다. 이 극단은 7년간 존속하면서 52명의 작가가 쓴 약 100 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으며 그중 오닐이 14편, 글래스펠이 11 편을 썼다. 오닐이 트렁크 한가득 대본을 가지고 글래스펠에게 찾아가 《카디프를 향해 동쪽으로(Bound East for Cardiff)》라는 작품을 글래스펠과 남편이 사는 집 거실에서 읽음으로써 극작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한 것을 생각하면 오닐이 미국의 위대한 극작가로 탄생한 배후에는 글래스펠의 공로가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후 미국연극의 아버지로 평가되고 연구되어 온 오닐에 비해 글래스펠의 이름은 잊히고 말았다. 최근 페미니즘 비평가들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해 그녀를 다시 부각하는 작업이 진행되어 온 덕분에 수전 글래스펠 학회도 창립되고 연구서와 논문 또한 많이 발표되었다. 글래스펠의 집안은 그녀가 태어난 후 가세가 기울어 그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결국 환자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녀의 가족 중 힘 있고 강한 여성들이 그녀의 역할 모델이 되었고, 그녀의 작품에는 이러한 등장인물들이 출현한다. 전체 여성 중 2퍼센트만이 대학에 가던 시절에 드레이크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1899년에서 1901년 사이에 《디모인 뉴스》에서 기자생활을 한다. 그녀가 이 시절에 취재한 호색 부인의 남편 살해 사건은 후에 《사소한 것들》의 소재가 되었다. 시카고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다시 대븐포트에 돌아온 그녀는 1907년에 조지 크램 쿡과 운명 적으로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부유한 가정의들로 하버드대학교와 유럽에서 공부한 후 아이오와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쿡은 당시 글을 쓰기 위해 고향에 돌아온 상태였다. 글래스펠을 만나던 시점에 그는 첫 번째 부인과 이혼을 진행하면서 시카고의 저널리스트인 몰리 프라이스와 두 번째 결혼을 추진하고 있었다. 1908년에 쿡은 프라이스와 결혼했고 글래스펠은 그들의 결혼 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대븐포트를 잠시 떠났다. 두 사람은 결국 1913년에 결혼했다. 유부남과 나눈 사랑과 그로 인한 스캔들은 《앨리슨의 집》에 암시 적 으로 반영되어 있다. 두 사람은 1916년 예술가들의 메카인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1916년에 그들은 프로빈스타운에서 극단을 공식 창단하고 그리니치빌리지의 맥두걸 스트리트에 극장을 세웠다. 극단의 주요 작가인 유진 오닐과 글래스펠은 연극의 형식, 소재, 언어 등에 실험성을 도입 하고 미국 연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이 극단의 성공은 다른 브로드웨이 극단과 경쟁을 유발했고 극단이 상업성에 빠져 원래의 정신이 희석되었다고 생각한 글래스펠부부와 단원들은 1년 동안 극단 문을 닫기로 했다. 글래스펠 부부는 평생소원이었던 그리스 여행을 떠나서 그곳에서 2년을 보냈으나 쿡은 뜻하지 않게 병에 걸려 거기서 사망하고 말았다. 홀로 돌아온 글래스펠은 이제 성격이 변해버린 극단으로 돌아가지 않고 소설 쓰기에 전념했고 자신보다 열일곱 살 어린 젊은 작가 노먼 맷슨(Norman Matson)과 살기 시작했다. 그들의 결혼은 1932년에 맷슨이 애나 스트런스 키(Anna Strunsky)와 결혼하면서 끝났고 그 후 글래스펠은 여러 가지 사회 활동에 전념했으나 작품 활동은 몇 편의 소설을 쓰는 데 그쳤다. 그녀는 1947년에 위암진단을 받아 1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1948년 사망했다. 사후 몇 십 년 동안 그녀의 작품은 잊히고 외면 당했지만 열성적인 후대 여성 비평가들의 노력으로 글래스펠은 새롭게 읽히고 공연되는 작가가 되었다. 사소한 것들》과 《앨리슨의 집》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의 삶과 자주성에 대해 선각자의 혜안을 가졌던 글래스펠은 현대 미국 연극을 공부하는데 유진 오닐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가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