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시몬 줄로뜨니코프 '남자는 여자에게로 갔다'

clint 2015. 11. 1. 12:11

 

 

 

 

 

사랑의 지각생들인 지나와 빅또르는 어느 토요일 저녁,

지나의 집에서 만나기로 한다.

만남의 목적은 맞선. 행복한 시작이어야 할 이들의 만남은

빅또르가 30분 일찍 오면서부터 깨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레임에 빠져 미쳐 준비를 마치지 못한 지나는

빅또르에게 화가 나고...우왕좌왕 좌충우돌...

그리고 빠르게 그렇지만 아름답고 행복한 사랑을 시작한다.

 

 

 

누군가와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상대가 없을 때는? 상대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상대를 찾기에 자신은 이미 늦었다고 생각될 때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의 인생에서 행복을 얻기에 지각한 사람들은 서둘러 그것을 찾기 위해서, 다시금 이십 대처럼 힘들기만 한 어둠 속 손더듬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인터넷 결혼정보회사의 광고 문안 같은 질문들을 떠올리게 하면서 작품은 읽히기 시작했다그러나 인간의 삶이 결코 땅바닥을 장식하는 꽃과 같은 의미만으로 흘러가는 건 아니라면살아온 시간들은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족적을 남기는 법이고, 그것은 마치 오래전에 볼펜 잉크로 써서 이젠 글씨들이 희미해져 가는 일기장과도 같이, 누군가에게는 다시 실수하지 말 것을 다그치는 교사 노릇을 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선뜻 들추기 어려운 기억들로 덮여져 먼지가 쌓이기도 한다 빅또르 베뜨로비치와 지나 포드로브나는 둘 다 자신의 사랑을, 행복을 찾기에 지각한 사람들을 서둘러 찾아내고자 한다. 그러나 사랑만큼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키면서도, 그토록 최소율의 법칙에 충실한 일이 또 있을까? 아무리 서두른다 해도, 어느 쪽이든 오해 여지가 남아 있을 때는 참고 기다려야 함을 사랑은 일깨운다. 살아가는 방법에 있어 원숙한 그들은 무척이나 섬세하게, 그렇지만 웃기도록 신속하게 자신들의 사랑을 조율해 간다. 그 행복을 향한 서두름이 그들의 사랑을 천박스럽게 만들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그들을 행복에서 지각하도록 만든 순수함들이 때묻지 않은 채 여전히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상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가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만남에서 소비하는 대부분의 시간은 그 생각을 솔직하고 분명하게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 가식과 허위로 가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적나라하게 밝혀내는 도구 중의 하나가 성()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빅토르 : 바로 그 문젠데, 모르셨던 말이오!

 지나 : 바로 처음부터 알아버리고 나면 분명해지잖아요!!

지니의 당돌하고 노골적인 의사 표현들은 끊임없이 빅또르에게 그러한 가식을 벗어던진 것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런 문제에 부딪혀 보지 않았던 빅또르의 입장에서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빅토르 자신의 말처럼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약이 아니라, 서로 간의 관계를 넓혀가야 하는 것이라면 사람들에게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약은 결국 사랑인 것이며, 따라서 지나의 요구는 옳은 것이다 작품 말미에서 빅또르가 양의 구두를 찾는 모습은 체홉의 벚꽃동산에서 이상주의자인 뜨로피모프가 구두를 찾을 때의 모습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 체홉이 만년 대학생인 뜨로피모프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상주의적인 이야기들에 대해 구두를 찾지 못해 애쓰는 모습으로 풍자하고 있듯이 최후까지 자신의 가식을 버리지 못하는 빅또르 역시 구두 때문에 당혹스런 상황에 처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그 구두의 분실은 지나와의 사랑의 순간에, 즉 가장 솔직했던 순간에 일어났음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시묜 이싸꼬비치 즐로뜨니코프는 러시아 태생 (1945년. 9월)의 작가지만 현재는 이스라엘에 거주하고 있다 한다. 그도 가식을 벗을 수 있는 여자를 찾아간 것일까?'
'춤추실래요?' 와 ' 그도 가식을 벗을 수 있는 여자를 찾아간 것일까?'는 의미면에서 같은 낱말이다.
그 의미가 갖는 상징성은 "너는 네 마음의 쉴 곳, 고향을 찾았느냐?"는 밀란 쿤데라의 신간 '향수'와 같은 동의어이다.
남자에게 있어 여자는 남성의 고향이다. 여자에게 있어 남성은 여성의 고향이다. 그러한 '고향' '쉴 곳'을 찾아가는 길은 이론상 쉽지만 현실에서는 늘 멀고 어렵고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돌아가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왜? '서로가 서로에게 갖는 가식과 허위로 가리어져 있기 때문이다'라고 작가는 극중 지나 표드로브나의 대사를 빌려 여과 없는 주저로 까발려버린다.
빅또르 : 바로 그 문젠데, 모르겠단 말이오!
지나 : 바로 처음부터 안아버리고 나면 분명해지잖아요!]

 

 

 

러시아 특유의 장문의 긴 대사를 여과 없이 던지면서도 상황 상황을 지루하지 않게 , 다음 장면을 기대할 수 있게 궁금증을 자아내며 씹어 먹는 대사로 관극하게 하는 마력이 그에겐 숨어 있었다. 극적 상황은 결혼을 위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아슬아슬한 감정의 교류와 갈등이지만 ,표현적으로는 '코미디'요소를 갖고 극 전반이 지배되어, 극에 등장하는 배우의 타는 가슴과는 달리 객석의 관객은 등장인물의 그러한 갈등의 골이 깊어 가면 갈수록 미소가 함박웃음으로 변해 가는 이질적 상황의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조금 답답한 사람, 마치 공무원적 사고방식으로 틀에 박힌 것만 알고 사는 사람.('공무원'이 아닌 '공무원적 사고방식'임에 주의할 것) 그러한 그는 가식과 허위의 대명사이며 , 정녕 하고 싶지만 체면과 명예, 사회적 관습에 얽매여 마치 밀란쿤데라의 표현처럼 ' 무지한 나이에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향수'속의 '이레나'와 같은 모습이 바로 등장인물 두 사람 남녀였다. 빅또르의 '마마보이 적 성격'과 지나의 '화끈한 성격'탓으로 모두 맞선자리에서 툇자를 맞는 '지각한 결혼' '지각생 연인이 부부가 되는 과정'이다.

 

 

 

영화 '쉘 위 댄스' 역시 중년의 남성이 자신의 빈 뭔가를 채우기 위해 고통스럽게 찾는 과정을 그린 영화였다면, 이 작품은 모두 '여성'을 찾아가는 것이며, 결국 '여성'이 상징하는 것이 '진리'인 것이고 보면 결국 철학적 명제로써는 한 개인이, 한 여성과 남성이 모두 '진리'를 찾아 떠나는 과정과 그 결과를 보여주는 작품일 것이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그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려주는데 있어, 그 명제를 신나고, 흥겹고, 밝은 마음이 되게 "웃음의 미학"으로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던져주고 있다. 진실과 진리는 허위와 가식 속에선 절대 찾아지지 않는 그 무엇일 것이며 사랑은 배려, 들어주는 것, 아낌없이 주는 것이다. 사랑은 소유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배려하고, 아껴주는 것이다.

 

 

 

시몬 줄로뜨니코프 (simon zlotnik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