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지난 100여년 근대사 중 일제강점기는 절대 잊히지 않는 아픈 역사이다.
1910년 한일합방을 시작으로 1945년 8월 15일 광복에 이르기까지 35년 동안의 질곡의 시간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을 여실히 드러나게 했다. 투쟁과 복종, 충심과 배반, 이타심과 이기심, 정의와 불의 그리고 선과 악이 공존하며 그 시간들을 채워갔다. 많은 이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 목숨을 던졌고, 또 많은 이들은 시대에 편승해 그럭저럭 침입자에 순응하며 목숨을 부지했다. 배신과 이기심으로 사욕을 챙긴 이들에 대해 말해 뭐하랴. 목숨을 기꺼이 내던지며 독립을 갈망했던 안중근 등 그 시절 영웅들이 더 빛나게 기억되는 이유이다. 아들 ‘준생’의 시각으로 바라본 ‘영웅 안중근’을 그린 작품이다.
안중근 장군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당일 새벽, 정체불명의 한 남자가 그의 은신처에 숨어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바로 안중근의 차남 ‘준생’이다. 준생은 아버지 안중근에게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다면 참혹한 미래가 될 거라며 거사를 포기할 것을 종용한다. 이토히로부미의 저격을 두고 중근과 준생은 역사 앞에 처절한 논쟁을 펼친다. 중근의 미래를 암시하며 말리는 준생의 독선적인 질타가 대한독립을 위한 대의를 저버린 기회주의적인 군상들을 대표한다.
실제 ‘안준생’은 태어나기 전 아버지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위해 블라디보스톡으로 떠났기 때문에 아버지를 잘 알지 못했다. 안중근의 거사 이후 어머니를 따라 만주, 시베리아 등지를 떠돌다가 중국 항저우에서 대학공부를 하고, 상하이에서 사업을 했다. 이때부터 친일파로 변절했다고 한다. 1939년 10월 7일 만선시찰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했는데, 이때 이토 히로부미의 위패가 있는 박문사(現서울시 중구 신라호텔 자리에 있었던 일제의 사찰)에서 아버지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한 것에 대해 사죄하는 행위를 해 훗날 ‘친일파’로 비판을 받는 인물이다. 극중 인물 ‘준생’은 역사와 타임슬립, 팩트와 픽션이 만나 만들어진 인물이다. 연극 <준생>은 두 남자의 연민과 절망을 통해 시대적 아픔을 반추하고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돌아보게 한다. 투쟁과 복종, 충심과 배반, 이타심과 이기심, 정의와 불의 그리고 선과 악 등 수많은 인간의 본성 중 당신은 어느 것에 집중하겠는가?
작가의 글
「준생」은 커다란 질문입니다. 「준생」의 집필 과정은 풀리지 않는 문제를 풀고 있는 듯 막연한 과정이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그 비극이 마치 우리의 일인 것처럼 이렇게 뜨겁고 아플 줄 몰랐습니다. '안준생'의 삶이 거울 속, 내가 되어 나를 바라봅니다. '안준생'을 중심으로 한 '안중근' 가족들의 이야기를 찾으면서 들었던 감정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때로는 분노이기도 했고, 절망 혹은 무력감이기도 했으며, 동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혼란이기도 했습니다. '안준생'의 삶을 비난할 수도, 변호할 수도 없는 우리 자신에 대한 혼란. '안준생'의 이야기는 '안중근'의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안준생'을 통해 '안중근'을 이야기해 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둘을 만나게 해보자 했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만나게 해보자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주 분명한, 그러나 굉장히 혼란스러운 질문 하나가 '툭'하고 튀어나옵니다.
"그래서, 안중근 장군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지 말아야 하는 걸까요?"
「준생」은 한때, 명료했으나, 어느새 모호해진 역사에 대한 질문입니다. 「준생」은 분명했다고 믿었던 과거를 반추해 막막한 현재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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