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무대는 부동산 중개업자의 사무실이다.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소파가 놓여있다. 공인중개사는 미모의 여성이고, 사무실 여직원 또한 예쁘다. 외국에 체류 중인 집주인을 대신해서 훤칠한 미남의 대리인이 계약을 성사시키고 전세계약금을 수령하기 위해 등장한다. 그 때 세입자의 모친과 세입자인 아들이 함께 등장을 하고, 계약과 관련된 문서를 조목조목 따지고 점검한다. 지나치다 싶은 검증에 미남 대리인은 성질 폭발 일보 직전이지만 결국 계약을 성사시키고 계약금을 수령하려 한다. 바로 그 때 외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았던 집주인이 등장을 한다. 집주인은 대리인에게 “자네가 여기 웬일인가?”하고 천만 뜻밖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대리인은 허둥지둥 퇴장을 한다. 훤칠한 미남 대리인은 결국 사기꾼으로 밝혀진다. 현재 살고 있는 세입자가 등장을 하니, 집주인은 현재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줘야 하기에 수표로 전달하려 하만, 세입자가 수표를 받을 수 없다고 하니, 공인중개사가 대신 입금을 시키고 집주인에게 수표를 받는다. 집주인은 인사를 하고 퇴장한다. 그런데 은행으로 갔던 여직원이 허둥지둥 되돌아온다. 중개사가 까닭을 물으니 여직원은 수표입금과정에서 그 수표는 분실수표이고, 지불 정지된 수표임이 밝혀진다. 중개사와 여직원이 집주인을 찾으러 뛰어 나가는 장명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심사평 - 장진 극작가ㆍ연출가, 김은성 극작가
희곡이란 장르가 읽히는 문학으로서의 매력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에 동감한다. 그것은 재료문학의 한계일수도 있고 이 시대, 활자 탐닉자들의 트랜드 일수도 있다.
그 알 수 없는 경향에 대한 작은 저항으로 우리 심사위원과 주관사인 한국일보는 연극성을 잃지는 않되 조금 더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에 심사의 무게를 두었다. 올해 투고한 작품들의 대략적 경향을 요약하면 가족을 모티브로 가족구성원의 상실, 소통의 부재를 다룬 이야기가 많았고 삶과 세상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고스란히 어둡고 무거운 느낌으로 그려진 작품들도 적지 않았다. 역사적 사건 속의 한 장면을 펼치며 시대와의 궤적을 이으려는 시도도 보였고 만화적 상상력으로 치장된 우화스러운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이렇듯 다양한 이야기를 보는 것이 심사의 즐거움이라면 단편의 매력을 살리지 못한 부분이나 연극이 갖는 시공간의 기술이 녹아들지 못한 것은 소박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당선작인 주수철의 ‘그린피아 305동1005호’는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공인중계 사무실이라는 공간에 우리의 삶에 어느 순간 절대적 존재가 되어버린 ‘집’ 이라는 소재와 ‘계약’ 이라는 상황을 가지고와서 작은 토막 이야기를 만들었다. 개성이 분명한 인물 창조력과 그 개성을 만드는 대사의 엮음이 좋았고 인물들의 등퇴장과 세기의 고른 분배로 무대 위의 리듬이 경쾌하게 느껴졌다. 평면적 상황 극이란 부분과 마지막 결론이 기대보다 덜 한 아쉬움은 있지만 읽는 즐거움과 읽으면서 무대가 그려지는 희곡의 매력이 잘 살아있는 작품으로 당선을 드린다.
당선작 선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마지막까지 고민스러운 선택을 만든 연지아의 ‘선택일지’는 꽤나 신선하고 흥미롭게 읽혔다. 재미난 대치를 만들고 착한 엔딩도 좋았지만 몇몇 장면에 대한 필요성이 끝까지 심사위원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희곡 당선소감 |
주수철
1968년 전남 영광 출생
경희사이버대 문예창작과 졸
늦은 출발…하지만 빨리 달리지 않겠습니다. 젊었을 때의 저의 글쓰기는 수퍼카를 타고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삶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됐습니다.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하는 저에게 힘이 돼 주고 용기를 주는 것은 오직 글을 쓰는 것뿐이었습니다. 저의 모든 것이 희생돼도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래의 어느 날에 틀림없이 보상 받게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저의 진가를 알아보고 저의 탁월함을 밤새워 얘기하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시간이 지남으로써 알아가는 사실, 어쩌면 현명한 사람들은 그 잘못된 출발에서 영민하게 인지하는 것들을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그처럼 자기 안의 그림자에만 머물러 있는 자에게는 결코 어떤 답도 내주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살아온 삶이 어떠했든, 그래서 내면에 어떤 이끼가 끼었든 세상의 이로움에 대해 어떤 기여도 하지 않는 자에게 세상은 결코 아무 것도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인식에 이르지 못한 글쓰기가 진실한 사람들의 얘기, 이 세상의 참된 모습을 제대로 형상화해내지 못할 것은 자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헛되이 허비되었고 틀림없이 찾아오리라 믿었던 파랑새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믿음이 파쇄되었던 즈음에 전 글에 대한 제 욕망 또한 옅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놓아 버릴 용기도 없었던 어느 날에 전 희곡이라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작법을 익히면서, 습작을 해나가면서 왜 이제야 이런 행복감을 발견하게 됐는지 못내 아쉬웠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의 참다운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아가는 시기에 중요한 성과를 거둬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 비록 너무나 늦어버린 출발이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투정이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9인승 승합차를 운전하려 합니다. 빨리 달리지 않을 것이며 차에 탄 승객들과 함께 바깥의 경치를 구경할 것이며 춤추며 노래할 것입니다. 또한 꿈을 위한 중요한 길 위에 서 있는 아들과 함께 구하는 사람만이 돌려받을 수 있는 세상의 법칙에 대해 얘기할 것입니다. 엉성하고 미진한 작품에 그런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과 한국일보사에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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