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백하룡 '고제'

clint 2016. 11. 26. 16:26

 

 

 

 

고제는 현재를 살아가는 가 과거에 존재했던 를 들여다보면서 딱딱하게 굳어있던 청춘이란 시간을 회상하며 그때의 찬란했던 맹세들을 되짚어보는 작품이다. '고제' 라는 말은 경남 거창군 고제면의 지명으로 '하늘로 가는 사다리' 란 뜻이다.

 

작품의 배경은 현재와 1990년대 초. 분신정국시대로 그 시절은 동구와 소련이 무너지던 시절이며, 학력고사세대가 수능세대로 또 신세대라는 말이 등장하던 시대이기도 하다한 시대가 저물고 또 다른 시대로 전환하는 시기이며 그래서 어떤 청춘들은 목표를 잃고 표류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뜨거움만큼이나 청춘은 깊은 화상을 입고 한순간 늙어버렸다. 찬란하던 얼굴조차 아프게 데이고 말았다.

 

 

 

 

 

과거와 현재에 자리한 여진이 극을 이끈다. 학교 선후배인 두 남녀는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내 둘의 입에서는 서로 다른 기억이 흘러나오고, 잊을 수 없는 시간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하늘로 가는 사다리라는 뜻의 경남 거창 고제MT를 떠났던 그 날. 두 사람이 다퉜고 한 친구가 불 속에서 목숨을 잃었던 그 날의 진실 속으로 향하는 것이다. ‘여진의 기억이 연속적으로 무대를 채운다. 분노하는 사람도 가라앉는 사람도 다르고, 불 속에 자리한 친구의 죽음도 다르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예측할 수 없는 순간, 과거와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의 모습이 그려진다. 세월의 흐름, 철저한 타협과 자기합리화 속에 감춰버린 진실은 깊고 짙은 여운으로 감싼다.

 

 

 

 

모두가 뜨겁게 불타올랐고 또 차갑게 가라앉았다. 시대의 투사가 된 이들의 결연한 의지와 서로의 머리에 밀가루와 달걀을 쏟아부으며 애써 더 크게 웃음 짓는 마음이 교차하던 그때. 투쟁의 상징이었던 선배는 정치를 시작했고 또 많은 이들이 변했지만, 여진은 여전히 입안의 아오리 향을 느낀다. 덜 익은 신맛이 나지만 그 어떤 맛보다 달콤한 청춘의 향이다.

 

 

 

 

 

어느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그토록 찬란하고 뜨거웠던 ‘청춘’이란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새 세상을 핑계대며 너무 쉽게 그러한 날들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고통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고통조차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었고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 것인지, 그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빼앗긴 채 하루하루 버티기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연극 〈고제〉는 그런 현재를 살아가는 ‘나’가 과거에 존재했던 ‘나’를 들여다보면서 딱딱히 굳어있던 청춘이란 시간을 회상하며 그때의 찬란했던 맹세들을 되짚어보는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이다.