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데이비드 해로우어 '블랙버드'

clint 2024. 6. 15. 12:58

 

 

 

암전 뒤 막이 오르면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는 사무실.

두 사람이 서 있다. 두 사람은 서로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고, 말투는 날이 섰다.

이 어색한 긴장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관객은 쉼없이 이어지는

남녀의 언쟁을 따라가야 한다. 그리하여 마주하게 되는 불편한 진실.
그 사건 이후 삶은 평범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남다른 관계를 시작하면서

평범한 삶은 그들을 비껴갔다. 15년 전 성관계를 가졌던 우나와 레이.

당시 우나는 12살, 레이는 40살이었다. 우나가 레이를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레이는 이름을 ‘피터’로 바꾸고 먼 곳으로 이사했지만

우나는 우연히 보게 된 인쇄물에서 희미한 형체만으로도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15년 전 우나의 집에서 있었던 바베큐 파티.

레이는 외로워 보이는 우나에게 말을 걸고 두 사람의 관계는

사회가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선다. 우나와 레이는 외딴 섬마을로 도피행각을

벌이고, 그곳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끝이 난다.

섬에서 체포된 레이는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죄로 6년형을 선고받는다.

우나는 지난 일에 대해 추궁한다.

“그때 왜 가버렸는지 꼭 알아야겠어요.” “몇 명의 소녀와 사귀어 봤어요?”

우나는 레이의 마음이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여자아이에 흥미를 느끼는

로리타 콤플렉스의 발현이었는지 알고 싶다.

레이의 뒤늦은 답변. 담배를 사러 나갔다가 앞일을 고민하느라 바에서

술을 한잔 마셨다고. 돌아와보니 그녀는 사라진 후였다고.

그리고 다른 아이는 없었다고. 그는 당시 우나는 성숙했으며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렸기에 저항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레이가 소아성애증 환자였으며, 우나는 그 희생자였다고 말했다. 아이의 몸을 가졌지만 어른스러운 관계를 원했던 우나의 욕망은 가져서는 안 될 불온한 것이 돼 버렸다. 우나는 레이에 대한 분노를 키워야 했고 자신의 감정을 부정해야 했다. 15년간 자신의 내면, 주위의 시선과 싸워야 했던 우나는 답을 찾기 위해 레이를 찾아온 것이다. 우나는 레이의 말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다. 두 사람이 해묵은 욕망에 휩싸이는 순간 소녀 하나가 레이를 찾아 사무실로 뛰어 들어온다.
무대는 한 번도 전환되지 않고, 음향 효과도 거의 없이 1시간 반 동안 진행되지만 관객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진행된다. 절제에서 격정으로 옮아가는 추상미의 연기, 안정되면서 노련한 최정우의 연기는 관객을 몰입시킨다. 극이 흐를수록 쓰레기가 점점 더 사무실을 어지럽히듯 두 사람의 심정, 과거를 둘러싼 진실, 관객의 해석은 점점 더 얽혀간다.
제목 ‘블랙버드(Blackbird)’는 ‘찌르레기류의 새 이름’ 외에도 ‘노예로 팔기 위해 유괴하다’란 뜻을 지닌다. 연극열전 네번째 작품. 영국 신예작가 데이비드 해로워의 신작으로 로렌스 올리비에 베스트희곡상을 받은 작품이다.

 

 

 

 

David Harrower (데이비드 해로우어, 1966~,영국 에딘버러 출생) 
<블랙버드>는 2005년 '에딘버러 페스티벌' 공식 개막작으로 초청되어 평단과 관객의 극찬을 받은 화제작이다. 작가의 대표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12살 소녀와 40살 중년남자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이 후, 15년 만에 재회한 이야기를 치밀한 심리와 현실적인 대사로 풀어낸 수작이다.

인터뷰
-<블랙버드>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입니까?
 나는 미성년 소녀와 사랑을 나눈 중년남자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관계를 발전시켰으며, 그는 그녀를 19세로 믿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경찰에 체포되기 전까지 유럽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것이 연극의 시작지점입니다. 나는 두 남녀의 캐릭터를 창조했으며, 그들에게 자라온 환경, 부모, 친구, 인생 등을 부여했습니다. 그 둘 사이에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유사한 사건들을 만들었습니다.
- 글을 쓰는 동안 <블랙버드>를 어떤 방법으로 발전시켰습니까?
 <블랙버드>는 캐릭터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작품입니다. 이것은 매우 실험적이고 섬세할 뿐만 아니라 가장 작은 부분에서도 사건의 방향이 바뀔 수 있는 작업입니다. 캐릭터에 대해 더욱더 잘 알게 될수록, 나는 그들을 시험하고, 그들의 욕망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점차 구체화되는 캐릭터들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발전시킵니다. 
- 당신의 작문 스타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떻게 발전되고 있습니까?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저의 작문스타일이 발전되었다고 확신하진 않습니다. 다만 발전된 것은 캐릭터와 그들의 심리를 바라보는 저의 태도입니다. 캐릭터를 통해 감정, 기억, 신념, 사랑, 혐오 동을 이끌어내는 다양한 동기들이 저를 자극하고, 다양한 매력을 전해줍니다.
- 관객들이 <블랙버드>를 본 후, 무엇을 얻어 갔으면 좋겠습니까?
 이 작품은 수많은 해석이 가능한 작품입니다. 저는 이 연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 것뿐입니다. 무엇을 얻어갈지는 제가 아닌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