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막
저승에서 불려 온 탄탈로스의 혼령이 복수의 여신 강제에 못 이겨 자 신의 후손들의 집안을 오염시킨다. 이 탄탈로스는 자기 아들 펠롭스를 잡아 토막 내서 신들에게 대접했던 존재다. 이제 조상이 저질렀던 악행이 되풀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합창단은, 신들에서 관텔로스의 후손들 사이에 악행이 이어지는 것을 끝내달라고 기원한다. 이어서 탄탈로스가 저승에서 받는 별이 묘사된다. (탄탈로스가 저승에서 받는 법은 음식이 앞에 있는데도 먹지 못하고 물이 앞에 있는데도 마시지 못하는 것이다. 작품 초반에 탄탈로스의 혼령이 등장하고 이어서 그가 받는 벌이 묘사되는 이유는 이 작품의 중심 개념 중 하나가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복수의 여신은 탄탈로스의 혼령에게 "이 집을 탄탈로스로 가득 채워라" 명한다.
제2막
아트레우스가 자기 형제에게 복수하자고 자신을 다그친다. 그는 추방당한 튀에스테스와 그의 자식들을 불러들여 거짓으로 화해의 잔치를 열고자 한다. 하인 하나가 그를 설득해서 그런 짓을 못하게 하려 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합창단은 형제가 화해한 것을 기뻐한다. 그러고는 참으로 왕다운 태도는 일시력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제대로 통제하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그들이 볼 때 이상적 삶은 숨어서 평범한 생을 보내는 것이다.
제3막
튀에스테스는 아르고스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려 하지만, 그의 아들들의 대표인 '작은 탄탈로스'가 아버지를 설득해서 귀향하게 만든다. 아트레우스는 형제를 반갑게 맞이하고 그에게 왕가의 의상을 입힌다. 합창단은 아트레우스가 전쟁을 준비하다가 갑자기 평화 쪽으로 마음을 돌린 것을 놀랍게 여긴다. 그들은 이어서 행운은 오래가지 않음을 노래한다
제4막
전령이 달려와 아트레우스가 튀에스테스의 자식들을 희생으로 바쳤음을 알린다. 아트레우스는 그들을 도살해서 요리하여 아버지에게 먹었던 것이다. 이 부분에서 긍정 안쪽의 음침한 숲과 소름 끼치는 제단 주변에 자세히 묘사되어, '지상에 구현된' 지옥을 보여준다. 합창단은 태양이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격한다. 별이 지고 우주가 붕괴할 것인지 걱정한다.
제5막
튀에스테스는 아직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잔치를 이어가려 하지만 기분이 이상해진다. 아트레우스는 상대를 조롱하고 사실을 말한다. 튀에스테스는 신들께 이 만행에 복수해 달라고 기원하지만, 신들은 응답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아가멤논보다 한 세대 위에 있었던 사건을 다룬다. 아가멤논의 아버지 아트레우스가 자기 형제 튀에스테스와 왕권 분쟁을 겪다가 권력을 차지한 화해 하자며 자기 형제와 형제의 자식들을 고향으로 귀환시키고는 그 자식들을 잡아 아비인 튀에스테스에게 먹인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세네카 비극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플롯이나 인물, 설정, 언어적 표현 등 모든 요소가 효율적으로 결합되어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세네카의 비극 중 후기에 속하여 대략 서기 62년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것은 권력의 속성인데, 그것은 일종의 속임수, 우주적 질서의 전복, 지상에 나타난 지옥이라는 부정적 모습이다. 이런 특성이 세네카가 네로 말 년에 직접 겪은 일들을 반영한 것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튀에스테스》는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가 쓴 약 1112행의 기원후 1세기 파불라 크레피다타(그리스 주제의 로마 비극)로, 튀에스테스의 형제 아트레우스가 티에스테스의 아들들을 죽인 뒤 요리로 만들어 연회에 대접하고, 튀에스테스가 자신도 모르게 이 죽은 아들들을 먹어버리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네카의 희곡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티에스테스》는 에우리피데스가 쓴 동명의 더 오래된 그리스어 판본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작품에는 극을 그것의 틀 바깥에서 보는 시선이 중첩되어 있다. 우선 곳 장면부터 복수의 여신(푸리아)이 탄탈로스의 혼령에게 한 장면 한 장면 연출을 지시한다 말하자면 복수의 여신 탈로스의 혼령이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틀을 짜는 셈이다. 한편 그 틀 안에서 아트레우스가 나와서, 튀에스에스를 속이기 위한 이야기를 구상한다. 액자 안에 또 다른 자가 있는 여러 겹의 이야기 형식이다. 아트레우스가 짠 이야기 역시 전체 작품처럼 5막극 형식을 취한다. 한편 아트레우스 자신이 자기 '연극' 속에 '출연하는 부분은 다시 극중극처럼 짜여 있다. 일단 그가 자기 형제를 환영하기 위해 등장하기 전에 일종의 도입부가 있다. 말하자면 '세 번째 도입부'다. 거기에 튀에스테스의 잔치 노래가 이어지고, 아트레우스의 극적 아이러니로 가득한 진실 폭로가 뒤따른다. '채워짐'이라는 개념도 세 단계로 되어 있다. 제1막에서 아트레우스의 짐이 '탄탈로스'로 채워진다. 제2막에서 아트레우스는 자신을 ‘괴물’로 채우고자 한다. 제4막에서는 아비의 배가 자식의 고기로 채워진다. 이렇게 중첩된 틀로 인해 생기는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게 설명한다. 새로운 시작이 세 번이나 겹치지만 끝나는 곳은 하나이기 때문에 안으로 더 들어가기는 힘들고 독자들은 더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바람의 어떤 '예술에 의해 들어지는 중이라는 느낌을 일으킬 수 있다. 바깥에서 안으로 좁혀 들어 갔다가 작품이 끝나는 순간 전체를 다시 돌아보면서 안에서 바깥으로 나오게 되어 이 세계의 전체상을 얻게 된다는 효과를 첨가할 수도 있다. 과거에서 현재로 우주적 자원에서 지상의 왕국으로 아르코스에서 집안 깊은 으슥한 장소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며 전체를 둘러보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 그려진 튀에스테스의 성격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엇갈린다. 그가 스토아 현자로 그려졌다는 설, 그가 스토아적 인물을 증가한다는 설, 튀에스테스가 세네카 자신을 반영한다는 설 등이다. 이렇게 여러 해석이 가능한 것은 여기 그려진 튀에스테스에게 그런 여러 모습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동시에 망명자, 탄원자, 왕족, 희생양이다. 이런 다면성은 여러 의상을 실제로, 또는 언어적으로 바꿔 입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아마도 이 다면성 뒤에는 선배 작가들이 같은 주제로 쓴 작품들의 영향도 있을 텐데, 현재로서는 작품들이 모두 사라져서 직접 확인하기는 어렵다. 학자들은 특히 로마 작가 악키우스의 <아트레우스>가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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