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황석영 '어둠의자식들'

clint 2017. 2. 8. 10:15

 

 

 

사회에서 소외된 전과자나 창녀들이 모여 사는 꼬방동네에서 동철은 창녀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며 지낸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기 싫어 무작정 상경한 순임은 꼬마강과 두꺼비의 꾐에 빠져 창녀가 된다.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상경했던 영애는 곡마단을 전전하다 창녀가 된다. 이들은 이곳을 탈출하여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려고 발버둥친다. 강도 혐의로 감옥에 갔다 온지 얼마 되지 않은 동철은 태봉, 두꺼비 등과 함께 상가를 털 계획을 꾸민다. 새벽을 틈타 상가를 터는데 성공하고 두꺼비는 서울을 떠난다. 교회의 진정을 접수한 경찰에서 창녀촌 단속을 나오고 사람들은 남산으로 피한다. 공원에서 사람들은 교회와 세상에 대한 불만을 서로에게 토로한다. 그곳에 태봉이 급하게 찾아와 동철을 찾는다.

 

"이동철"의 본명은 이철용, 생후 6개월만에 아버지를 결핵으로 잃고 자신도 결핵성 관절염을 앓아 한쪽 다리 일부를 잘라낸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혼자 야학을 하여 배움의 허기를 달래면서 자신과 같이 불우한 처지에 있던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간첩 사건에 연루되어 70일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그 경험을 '어둠의 자식들'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걸 무명인데다가 '요주의' 인물인 자신의 이름으로는 출판을 할 수가 없어 황석영에게 보여주었고 이를 황석영이 다듬어 현암사를 통해서 출간하였다"이동철"의 본명은 이철용, 생후 6개월만에 아버지를 결핵으로 잃고 자신도 결핵성 관절염을 앓아 한쪽 다리 일부를 잘라낸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혼자 야학을 하여 배움의 허기를 달래면서 자신과 같이 불우한 처지에 있던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간첩 사건에 연루되어 70일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그 경험을 '어둠의 자식들'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걸 무명인데다가 '요주의' 인물인 자신의 이름으로는 출판을 할 수가 없어 황석영에게 보여주었고 이를 황석영이 다듬어 현암사를 통해 출간.

 

각색, 연출의 말 우리 같은 먹물들이.... 이상우

 

벌써 몇 년 전부터 주위의 동료들과 함께 연극에 대해 어려운 얘기들을 많이 나눠왔고, 그런 실험들을 같이 해보고 또 서로의 시도를 지켜보아왔다. 그 과정속에서 집단창작이라는 것도 마당극이라는 것도 연극의 기능이라는 것도 예술의 한계라는 것도 얘기되고 결론도 채 내리지 못한 힘겹고 의미있는 논쟁을 거쳐 왔다. 이번 연극도 그런 과정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먼저 전제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사고와 체험의 깊이가 모자라고 삶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인지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내용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마찬가지였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이 연극의 원래 의도는 이런 것이었다. 우리가 보고 있으면서도 현실로 인정하려 하지 않던 지독한 삶 현장의 존재를, 나와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죄악이라고만 보려했던 특수한 인간관계를 생생한 눈으로 봐버리려는 시도였다. 더럽고 윤리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고 욕지기가 절로 나는 그런 삶의 상황이 존재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우리 자신의 일부분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보라는 시도였다. 그들의 그늘은 내 것이 아니다는 우리들의 주장은 환상일뿐이다. 나는 그대로 있고 그들의 어둠만 없어져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그 어둠은 내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내가 바뀌지 않는 한 절대로 바뀌어질 수 없는 그런 것이다. 나 자신이 싸질러 놓은 냄새나는 배설물도 내 것이고 슬퍼서 아니면 감동으로 흘리는 눈물도 내 것이듯 그런 냄새나는 존재를 우리 사회와 문화가 스스로 가진 우리 자신의 한쪽 면으로 인정하라는 데서 이 연극이 출발했다. 구성은 어떤 인물 중심의 이야기 전달식이 아니라 상황 전달식으로 짜여졌다. 물론 이런 구성법은 여러 번 시도된 바 있다. 각 상황이 지닌 이미지들이 하나로 통합되고 각 상황이 전달하는 소리가 하나로 수렴하여 그 결론은 한 개의 컴포지션으로 되었다. 어떤 한 대사 나한 배우의 연기를 남기려 함이 아니라 앞에서 얘기 한 내용을 이미지화하여 상황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하 는 시도였다. 이상이 있어야 실험도 있고 그런 실험을 통해서 예술의 목적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자유 정신의 가능성을 더욱 넓게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연극의 이상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우리들은 제약과 규제와 우리자신을 세뇌시킨 틀을 부수고 나가려는 몸부림부터 쳐야 할 것 같다. 지독스런런 삶의 현장기록인 어둠의 자식들을 우리같은 먹물들이 연극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동철이형의 배려와 도움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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