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이하<군인의 행운>)은 칠년전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희극으로 무대는 칠년전쟁 직후, 구체적으로는 2막 2장에 나오는 것같이 1763년 8월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 베를린이다. 따라서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상황을 알 필요가 있다. 슐레지엔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신흥국가 프로이센과 전통적인 강대 국 오스트리아 사이에 벌어진 칠년전쟁은 1756년 프로이센이 작센 공국을 침공함으로써 발발해 1763년 후베르투스부르크 (Hubertushurg) 평화조약으로 끝을 맺는다. 레싱은 이 전쟁 중에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점령군 사령관이었던 폰 타우엔치엔(Tauentzien) 장군의 비서로 근무했고, 또 가장 가까운 친구 가운데 프로이센군의 소령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Ewald von Kleist, 텔하임의 모델)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전쟁을 직접 체험했을 뿐 아니라 군국주의 신흥국가 프로이센군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다.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프로이센을 유럽의 열강 반열에 끌어올린 프리드리히 2세는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되었다.
레싱은 칠년전쟁 직후의 이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전쟁의 후유증을 비판적으로 관찰했다. 평화조약으로 전쟁은 외면적으로는 종결되었지만 전쟁에 휩쓸렸던 독일 국가들, 특히 프로이센과 작센(Sachsen) 주민들 사이의 적대 감정은 쉬 풀리지 않았다. 작센의 귀족 처녀 미나의 우아하고 정열적인 사랑이 명예를 앞세우는 프로이센군 장교 텔하임의 고집을 꺾고 결합하는 이 희극의 줄거리는 프로이센 주민과 작센 주민 간의 화해를 상징한다.
이 작품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레싱이 당대의 시대상, 사회상, 문학의 조류, 희극 문화의 전통을 조화•통일시켜 등장인물들을 생동하는 인간으로 창조한 데 있다. 우직한 하인, 입심 좋고 약삭빠른 하녀. 허풍선이 군인, 호기심 많고 욕심 많은 여관 주인 등은 유럽 희극에 자주 등장해 전형으로 굳어진 인물이다.<군인의 행운>의 조연들 가운데 여관 주인만 전통적인 전형에 부합될 뿐 유스트, 베르너, 프란치스카 등은 전통적인 틀을 벗어나 개인적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활동하는 개체들이다. 텔하임도 맹목적으로 프로이센군의 이 상인 명예만을 추구하는 희극적 인물은 결코 아니다. 그는 명예라는 허깨비에 홀려 인간적 행복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그는 전후에 죄 없이 수뢰 혐의를 뒤집어쓰고 명예와 재산을 다 잃게 될 위기에 내몰린다.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도 그는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지 않고 비열해 지지 않겠다는 생환신조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눈물겹도록 노력하는 텔하임, 그리고 그의 고결한 인품에 반해 어떻게든 그를 도와주려는 주변 사람들 사이에 마찰이 생긴다. 그런데 그 갈등은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고 웃음을 자아낸다. 그 웃음은 종래 희극에서와 같이 어리석은 주인공의 비이성적인 행위를 보고 웃는 조소가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그 대상으로 삼을 수 있으며 인간적인 성숙을 바탕으로 하는 이해의 웃음, 레싱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인간을 이성적이고 현명하게 만드는 웃음이다. 이렇게 인간적으로 풍부하고 감동적이어서 때때로 비극적인 것도 그 안에 포용하는 희극이,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에 깔고 생성된다.<군인의 행운>이 독일 희극 사상 최초이자 최고의 걸작일 뿐 아니라 찬란한 독일 희곡 문학의 장을 여는 역사적 작품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텔하임은 모든 것을 잃은 처지이기 때문에 사랑하지만 약혼녀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완강하게 버틴다. 이에 반해 미나는 약혼자의 고결한 인품과 자신에 대한 순수하고 열정적인 애정 이외에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입장이므로 약혼자가 버티면 버틸수록 약혼자를 설득하는 데 힘을 쏟는다. 여자가 주도권을 잡고 남자는 방어하는 양상으로 전개되는 이들의 갈등은 결국 사랑싸움이고, 텔하임을 복권시키는 국왕의 친서가 하루 늦게 전달되는 바람에 일어난 원인 무효의 헛소동이다. 그 과정에서 상대를 자신보다 더 아끼는 두 사람의 순수한 애정이 유감없이 드러난다.<군인의 행운>의 진정한 가치는 고귀한 인간성 표출에 있다. 순수한 사랑으로 충만한 고결한 인간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언제나 유쾌하고 흐뭇한 일인 동시에 감동과 교훈을 준다. 이 작품이 끊임없이 관객과 독자의 갈채를 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정이 메말라가고 인간관계의 꽃인 사랑과 우정조차 물신의 지배를 받는 경향이 점점 뚜렷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 작품배경인 18세기 중엽 독일 상황을 잘 모르는 우리에게도 -<군인의 행운>은 가슴 뭉클한 감동과 가르침을 준다.
<군인의 행운>은 1767년 포스출판사에서 나온 《희극<Lustspiele)》 제2부를 통해 세상에 발표되었다.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씽(Gotthold Ephraim Lessing, 1729~ 1781) 2월 15일)은 독일의 극작가,비평가이다. 계몽주의의 대표적 극작가·평론가로서 독일문학·연극의 시조다.
작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의학과 신학을 배웠으나 노이베린 극단에 의해 연극 혁신의 계몽을 받았다. 일찍부터 연극에 관심을 가져 초기의 희극<젊은 학자>(1747년)는 노이베린 극단에 의해 공연된다.
그러나 부채로 인해 레씽은 베를린 대학, 비텐베르크 대학으로 옮겨 다닌다.
그 후 베를린에서 저술가로 출발, 계몽적인 연극 잡지를 발행하는 한편 독일 최초의 시민비극<사라 심프슨 양>을 발표하여 성공을 거둔다. 7년 전쟁을 배경으로 한 1막 비극<필로타스(Philotas)>(1759)를 쓴 이후 돌연 프로이센의 브레슬라우의 총독 타우엔친 장군의 비서가 되고, 한편으로 집필할 재료를 수집해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 〈라오콘〉,〈함부르크 연극론〉등을 구상한다.
그 후 베를린으로 돌아와 예술론<라오콘(Laokoon)>(1766), 군인희극<미나 폰 바른헬름>(1765년 완성, 1767년 출판 초연)을 발표한다. 〈군인의 행복〉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은 독일 최초의 걸작 희극으로 7년 전쟁 후의 정치권력이나 사회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려낸다.
1767년에 함부르크에 국민극장이 창설되자 고문으로 초빙되어 그 2년 동안의 극평 활동과<함부르크 연극론>을 집필한다. 이것은 공연평과 독일연극의 향방을 논한 작업이다. 그러나 얼마 후 이 국민극장의 경영이 실패하자 어느 고위인사의 사서직(司書職)을 보면서 고전 연구에 몰두, 또한 미망인 에바케니히와 47세에 최초로 결혼을 하지만, 불행하게도 1년 만에 사별(死別)한다.
그는 1770년 볼펜뷔텔시로 가서 시의 도서관장이 되고, 이곳에서 그의 연극이론을 그대로 실천에 옮긴 비극<에밀리아 갈로티>를 집필한다. 만년에는 함부르크의 주임사제와 신학 논쟁을 벌여, 루터 정통파의 배격을 받고, 그 반증으로서 사랑과 관용을 테마로 한 비극<현자 나탄(Nathan der Weise)>(1779)을 집필 발표한다. 그의 최후 저작은 〈인류의 교육〉 (1780년)인데 만년에는 건강을 해쳐 사서관사(司書官舍)에서 52세 나이로 사망한다.
레씽은 진정한 의미에서 독일 계몽주의의 완성자인 동시에 독일 시민문학의 기초를 다졌고, 프랑스 고전주의 문학의 영향을 배척해, 독일정신에 입각한 문학과 창작을 몸소 실천한 선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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